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같은 세상을 향한 업복이의 마지막 분노

큰일 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려하던 대로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었습니다. 저는 앞에 그분은 이경식의 끄나풀이어서는 안 되며 절대 되어서도 안 된다고 역설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렇게 적은 이유는 역시 희망 섞인 말을 하면서도 불안했었던 때문이겠지요. 많은 분들의 지적처럼 반전을 위한 장치들이 무수히 있었고 실은 저도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희망에 눈이 멀어 깨닫지 못한 반전

"그러나 만에 하나 제 생각이 틀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그럼 큰일 나는 거지요. 제 기분도 기분이지만,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희망이 있겠어요?"

그리고 결국 그 '큰일'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분은 노비도 아니었으며 노비당을 만들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더더구나 혁명 같은 건 꿈에도 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시 출세를 위해 이경식이 시키는 대로 일을 꾸민 하수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분도 역시 양반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경식을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려고 했는데, 제가 노비들에게 형님이라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참겠지만 냄새는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노비들 가까이 가면 냄새가 어찌나 역한지 대업이고 뭐고 당장에 목을 쳐버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끝봉이의 주검을 안고 비장한 결심을 하고 광화문 앞에 선 업복이


아, <추노>는 마치 저의 아둔함을 조롱이라도 하려는 듯 너무나 잔인한 반전을 만들고 말았네요. 사람 위에 사람 없는 거라던 그분의 진면목이 바로 저런 것이었다니. 그런데 왜 저는 그분이 진짜 그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이미 천 냥짜리 어음 사건을 통해, 물소뿔 상인들과 청인무사들의 피살 사건을 통해 이경식과의 관련성이 복선으로 깔렸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도 왜 그랬을까요? 세상을 바꾸자는 그분의 말에 현혹되었던 것일까요? 저 역시도 천한 상것들과 다를 바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알현을 받은 이경식이 이렇게 말했지요. "천것들이란 작은 희망만 보여줘도 죽을지도 모르고 따라오게 돼 있으니." 그랬나 봅니다. 그 작은 희망에 잔혹하게 숨어있는 반전을 보지 못 했던가 봅니다.  

노비당이니 혁명이니 하는 것은 원래 없었다

결국 노비당은, 아니 꾐에 빠진 노비들은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다행이 초복이와 긴 이별을 해야 했던 업복이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나타난 업복이는 끝봉이로부터 그분의 존재에 대하여 깨닫게 됩니다. 복수를 결심한 업복이는 대궐로 향하고 마침 대궐에서 나오던 이경식과 마주치게 되지요.

이경식과 그분, 그리고 변절자 조선비가 모두 업복이게 죽는다.


그리고 이경식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그분, 업복이의 총에 이경식과 그분은 허무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정말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치부를 위해 같은 양반들을 죽이기도 하고, 노비들을 부추겨 세상을 바꾸자는 따위의 불온한 사상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끝이 이렇게 간단하게 죽음을 맞는 것이었다니.

아무튼 애초부터 노비당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원래 아무런 희망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마지막에 희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떤 희망이었을까요? 저는 아무리 찾아보았지만 희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길과 태하, 언년이에게서도 희망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대길이의 최후, 역시 멋지다.

대길은 언년이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는 떠나는 언년이를 보며 이렇게 속으로 뇌까렸지요. "네가 살아야 돼. 네가 살아야 내가 사는 거다." 마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베르토 조단이 사랑하는 마리아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더군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 <추노>의 장혁이 훨씬 멋있었습니다.

휘날리는 머리칼 아래 슬프게 빛나는 눈빛, 루지탕에서 보았던 알랑 들롱의 눈빛 이후 처음 보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 장혁의 눈빛에서도 저는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혹 어쩌면 송태하가 청나라로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혜원에게 한 이 말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청나라로 가지 않겠습니다. 이땅에 빚을 너무 많이 져서 이땅을 떠날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금방 회복될 것입니다. 다 나으면 좋은 세상 만들어야지요. 혜원이 언년이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될…."

그러나 그 말을 통해서도 저는 작은 희망 하나라도 건지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송태하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앞서기 때문이지요. 송태하는 그저 몰락한 양반에 불과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골에 묻혀 책이나 읽으며 가까운 상것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상은 없습니다. 너무 무시하는 것일까요?

업복이를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노비들


그래도 굳이 희망을 찾아야 한다면, 저는 오히려 업복이와 한집에서 종노릇을 하던 반짝이 애비에게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분과 이경식을 죽이고 체포되는 업복이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 같은 것이 보이긴 했습니다. 그를 통해 제2, 제3의 업복이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너무나 참혹한, 잔혹하기까지 한 반전 앞에서 힘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으로선 그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노비당을 만들고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할 때 희망은 아침 태양처럼 떠오르는 것이겠지요. 초복이가 떠오르는 해를 보며 은실이에게 한 말처럼. 

"은실아, 저 해가 누구 건지 알아? 저건 우리 거야. 왜냐하면 우린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녀는 마치 총자루가 업복이의 영혼이라도 된다는 듯이 힘차게 잡고 있었습니다.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그 총자루는 업복이가 마지막 비장한 결심을 하며 던졌던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설령 그 총이 그 자리에 없었던들 들었을 거예요. 총은 업복이의 화신이니까요. 그리고 그 말은 초복이에게도 전해졌을 테지요.

"우리가 있었다고, 우리 같은 노비가 있었다고 세상에 꼭 알리고 죽으마! 그렇게만 되믄 개죽음은 아니라니. 안 그러나, 초복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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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