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당연히 선덕여왕이지!”라고 말해야 옳겠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말하긴 어려울 듯하다. “그럼 대체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이야?” 하고 다시 물어본다면, 아마도 비록 내키진 않을지라도 “미실!”이라고 말하거나 또는 “미실과 비담 모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실이 그렇다. 사실 나는 선덕여왕 역을 맡은 이요원의 팬이라고 할 수도 있다. 『패션70s』에서 처음 만났던 그녀는 참 매력적이었다. 시골소녀의 풋풋함과 당찬 도시여성으로 성장해가는 전사 같은 모습이 어우러진 이요원을 『화려한 휴가』에서 다시 만났을 때도 그 매력은 여전했다. 물론 선덕여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상경한 시골처녀의 당돌함이 있었고, 그것은 세상을 마주하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어린 덕만 남지현에 이어 등장한 이요원에게도 그것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패션70s』에서의 이요원도 서울에서 멀리 남도 끝자락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그 유배도 덕만처럼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 머나먼 이국의 사막 타클라마칸에서 자란 덕만처럼 『패션70s』의 이요원도 활기찬 사내아이 같았다.
제도에 길들여지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힘, 나는 그것이 덕만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덕만이 처음 서라벌에 들어와 미실과 마주했을 때 거둔 덕만의 승리는 바로 그것이었다. 순수한 영혼의 힘. 아마도 오래 전 기억이지만-벌써 7개월이란 세월이 흘렀으니-‘하룻강아지’ 덕만과 여우같은 천명의 합작이 미실에게 거둔 첫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포스팅한바가 있다.
나는 그래서 덕만이 머나먼 이국 사막에 버려진 것이-나중에 그것은 덕만의 유모 소화가 문노를 피해 덕만을 데리고 도망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어쩌면 예언의 이끌림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라벌에 있었다면 천명처럼 덕만도 미실을 무서워하며 오금을 펴지 못했을지 모른다. 사실 이런 설정은 여러 고전에서도 발견되는데, 반대의 경우지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도 그렇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예언자의 불길한 예언에 따라 아들을 숲에 버린다.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했던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파리스는 목동이 되고 유명한 ‘황금사과의 재판’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예언의 이끌림에 따라 트로이로 돌아와 왕자의 지위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는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10만 대군과 맹장 아킬레우스를 끌고 돌아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설정은 자주 보는 것이지만, 늘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힘이 있다. 덕만도 국조의 예언에 따라 버려졌다. 어출쌍생 성골남진. 결국 이 예언은 이루어진 셈이다. 덕만과 승만을 끝으로 성골은 멸절했으니까.―대체 성골과 진골이 뭐냐는 따짐은 여기선 생략하기로 한다. 성골남진이 춘추가 진골로서 왕이 된 이유라는 사기의 기록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예언은 이보다 먼저 진흥왕이 문노에게 남긴 예언 즉,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물리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한 보조적인 예언에 불과했다. 덕만을 멀리 사막으로 보내 미실을 물리칠 힘을 키워오도록 해야 하는데 별다른 장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불길한 예언’이다. 역사기록을 예언으로 바꾸는 기지가 참으로 놀랍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드라마의 제작 의도는 틀림없이 덕만이 미실이 대표하는 세력 즉, 구세력을 타파하고 신진귀족들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강해진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대업을 준비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실을 악으로, 덕만을 선으로 규정해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초기의 시도는 매우 옳았고 성공했다. 그러나 갈수록 미실의 악역이 빛나는 게 문제였다.
매력적인 악의 화신 미실. 시청자들로부터 쏟아지는 미실에 대한 찬사에 제작진들도 넋을 잃은 것일까.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실이 변하기 시작했다. 미실은 원래 인정사정없는 권력의 화신이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기 부하도 가차 없이 목을 벤다. 실제로 덕만을 안고 도망치는 소화를 놓친 근위병사를 직접 칼을 들어 베지 않았던가. 게다가 동생 미생도 죽이려 했고, 심복 상천관은 끝내 죽였다.
정치적으로는 대귀족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과하고 중소귀족들과 평민들의 세금을 낮추어주려는 덕만의 정책에 맞서 대토지소유귀족들의 권익을 옹호한다. 뿐 아니라 매점매석으로 자영농을 소작농으로 전락시키고, 소작농에겐 고리대를 놓아 이들을 노예로 만들어 나누어가진다. 전형적인 독재자다. 독재자들이란 늘 그렇듯이 서민들을 핍박하고 대신 기득권 세력을 만들어 그들을 지지기반으로 삼는다.
이런 미실이 극 후반부로 갈수록 묘하게 뒤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원래 그렇게 기획됐던 것인지, 고현정의 열연으로 미실의 인기가 높아진 탓에 변형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볼 때 이것은 부조리였다. 미실을 이기고 새로운 신라를 만들어 삼한통일의 기초를 닦을 덕만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매혹적인 독재자미실이 들어선 것이다.
나중에 미실은 반란까지 일으켰으나 많은 네티즌들은 미실의 반란이 실패한 것이 못내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미실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었겠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미실이 죽고 난 뒤에는 비담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담은 미실의 아들이었던 고로 마치 비담이 난을 일으켜 왕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미실의 유지인 것처럼 비쳐졌다.
진흥왕이 자신을 척살하라고 설원공에게 내린 칙서가 비담의 손에 들어갔을 때, 미실은 “제 주인을 찾아갔구나!”라고 말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비담이 사량부령이 되어 새의 깃털로 만든 부채를 들고 나타나자 그건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 비담은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마지막 12회 분량에서 보여준 제작진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
『선덕여왕』의 마지막은 비담과 선덕여왕의 사랑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 사랑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세력-염종을 비롯한 전통 귀족세력-의 음모에 의해 비극으로 끝난다. 마지막 비담의 회상에서 미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푸른 꿈을 꾸는구나!” 이 말은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 한편 자신이 못다 이룬 대업을 아들이 이루길 바라면서 또 한편 그것이 실패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이런 모순이... 그러나 어찌 되었든 『선덕여왕』 후반부의 주인공도 선덕여왕이 아니라 비담이었다. 비담은 미실과 마찬가지로 악한 성정을 타고난 인물이었다. 미실이 그렇듯 비담도 사람을 죽이는데 일말의 양심도 없는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닭고기를 못 먹게 만들었다고 칼을 휘두르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덕만을 위기에서 구한 첫 번째 공이었지만.
그런 비담도 미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 순정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악의 화신이 졸지에 순정만화의 주인공으로 둔갑한 것이다. 애초에 비담이 덕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은 문노가 자신에게 넘겨주려 한 신라를 가지기 위함이었다. 너무 오래돼서 모두들 잊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어떻든 비담은 최후마저도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멋있게 죽었다.
“덕만 앞 70보” “덕만 앞 30보” “덕만 앞 10보” 할 때는 마치 이연걸이 주연한 중국영화 『영웅』의 ‘십보필살검법’을 패러디한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덕만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비담의 모습은 실로 눈물겨웠다. 마지막회는 그야말로 어느 블로거의 표현처럼 비담의, 비담에 의한, 비담을 위한 드라마였다. 그럼 선덕여왕은 그동안 무얼 했을까?
글쎄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질질 짜다가 갑자기 냉철한 모습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는가 하면 갑자기 사랑의 열병도 앓는다. 그러다가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그 사랑이 진심인지도 의심하게 한다. 원래는 유신과의 애절한 사랑의 레퍼토리가 끝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갑자기 유신에 대한 연모는 오간데 없고 비담이 덕만의 가슴에 들어앉았다.
미실을 물리치고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꿈을 이룰 덕만도 없었다. 원래 『선덕여왕』은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선덕여왕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 선덕여왕은 처음에는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블로거 송원섭의 스핑크스 글 제목처럼 ‘진짜 선덕여왕이 『선덕여왕』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했을까. 아마도 매우 실망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면서.
진짜 선덕여왕은 미실과 비담을 위한 내레이터 정도로 전락한 선덕여왕을 보면서 모욕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 내가 보기에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에서 미실과 비담의 내레이터였다. 역시 다시 한 번 하는 말이지만,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제압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그리고 미실과 비담도 원래의 모습에 충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오해를 피하기 위해 굳이 사족을 다는 것이지만-『선덕여왕』은 매우 훌륭한 드라마였다. 이전에 이토록 훌륭한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광개토대왕을 다룬 『태왕사신기』가 있었지만 이만한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토록 많은 블로거들이 많은 후기를 쏟아낸 드라마가, 또는 무엇이었든, 있었던가.
아무튼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이요원이 『선덕여왕』에서 내레이터처럼 만들어진 것은 매우 불만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소용없는 일인 줄은 안다. 엿장수 마음이란 말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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