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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절 입구에 세워진 문 이름, 문왕천? 천왕문?

지난 10월 25일 장복산에 올랐습니다. 진해 시민회관 쪽에서 장복산 공원을 거쳐 삼밀사로 올랐는데요. 삼밀사는 장복산의 중턱쯤에 있는 절이었습니다. 저는 이 길이 처음입니다. 장복산 공원을 지나 조금 올라가니 아래 사진과 같이 평화통일기원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이야 갸륵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진심은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오늘 김주완 기자가 올린 블로그 포스트에도 보니 팔공산 동화사에 통일기원대전이 거창하게 지어져 있고 현판에는 노태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하던데요. 아무튼 저는 통일을 자주 입에 담는 분들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수준인데, 역시 거시기 하더군요.

대규모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으로 긴장을 조성하고, 무력도발로 충돌을 야기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고 통일을 이야기하는 판이니 평화니 통일이니 하는 말들이 오염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이렇게 돌탑을 쌓아 놓았군요. 

옛날 친구의 신혼여행에 따라갔다가 마이산에 세워진 돌탑들을 보고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나던데요. 누가 처음 쌓기 시작했을까요? 저도 돌을 하나 올리고 싶었지만 행여나 무너질까 그러지 못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거의 땅바닥에 얼굴이 닿을 정도랍니다. 돌탑을 지나자 이번엔 커다란 석등처럼 생긴 조형물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두 개가 양쪽에 서있었는데요. 이 절은 매우 특이하군요. 일주문은 없고 대신 이 석등이 일주문을 대신하는 듯이 보이는 형상이었습니다.   


석등을 지나 가파른 경사 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니 드디어 절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사가 워낙 가파르다보니 매우 힘들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현판이 보입니다. <장복산 삼밀사>라고 씌어 있습니다. 보통 무슨 산 무슨 사라고 적어놓는 것은 조계종의 오랜 전통입니다. 조계종은 선종의 맏형으로서 보조국사 지눌스님에 의해 9산을 통합하여 창건된 종파라고 하던데요.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종이 교종을 기반으로 선교 통일을 기한 데 비해 조계종은 선종이 중심이죠.

그래서 항상 절 이름 앞에 산 이름이 먼저 붙는다고 하더군요. <조계산 송광사>처럼 말입니다. 아, 말이 나온 김에… 조계산의 원래 이름은 송광산이었죠. 그런데 지눌스님을 존경하는 왕의 명에 의해 송광산은 조계산으로, 조계사는 송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대요. 재미있는 일이죠.   


하여간 이 절도 장복산 삼밀사란 현판을 단 것을 보면 선종의 전통을 계승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그런데 현판이 한글로 되어 있군요. 그리고 절 이름은 보통 일주문에 새겨놓잖아요? 그런데 이 건물은 아무리 봐도 일주문과는 달라 보이는데요. 일주문이란 말 그대로 기둥 한 개만으로 세워진 문을 말하잖아요?

게다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가 아니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것도 한글로 <장복산 삼밀사>라고 써놓으니 특이하다 못해 이게 절이 맞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군요. 그런데 사진의 밑을 보세요. 같은 건물 1층에 보니 <문왕천>이란 현판이 보이시죠? 이게 뭘까요? 저는 여기 한참 서서 이게 뭘까 하고 고민했었답니다. 

문왕천? 문왕천? 문왕천? 

도대체 문왕천이 뭐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제석천은 들어봤지만 문왕천은 처음 들어보는데? 아, 거 참, 무얼까요? 
……… 


옆에서 함께 한참을 지켜보던 아들 녀석이 대뜸 말합니다. "아빠, 혹시 이거 천왕문 아닐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현판 <장복산 삼밀사>는 현대식으로 좌에서 우로 쓰기를 해놓고, 아래 현판은 다시 우에서 좌로 쓰기를 한다면 그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이건 한글이잖아. <문왕천>이 분명해." 그러자 아들 녀석이 말했습니다. "일단 들어가 보면 알겠지, 뭐." 

건물의 입구에 들어선 저는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거기엔 4대 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천왕들이 몹시 화가 났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들이 지키고 있는 문을 두고 문왕천 운운 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저는 이 절을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참 경제적인 사찰이로군. 일주문을 대신해 석등 두 개를 세워두는 센스에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합쳐 하나의 건물에 담는 이 놀라운 발상이야말로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 게야. 하긴 땅이 좁으니 어쩔 수 없기도 했을 테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저 문왕천인지 천왕문인지는 마음에 걸린다 말이야."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지금도 문왕천으로 보이는데요. 
어쨌든 이 절에서 내려다보는 진해만은 참 아름다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