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

'전우' 반공드라마일까, 반전드라마일까?

<전우>, 반공이냐, 반전이냐!
제작자, "참혹한 전쟁 통해 반전과 평화의 소중함 알려"

일각에선, "반공드라마 부활로 과거회귀 노린다" 의혹















<전우>, 오랜만에 만나는 전쟁영화다. 전쟁영화는 재미있다. 참혹한 전쟁을 다룬 영화를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잔인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장르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그런지 대개의 대작 영화들도 주로 이 전쟁을 다룬 영화가 많았다.

우선 가장 최근에 나온 영화 중 기억나는 것은 <진주만>이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있고, 전쟁영화의 교범이라 해도 크게 지나치지 않은 <지옥의 묵시록>도 있다. 이외에도 2차대전을 다룬 영화들, <콰이강의 다리>,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영화들이 모두 전쟁영화다.

그럼 몇 년 전 국민드라마로 각인되며 커다란 인기를 누렸던 <불멸의 이순신>은 어떨까? 사극이지만 이것도 역시 전쟁드라마 아닐까? 모르겠다.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전쟁드라마라고 부르는 사람은 별로, 아니 한 사람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럼 이 드라마는 전쟁드라마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역시 전쟁드라마다.


굳이 글머리에 미리 이런 사족을 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전우>가 방영되기 전부터 일부 사람들은 이 드라마의 방영의도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거부감을 나타냈다. KBS가 정부의 의도에 따라 민감한 시기에 반공드라마를 제작해 방영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시청자게시판에 올라온 한 의견을 살펴보자.

"천안함 사건 이후 정부의 믿음이 안가는 대응으로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시점에서 반공사상 고취용으로 이런 드라마를 만든 것이 참 어이가 없다. KBS가 무슨 목적으로 현시점에 이런 드라마를 제작했을까? 깊게 생각하게 하는 부문이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이 드라마와 천안함은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천암함 사건이 나기 전에 이 드라마는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갔을 것이다. <전우>는 철저하게 사전제작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마도 이명박 정부와도 별 관계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6·25동란, 6·25사변 또는 일각(북한을 비롯한)에서 말하는 것처럼 민족해방전쟁, 이름이 그 무엇이든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었다. 60이란 숫자는 우리나라 사람에겐 대단히 의미가 큰 숫자다. 한 갑자가 흘러 새로운 갑자(세상)가 시작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본다면, 이 시점에 한국전쟁을 다룬 드라마가 안 나오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문제는 방영되는 드라마의 제목이 <전우>라는 데 있는 것 같다. <전우>는 1975년에 방영되어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정권 때인 1983년에 다시 리바이벌 돼 방영되었지만, 원작만한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것 같다. 1975년이란 시대상황과 1983년이란 시대상황이 가져다주는 차이 때문이었을까?  

유신과 5공이라는 엄혹한 시대적 조건은 비슷했지만, 이미 국민들의 의식수준이나 생활방식이 달라졌던 것이다. 만약 지금 70년대의 <월튼네 사람들>이나 80년대의 <전원일기>와 같은 드라마를 방영한다고 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모르긴 몰라도 낮은 시청률에 고전하다 중도하차란 운명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원작 <전우>는 철저한 반공드라마였다. 인민군은 뿔 달린 도깨비이며, 사람의 피를 빨아 먹는 괴물이다. 이에 비해 국군은 인민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간직한 구원자다. 그러니까 <전우>는 반공 혹은 멸공에 입각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정권안보 무기였다. 아마도 그래서 신작 <전우>에 대한 거부반응이 먼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에 방영되는 MBC의 <로드 넘버원>에 대해선 별다른 비토가 없는 것을 보아도 1975년의 <전우>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전우>에 대한 거부반응이 나왔다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천암함 사태나 이명박 정권의 반북정책을 예로 들면서 마치 이 드라마를 정권홍보 드라마 정도로 격하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전우>는 기획의도에서 이렇게 밝혔다.

6·25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민족 최대의 비극이다.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비극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이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이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6·25전쟁이 발발한 지 꼭 60주년을 맞는 2010년 오늘, 드라마 <전우>를 기획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아울러 <전우>는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라는 의도가 있음도 추가로 밝혔다.

전쟁터는 난장판이다. 돌격명령을 받고 달려가는 병사의 머릿속이 충성심으로 꽉 차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서 달려가" 라는 고참과 간부들의 고함소리와 떨어지는 포탄과 총성. 그 속에서 병사는 그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달려 나갈 뿐이다. ………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꿈도, 이상도, 명예와 도덕도, 전장엔 존재하지 않는다. 블랙홀처럼 전장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오직 살고 싶다는 본능, 내가 살려면 남을 죽여야 한다는 본능만이 존재할 뿐이다. 바로 그런 전쟁의 참상을 통해 우리는 반전과 평화라는 인류 최고의 가치를 보여주고자 한다. 시커먼 구정물을 보아야만 작은 옹달샘의 깨끗함을 깨닫듯이, 드라마 <전우>는 참혹한 전쟁의 모습을 통해 반전과 평화의 소중함을 말할 것이다.

우선 1부를 본 소감을 말한다면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반공드라마의 혐의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몇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예를 들어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는 장면. 인민군과 중공군이 뒤섞여 깃발을 세우고 돌격해오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중공군과 인민군이 부대의 편제도 무시하고 뒤섞여 돌격하는 장면도 우습지만, 총을 든 전장에서 깃발을 들고 돌진하는 장면도 난센스 중의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중공군이 쓰는 함화공작이란 전술은 북한군에서도 채용해 쓰고 있는데, 밤이 새도록 함성과 횃불, 북 등으로 심리전을 한 다음 동이 트기 전에 총공세를 하는 것이다.

함화공작까지는 잘 표현했지만, 양국의 군대가 뒤섞여 깃발을 들고 진격하는 장면은 실로 코미디였다. 임진왜란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이것도 과거 우리가 배웠던 소위 중공군의 인해전술로부터 얻은 상상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정도는 작은 옥에 티로 크게 걸고넘어질 만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제작자의 입장에선 그렇게 전투장면을 만드는 것이 더 멋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고증도 필요하고 리얼리티도 중요하지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선 스타일이란 것도 있지 않겠는가.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어쨌든 우리가 할 일은 좀 더 지켜보는 것이다. 

기획의도의 말처럼 "시커먼 구정물을 통해 작은 옹달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런 드라마인지, 아니면 처음에 일부에서 의심했던 것처럼 "시커먼 구정물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그런 드라마가 될지.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은 변했다. 그리고 드라마 제작자도 그걸 충분히 알고 있다.

1975년 식 <전우>는 웃음거리만 될 뿐이란 사실을 말이다. 돈 안 되는 일을 80억이나 들여 할 리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