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손을 풀어주자는 것도 충심이요, 그 반대도 충심 아닙니까?
이제 그만 전교를 내리시어 정국의 혼란을 바로잡아주시길 간언하나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 중에 중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도, 참 좋은 말입니다. 이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저쪽에 치우치지도 않는다는 뜻이겠죠. "나는 아주 공정하다!" 말하자면 이런 따위의 자화자찬인 것입니다. 중도를 잘못 해석하면 자칫 박쥐같은 회색주의자로 오해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이 중도는 매우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중도주의자 이경식?
바로 이런 중도주의자가 드라마 <추노>에도 있습니다. 권력의 실질을 잡고 있는 좌의정 이경식입니다. 그가 잡고 있는 권력의 기반은 어심입니다. 그는 어심을 잘 읽습니다. 어쩌면 어심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공작이 성공한 때문에 임금의 마음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어심을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정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면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논쟁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 임금에게 늘 이렇게 간하지요. "이 말도 충심이고 저 말도 충심인 바, 그만 전교를 내려 주시지요." 17부에서도 이런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물소뿔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자 조정에선 당파 간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친청파는 원손의 유배를 해제하고 청과의 교역을 재개해야 한다고 하고, 반청파는 청에 굴복해 원손을 사면하는 것은 굴욕외교라고 주장합니다. 이때도 역시 좌의정 이경식이 결론을 내리지요. "전하, 원손의 사면을 주장함도 충심이요 그 반대 역시 충심 아닙니까? 전교를 내리시어 정국의 혼란을 바로 잡아주시기를 간언하나이다."
임금이 어떤 전교를 내렸는지에 대해선 드라마에서 명확한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다음에 이어지는 이경식과 박종수의 대화를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종수는 이경식의 수하인데 형조에 무시로 드나드는 걸로 보아 형조판서나 참판쯤 되는 걸로 보입니다만, 확실하게 그의 신분을 보여준 예는 없습니다.
도대체 어심이란 게 무얼까
"물소뿔 가격이 세 배 이상 뛰었고 곧 열 배 이상 폭등할 것이 자명한데, 원손을 사면하고 교역을 풀라니요?" "어심을 읽으시게. 아, 그래야 그대가 좌우찬성에 오르실 거 아니신가?" 좌우찬성은 삼정승에 이어 오정승이라 불리는 의정부의 일원입니다. "제가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원손의 사면은 양보가 불가능한 일 아니신가? 그러나 그걸로 군사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을 피하지 못하실 게야."
역시 박종수는 이경식의 수하답습니다. 이경식이 어심을 읽는다면 박종수는 이경식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건으로 이 논쟁을 덮어버리면 되겠습니까?" "그럴만한 일이 있으시겠나?" "역모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황판관이 잡아온 자 중에 조모라는 선비가 있습니다. 원손을 찾는 일은 차치하고 역모부터 추궁하신다면." "허허허허~ 떠날 때 다 된 이 늙은이가 무얼 아시겠나, 흠흐허허허~"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이경식이 반청파의 입장에 서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반청파의 우두머리이면서 마치 중도주의자인 척 행세하며 뒤에서는 어심을 조작하기 위해 모략을 꾸밉니다. 그가 말하던 어심이란 결국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조작된 이데올로기였던 것입니다.
물론 청나라도 두 손 놓고 가만있지는 않습니다. 용골대가 원손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조선과의 외교적 줄다리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살과 피를 희생하면서까지 송태하를 구한 것이 오로지 송태하와 나눈 의리 때문이었을까요? 송태하를 대신해 죽은 용이라는 청나라 무장의 최후를 보면 그들이 나눈 의리가 꽤 크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경식이 읽거나 만드는 어심은 근본주의
그러나 용골대의 심중에는 다른 계산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경식은 이런 용골대의 계산까지 꿰고 있습니다. 아마도 조선비는 이토록 영악한 이경식에게 끝내 굴복해 투항하고 말겠지요. 그리고 이경식의 손에는 혁명세력의 명단이 쥐어질 것입니다. 이런 정황을 모르는 송태하는 우직하게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고 말입니다.
아무튼 역사는 이경식 같은 인물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경식은 어심을 잘 읽는 인물이고 또 어심을 잘 만드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대의 어심은 청에 빼앗긴 자존감을 되찾는 것이며, 이에 기반해 성장하는 근본주의입니다. 이경식은 이 어심에 기생해야만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이런 어심을 만들기 위해 역모사건 같은 것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이런 그가 "이것도 충심이요, 저것도 충심이다. 다 나라를 위하고자 하는 일 아니겠는가!" 하고 연막을 치며 중도주의자 행세를 하는 것은 반대파의 피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탄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토록 무서운 중도의 실체를 알았을 때는 이미 한 차례 격랑이 세상을 쓸고 지나간 뒤가 되겠지요.
옛날에 황희란 정승이 있었지요.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중도적인 사람의 표본이었던 듯싶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황희가 밭을 갈던 농부에게 물었지요. "저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놈이 일을 더 잘 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황희를 이끌고 한쪽 귀퉁이로 가 귀에 대고 소근거렸습니다. "사실은 저 누렁이가 일을 훨씬 더 잘 한다우. 검정소란 놈은 농땡이지요."
농부에게서 중도의 진정한 뜻을 깨우친 황희 정승
이 말을 들은 황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농부의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고 하지요. 후세의 호사가들은 "그리하여 황희는 가장 위대한 정승이 될 수 있었다!" 라고 말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훌륭한 중도주의자였다" 이렇게 되겠지요.
그러나 황희가 정말 중도주의자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에게도 분명 당파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종의 등극에 반대하다가 모든 관직을 박탁 당하고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반대파였던 세종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중도에 대한 영감을 준 것은 농부가 아니라 세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황희는 중도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도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그는 좌파이면서도 우파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우파이면서도 좌파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중도입니다. 검정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렁소만 편애한다면 결국 검정소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고 누렁이만 고생하게 될 겁니다.
그걸 아는 것이 농부의 지혭니다. 이경식이 읽는다는 어심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이칩니다. 중도개혁이니 중도보수니 하는 말들을 무시로 내뱉는 오늘날 정치인들은 어느 범주에 속할까요? 자신의 주관을 분명히 하면서도 상대를 포용할 줄 알았던 황희? 겉으로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뒤로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이경식?
그런데 제 눈엔 이경식 같은 인물만 득실거리는 것으로 보이니 참담할 뿐입니다.
제블로그가 맘에 들면 구독+신청 Qook!☞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 박재형 씨에게 희망을 주세요. ☜클릭
이제 그만 전교를 내리시어 정국의 혼란을 바로잡아주시길 간언하나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가장 즐겨 쓰는 표현 중에 중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중도, 참 좋은 말입니다. 이쪽에 치우치지도 않고 저쪽에 치우치지도 않는다는 뜻이겠죠. "나는 아주 공정하다!" 말하자면 이런 따위의 자화자찬인 것입니다. 중도를 잘못 해석하면 자칫 박쥐같은 회색주의자로 오해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이 중도는 매우 매력적인 존재입니다.
김응수 만큼 이경식 역에 잘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어 보인다. 그를 보면 진짜 간교한 사람의 참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중도주의자 이경식?
바로 이런 중도주의자가 드라마 <추노>에도 있습니다. 권력의 실질을 잡고 있는 좌의정 이경식입니다. 그가 잡고 있는 권력의 기반은 어심입니다. 그는 어심을 잘 읽습니다. 어쩌면 어심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공작이 성공한 때문에 임금의 마음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어심을 잘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정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면 조용히 듣고 있던 그는 논쟁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 임금에게 늘 이렇게 간하지요. "이 말도 충심이고 저 말도 충심인 바, 그만 전교를 내려 주시지요." 17부에서도 이런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물소뿔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자 조정에선 당파 간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친청파는 원손의 유배를 해제하고 청과의 교역을 재개해야 한다고 하고, 반청파는 청에 굴복해 원손을 사면하는 것은 굴욕외교라고 주장합니다. 이때도 역시 좌의정 이경식이 결론을 내리지요. "전하, 원손의 사면을 주장함도 충심이요 그 반대 역시 충심 아닙니까? 전교를 내리시어 정국의 혼란을 바로 잡아주시기를 간언하나이다."
임금이 어떤 전교를 내렸는지에 대해선 드라마에서 명확한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다음에 이어지는 이경식과 박종수의 대화를 통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박종수는 이경식의 수하인데 형조에 무시로 드나드는 걸로 보아 형조판서나 참판쯤 되는 걸로 보입니다만, 확실하게 그의 신분을 보여준 예는 없습니다.
까메오 비슷한 인조역의 김갑수. 역시 음흉한 인물이다. 김갑수와 김응수, 이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 역할들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심이란 게 무얼까
"물소뿔 가격이 세 배 이상 뛰었고 곧 열 배 이상 폭등할 것이 자명한데, 원손을 사면하고 교역을 풀라니요?" "어심을 읽으시게. 아, 그래야 그대가 좌우찬성에 오르실 거 아니신가?" 좌우찬성은 삼정승에 이어 오정승이라 불리는 의정부의 일원입니다. "제가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원손의 사면은 양보가 불가능한 일 아니신가? 그러나 그걸로 군사력에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을 피하지 못하실 게야."
역시 박종수는 이경식의 수하답습니다. 이경식이 어심을 읽는다면 박종수는 이경식의 마음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건으로 이 논쟁을 덮어버리면 되겠습니까?" "그럴만한 일이 있으시겠나?" "역모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황판관이 잡아온 자 중에 조모라는 선비가 있습니다. 원손을 찾는 일은 차치하고 역모부터 추궁하신다면." "허허허허~ 떠날 때 다 된 이 늙은이가 무얼 아시겠나, 흠흐허허허~"
우리는 이 대화를 통해 이경식이 반청파의 입장에 서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반청파의 우두머리이면서 마치 중도주의자인 척 행세하며 뒤에서는 어심을 조작하기 위해 모략을 꾸밉니다. 그가 말하던 어심이란 결국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조작된 이데올로기였던 것입니다.
용골대의 명으로 송태하를 구하는 청나라 무사들.
물론 청나라도 두 손 놓고 가만있지는 않습니다. 용골대가 원손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조선과의 외교적 줄다리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합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살과 피를 희생하면서까지 송태하를 구한 것이 오로지 송태하와 나눈 의리 때문이었을까요? 송태하를 대신해 죽은 용이라는 청나라 무장의 최후를 보면 그들이 나눈 의리가 꽤 크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경식이 읽거나 만드는 어심은 근본주의
그러나 용골대의 심중에는 다른 계산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경식은 이런 용골대의 계산까지 꿰고 있습니다. 아마도 조선비는 이토록 영악한 이경식에게 끝내 굴복해 투항하고 말겠지요. 그리고 이경식의 손에는 혁명세력의 명단이 쥐어질 것입니다. 이런 정황을 모르는 송태하는 우직하게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이고 말입니다.
아무튼 역사는 이경식 같은 인물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경식은 어심을 잘 읽는 인물이고 또 어심을 잘 만드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대의 어심은 청에 빼앗긴 자존감을 되찾는 것이며, 이에 기반해 성장하는 근본주의입니다. 이경식은 이 어심에 기생해야만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꾸로 이런 어심을 만들기 위해 역모사건 같은 것을 조작하기도 합니다.
이런 그가 "이것도 충심이요, 저것도 충심이다. 다 나라를 위하고자 하는 일 아니겠는가!" 하고 연막을 치며 중도주의자 행세를 하는 것은 반대파의 피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탄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토록 무서운 중도의 실체를 알았을 때는 이미 한 차례 격랑이 세상을 쓸고 지나간 뒤가 되겠지요.
옛날에 황희란 정승이 있었지요.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중도적인 사람의 표본이었던 듯싶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황희가 밭을 갈던 농부에게 물었지요. "저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놈이 일을 더 잘 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무슨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황희를 이끌고 한쪽 귀퉁이로 가 귀에 대고 소근거렸습니다. "사실은 저 누렁이가 일을 훨씬 더 잘 한다우. 검정소란 놈은 농땡이지요."
농부에게서 중도의 진정한 뜻을 깨우친 황희 정승
이 말을 들은 황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농부의 가르침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살았다고 하지요. 후세의 호사가들은 "그리하여 황희는 가장 위대한 정승이 될 수 있었다!" 라고 말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는 훌륭한 중도주의자였다" 이렇게 되겠지요.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여기엔 "때만 되면" 중도를 표방하는 인물들이 모여 정치를 하는 곳이다.
그러나 황희가 정말 중도주의자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에게도 분명 당파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종의 등극에 반대하다가 모든 관직을 박탁 당하고 유배를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반대파였던 세종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중도에 대한 영감을 준 것은 농부가 아니라 세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황희는 중도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도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컨대 그는 좌파이면서도 우파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우파이면서도 좌파를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중도입니다. 검정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렁소만 편애한다면 결국 검정소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고 누렁이만 고생하게 될 겁니다.
그걸 아는 것이 농부의 지혭니다. 이경식이 읽는다는 어심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의 이칩니다. 중도개혁이니 중도보수니 하는 말들을 무시로 내뱉는 오늘날 정치인들은 어느 범주에 속할까요? 자신의 주관을 분명히 하면서도 상대를 포용할 줄 알았던 황희? 겉으로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뒤로는 상대를 죽이기 위해 모략을 꾸미는 이경식?
그런데 제 눈엔 이경식 같은 인물만 득실거리는 것으로 보이니 참담할 뿐입니다.
제블로그가 맘에 들면 구독+신청 Qook!☞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 박재형 씨에게 희망을 주세요. ☜클릭
'연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노, 대길이 흘린 눈물에 담긴 의미 (26) | 2010.03.12 |
---|---|
'추노' 배신자의 명분, "범을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7) | 2010.03.11 |
추노, 그들의 예정된 운명은 '한패'였다 (16) | 2010.03.04 |
파스타 보다 의사와 요리사의 공통점 물어보니 (6) | 2010.02.25 |
추노, 가장 혁명적인 인물은 언년이가 아닐까? (13) | 2010.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