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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명태찜에 동동주가 맛있는 정자나무집

마산 내서읍에 가면 정자나무집이란 맛있는 주막이 있습니다. 제가 주막이라고 하는 것은 식당이 요즘답지 않고 옛날다운 분위기가 많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아, 내서라고 하면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보통 중리라고들 하지요. 아마 내서에 중리역이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내서는 읍이라고는 하지만, 보통 읍면과는 달라서 자그마한 군보다도 인구가 많는 신도시입니다.


정자나무집 식당은 내서 대동이미지 아파트를 지나 감천방향으로 약 1~2백 미터쯤 올라가면 전안초등학교가 나오고 그 다음에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마을 이름이 전안마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동이미지 아파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죽 올라가면 삼계마을이 나옵니다. 내서는 이미 어느 곳이든 아파트촌으로 뒤덮여 있지요.

신도시 내서를 무학산과 여항산 줄기가 감싸고 있고 그 사이에서 감천계곡이 흘러내리는 것은 커다란 복입니다. 삭막한 도시의 사막에 깃든 오아시스라고나 할까요. 그 오아시스 입구에 정자나무 식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허름합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색깔로 치장한 인테리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사실은 아늑한 평온을 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추운 겨울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 동동주의 달콤한 맛에 취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또 여름에는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이에 맺힌 땀방울마저 얼것 같은 시원함을 한없이 누릴 자유가 있습니다. 불편함으로부터 얻는 평온과 자유라…, 그럴듯하지요?    

아래 사진은 그 불편한 정자나무집의 내부 전경입니다. 사실은 뭐 전경이랄 것도 없습니다. 너무 좁으니까요.


난로가 피워진 내부는 무척 따뜻했지만, 그래도 찬바람에 귀를 얼리며 백여 미터를 걸어왔기에 따뜻한 아래묵이 깔린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습니다. 이게 아마 심야전기보일러란 것이지요? 식사시간이 끝나가는 시간이었기에 한산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마지막 손님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청국장이었나 봅니다. 

무척 맛있게 보였지만, 청국장은 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미 다른 곳에서 점심을 배불리 먹고 왔기 때문입니다. 청국장뿐만 아니라 촌국수도 맛있다고 했지만, 다음 기회에 맛볼 수밖에 없겠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 안 먹고 오는 건데…. 사실 이렇게 허름하고 불편한 집에서 옛 냄새 물씬한 맛있는 청국장을 맛볼 수 있는 기회란 별로 없거든요.  



대신 동동주에다 명태찜을 하나 시켰습니다. 배가 너무 불렀던 터라 간단하게 배부르지 않은 안주가 없냐고 물었더니 명태찜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명태전이나 명태찌개는 많이 먹어보았지만, 명태찜은 처음 들어보는 요리였습니다. 명태로도 찜을 하나? 아무튼 배부르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니 한번 먹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명태찜과 동동줍니다. 술이 얼큰하게 한잔 된 상태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다시 보니 또다시 입맛이 당기는군요. 동동주도 일품이었지만, 처음 먹어보는 명태찜 맛이 독특했습니다. 계란과 나물과 함께 씹히는 명태 살맛이 깔끔했습니다. 담백하면서도 매운 양념 맛이 톡 쏘는 게 동동주 안주로서 그만이더군요. 

게다가 정말 배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건 가까이 찍은 사진입니다. 맛있어 보이십니까? 하긴 먹어봐야 맛이죠. 사진으로만 보고서야 알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취객이 찍은 사진을요. 언제 한번 시간 나시면 들러보세요. 위치는 위에서 제가 가르쳐 드렸죠? 그러나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오. 저  절대 그 집 영업사원 아닙니다.


술이 반쯤 된 상태에서 나오니 집이 이렇게 생겼군요. 들어갈 때는 '스페셜 특선메뉴 청국장+보리밥'도 안 보이더니 이제야 보이는군요. 아무튼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명태찜이었습니다. 동동주도 맛있었지만 명태찜은 독특한 일품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동동주와 파전을 시켜 먹어보고 동동주와 명태찜의 조합과 비교해봐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자나무집 앞에는 이렇게 커다란 정자나무가 서있었습니다. 정자나무를 둘러싼 은색으로 빛나는 금속물질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냥 통나무, 하다못해 나무판대기로 울타리를 쳐도 얼마나 보기가 좋았을까? 금속성의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하얀 콘크리트가 거슬린 것도 물론입니다. 도대체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가는 세월의 옷을 벗어던지고 추운 겨울을 맞는 정자나무가 대견하기만 합니다.


전안마을을 벗어나 버스를 타기 위해 터덜터덜 걸어오는데 길이 꾸불꾸불합니다. 분명히 차도 옆의 보도는 차도처럼 반듯해야 할 정상일 터인데, 동동주에 취한 제 눈이 꾸불거리는 것일까요? 고개를 흔들고 다시 쳐다보았지만, 역시 길은 꾸불꾸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런데…

아, 일부러 길을 이렇게 꾸불거리도록 만들어 놓았구나! 오, 이 빛나는 센스. 마산에도 이런 아름다운 보도가 있었다니.


꾸불거리는 아름다운 길엔 벤치도 놓여있었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걷다보면 누군가는 저 벤치에 앉아 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특히 저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센치에 빠져드는 낭만주의자라면 말입니다. 아니 낭만주의는 무슨, 그냥 감상주의자라고요? 네, 그래도 좋습니다.  


아무튼 대단한 발견이었습니다. 회색으로 칙칙한 마산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보도가 있었다니…. 동동주의 단맛에 취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운 보도, 조만간 다시 한 번 동동주를 마시고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하겠지요.

"또 핑계대고 건수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