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별로 할 이야기도 없고 해서 쓸 데 없는 이야기로 블로그 한 쪽을 채워볼까 합니다.

요즘 제가 대림차 정문 앞 정리해고 반대 농성장에 주로 살고 있는데, 오랜 친구가 놀러왔습니다. 놀러왔다는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제가 놀러오라고 전화했으니까 놀러왔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놀러오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농성하는 사람들에겐 한 사람이라도 더 와서 놀다 가주는 것이 고마운 일입니다. 

김종길이란 이 친구와 천막 안에 앉아 술을 한 잔 기울이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머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사실 최근 1~2년 새에 머리가 많이 빠졌습니다. 계속 빠지고 있는 중인데, 남아있는 머리카락들이 얼마나 더 버텨줄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언젠가는 영화 속에서 일본열도가 태평양 바다 속으로 침몰하듯 그렇게 사라지겠지요. 

아마도 이 친구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도 그래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은 제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남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저도 유쾌하게 웃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친구에게는 아주 친한 형님뻘 되는 지인이 있는데, 완벽한 대머리라고 합니다. 눈썹 위로만 본다면 율 브린너를 닮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어느날 이 친구는 이 대머리 형님과 함께 목욕탕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옷을 벗고 목욕탕에 입장한 이 형님, 번쩍거리는 머리와는 달리 가슴에 털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 이 친구 대뜸 그 형님에게 물었겠지요. "아니 형님, 머리엔 털이 하나도 없는데 가슴에 웬 털이 이렇게 많이 난 겁니까? 가슴에 털은 안 빠지던가보지요?" 

그러자 이 형님도 참 민망했던지 그러더랍니다. "그러게 말이야. 머리에 털은 다 빠졌는데, 이 가슴에 털은 하나도 안 빠지고 오히려 더 무성해지는 듯이 보이니. 아, 머리 대신 이 가슴에 털이 차라리 빠져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고 보니 이 형님은 가슴에 털만 무성한 게 아니고 턱, 다리, 팔 등 머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위가 털로 덮여 있었다는군요.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그럴 수는 없을까요? 가슴 털을 떼어내 머리에 이식한다든가 뭐 그런 기술이 없겠는지 말입니다. 대머리 이거 안 당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그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닙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건 의학적 통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긴 합니다만, 스트레스성 암환자 중에 대머리의 비중이 상당히 높지 않을까요?

제 고등학교 동기 녀석도 듣자니 얼마 전에 가발을 하나 장만해 쓰고 나타났더랍니다. 함께 천막에서 놀고 있는 여영국이란 친구가 동창회에 갔다가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보았다고 하더군요. 근 20년을 대머리로 살아온 친구가 왜 느닷없이 가발을 썼겠습니까. 그 친구가 겪었던 스트레스를 우리는 감히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얼마 전에 루저파동이란 것이 있었지요? <미녀들의 수다>란 프로에 출연한 어느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다!"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 세상이 한 동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죠. 그런데 더 웃기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지만, 키 작은 루저들의 공분의 함성에 묻혀 그냥 넘어갔었답니다. 어떤 블로거가 일본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거든요. 

"일본에서는요. 키 작은 남자요? 그런 건 신경도 안 써요. 그게 문화적 차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여성들 참 문제에요. 일본 여성들은 키나 외모 이런 것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걸 찾지요. 키 작아도 능력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단, 일본 여성들도 꺼리는 건 있어요. 그러니까, 대머리만 아니라면 외모를 따지진 않는다는 말이죠." 

자, 들으셨죠? 저는 이 글을 읽는 순간 경상도 사투리로 '완전 디비질'뻔 했답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이 말이 의미하는 진정한 뜻이. 키 작은 것보다 대머리가 더 루저다, 이런 말 아닙니까? 그게 일본 이야기라고 해도 마찬가집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한국 사람이고, 그는 결국 키 작은 건 루저가 아니지만 대머리는 루저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거든요.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 블로그 한 쪽을 채우기로 했던 쓸 데 없는 이야기가 또 너무 길어졌네요. 아무튼 오늘 하고자 했던 쓸 데 없는 이야기는 다름 아닌 '가슴엔 털이 저렇게도 많은데 왜 머리엔 털이 하나도 없을까? 그것이 궁금하다!'였습니다. 뭐 별게 다 궁금하다고 하시겠지만, 신기한 건 사실이잖습니까?

번쩍거리는 대머리의 사나이가 가슴에 수북히 털을 달고 선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다른 곳은 안 빠지는데 왜 머리만 빠지는 것일까요?
Posted by 파비 정부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