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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야권단일후보 여론조사는 선거의 기술?

어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여론조사를 한다는 전화였습니다. 일단 응해주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당신은 통합창원시장 선거에서 어떤 정당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부터 시작됐습니다. 한나라당,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등의 이름이 거론됐습니다. 진보신당이나 자유선진당 이름은 당연히 없었습니다. 후보를 내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이어 야권단일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야권단일화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또는 지지하는지 지지하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전화 여론조사에 응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야권단일화에 무조건 찬성 또는 지지하는 것을 전제한 물음이었습니다. "야권단일화를 할 때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후보를 지지하시면 1번, 민주당 허성무 후보를 지지하시면 2번, 국민참여당 민호영 후보를 지지하시면 3번을 눌러주세요." 아무 번호도 누르지 않자 멘트가 다시 흘러나왔습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후보를 지지하시면 1번, 민주당 허성무 후보를 지지하시면 2번, 국민참여당 민호영 후보를 지지하시면 3번을 눌러주세요."

할 수 없이 아무 번호나 눌렀습니다. 일단 어떤 번호를 눌렀는지는 저는 알고 있지만, 비밀투표의 원칙에 입각해 밝히지 않겠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따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게 하고 나니 다음 순서로 넘어가더군요. 다음 순서는 어떤 당을 지지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대한민국 정당법상 등록된 모든 정당의 이름이 나열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분히 형식적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통합창원시장 선거에서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지 물었습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후보, 민주당 허성무 후보 …… 한나라당 박완수 후보, 황철곤 후보, 전수식 후보 등의 이름이 거론됐습니다. 제가 어떤 번호를 찍었을지 정히 궁금하신 분을 위해 살짝 말씀드리면, 그랬을 거라고 짐작하는 반대 방향으로 찍었다는 것입니다. 저로서는 이게 올바른 여론조사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제가 여론조사 기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만큼 지식은 없지만, 이게 제대로 민의를 반영하는 것일까에 대해선 매우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궁극의 목적이 아니라 그와 겸해 당과 후보를 홍보하는 데 주안이 있다면 나름대로 주체들에겐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권단일후보를 무조건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네요. 

사실은 저는 야권단일후보엔 별 관심도 없고 지지하지도 않지만, 여론조사에 끝까지 응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제가 응한 여론조사의 한 부분은 사실 객관성을 잃은 것입니다. 답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통합창원시장 후보엔 야권후보가 민주당, 민노당, 국참당, 이렇게 세 당 후보만 나왔으므로 그들이 통합에 동의한다면 야권단일후보라고 불러도 무방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방의원 후보들 중에는 이 세 당 말고도 다른 당들과 무소속 후보들도 많은데 이들 세 당 후보만 야권단일후보라 선정하고 공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 물어온다면 저는 단호하게 옳지 못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옳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당이 아닌 다른 야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을 마치 여당후보인 것처럼 폄훼하거나 그들에게 유무형의 불이익을 안기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거제시장 후보의 경우에 민노당 후보를 마치 야권단일후보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는데―희망자치연대가 민노당 후보를 야권단일후보로 지명 발표했지요―이것은 명백한 사기인 것입니다. 단일화 한 일이 없으니까요. 저는 선거법을 잘 모르지만, 상대 야당 후보가 이 부분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법정으로도 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보신당이나 기타 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단일화 협상이나 합의한 사실도 없으니.

당사자들이 좀 심하게 받아들인다면 지독한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희망자치연대가 불공정한 선거개입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선거에 임하여 후보들이 단일화 운운하는 것 자체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갖고는 있지만(그럴 거면 아예 정당도 만들지 말고 정치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연립정권 같은 개념으로 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통합창원시장 후보로 민노당 문성현 후보가 결정되었다면, 부시장 자리에 민주당과 국참당을 배려한다든지 하는 일종의 정치협상에 의한 단일화, 연립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럽의 경우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단일화는 소위 '묻지마 단일화'입니다. 무조건 나머지는 다 죽고 하나만 살려 보내자, 그런 것이지요.

아, 그렇지 않다고요? 여기서도 정치협상을 했다고요? 도지사에 김두관 후보로 단일화했으니 통합창원시장엔 민노당 후보로 단일화하는 걸로 내부 조율된 것이 아니겠느냐고요? 음,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러나 그런 건 제가 생각하는 연립과는 차원이 다른 하나의 정치공학일 뿐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정치공학, 말하자면 정치의 기술이죠.

이거 말 더 하다가는 야권단일후보를 지지하시는 분들께 욕먹겠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생각하는 국민도 있다는 점만 알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세상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며 자기와 같은 생각보다 다른 생각들이 더 많은 게 현실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이번 경험을 통하여 여론조사에 대해―특히 정당이 운용하는 여론조사에 대해―신뢰를 많이 잃었습니다.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여론조사였다, 이게 저의 결론이었던 것입니다. 야권단일후보(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인)를 선전한다거나 특정 정당 후보를 홍보하는 데는 유용했을지라도 여론조사 그 본래의 취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 방법을 두고 그토록 피터지게 싸우는 것이었군요.

그러고 보니 여론조사도 일종의 기술이란 생각이 드네요.

ps; 한 두어 시간 후에 한나라당에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여론조사를 하는데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전 별로 도와드릴 게 없는데요" 했더니 그래도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피곤하기도 하고 귀찮아서 "아, 저는 안 되겠습니다" 하고 끊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냥 도와줄 걸 그랬습니다. 도대체 여론조사하는데 뭘 도와 달라는 건지, 지금 생각하니 매우 궁금하네요. 괜히 끊었어, 괜히 끊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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