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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천국을 오르는 계단,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오랜만에 불국사에 다녀왔습니다. 저와 아들은 경주 대능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불국사까지 갔고 아내와 딸은 차를 타고 갔습니다. 연휴라 그런지 도로에 차가 많이 다녀 애를 먹었습니다. 제가 처음 불국사에 갔던 것은 아마도 국민학교 6학년 때였을 겁니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대부분 국민학교 수행여행지가 경주였습니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자하문. 자하문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사람이 필자. 마침 아들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때 불국사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찍어둔 사진도 없습니다. 다만 기억에 남는 것은 경주 시내의 어느 여관에서 친구들과 밤새 선생님을 피해 놀던 기억뿐입니다. 그리고 다음 경주에 간 것은 신혼여행 때였습니다. 마산 완월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우리가 술 취한 친구들을 뒤로 하고 도착한 곳이 경주였습니다. 

그리고 첫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 후, 그러니까 지금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아장아장 걸을 무렵에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경주에 한 번 더 갔습니다. 당연히 첫 신혼여행지였던, 그리고 가장 많은 사진을 찍었던 불국사에 갔음은 물론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네 번째 불국사에 간 셈입니다. 그러나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새롭다는 것입니다. 

자하문 바로 아래에서 찍은 현판

일주문을 향하는 길이 여느 절처럼 오솔길이 아니란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입니다. 그러니 늘 붐빌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한적한 오솔길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불국사의 일주문도 이미 일주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랩니다.
 
일주문은 본래 속세에서 묻은 마음의 때를 벗고 하나로 하여 부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의 기둥으로 문을 만들어 일주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국사 일주문에는 가운데에 쇠기둥으로 분리대를 만들어놓고 그 옆에 표를 받는 함이 놓여있고 검표원이 서있습니다. 

그러나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넘어서면서부터 우리는 "역시 이곳이 바로 불국사로구나!" 하고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불국사의 백미는 누가 뭐라 해도 청운교, 백운교로 대표되는 석축입니다. 천왕문을 지나 돌로 만든 다리를 건너면 바로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거기에 웅장한 불국사 건축의 장관이 우뚝 버티고 있습니다.      

신라인의 섬세한 아름다움이여. 경주박물관에서 보았던 찬란한 금관, 화려한 귀걸이들, 건물을 지을 때 벽면에조차 빼어난 예술적 조각으로 치장했던 신라인들의 미적 감각이 이곳에서 절정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마침 옆에서 석조물을 바라보던 어떤 장년의 부부가 물었습니다. 

자하문에서 내려다 본 백운교, 청운교



"그런데 여기 자하문이 어디를 말하는 거죠?" 
"네, 바로 여기 보이는 이곳이 자하문입니다. 여기 청운교가 보이시죠? 그리고 그 위에 백운교, 거기를 다 오르면 자하문이죠. 자하문 안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대웅전, 부처님이 계신 곳 즉 불국토랍니다." 

그러나 그분은 여전히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자하문이라고 어디 씌어 있죠?" 
아마도 자하문 현판에 씌어진 紫霞門이 자하문인지 아직은 믿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갑자기 저도 불안해졌습니다.
'이거 혹시 아니면 어쩐다?' 

다급하게 안내판을 살폈더니 다행히도 자하문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세요. 여기 안내판에 보시면 청운교17계단을 오르고 다시 백운교 16계단을 더 오르면 마침내 자하문에 이른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제야 그 장년의 관광객은 '이게 진짜 자하문이었군!' 하는 투로 메모장을 꺼내 열심히 적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장년 부부의 모습을 보며 매우 흡족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래, 나이가 들어 저렇게 공부하는 자세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게다가 조상들의 숨결이 어려 있는 문화유산에 대한 공부라니 이보다 더 갸륵하고 행복한 삶이 또 있을까.'   

나는 그 정성에 감복하여 대웅전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석가탑이며 다보탑을 구경하는 것을 제쳐두고 자하문으로 먼저 갔습니다. 자하문 아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원래 사람들이 서서 이곳 자하문을 바라보고 있는 저곳은 커다란 연못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연못 물결 아래 자하문의 그림자가 일렁거렸을 것입니다. 자하, 붉은 노을이란 뜻으로 부처님의 광명을 형용한 것이라고 하니 연못 속의 자하문 그림자는 곧 부처님의 광명이 속세에 비친 것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자하문에 이르는 청운교와 백운교는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아니었습니다. 

청운교, 백운교는 '교'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계단이 아니라 다리입니다. 다만 사람이 건너다니는 다리가 아니라 속세의 때를 벗고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고행의 다리였습니다. 서른세 개의 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덧 청운을 지나 백운에 이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하문은 붉은 노을, 인생에서 백운의 마지막도 곧 붉은 노을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대교나 크리스트교 세계에서 말하는 '빠스카'란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민족과 스스로 수난을 택한 예수의 빠스카가 불가의 고행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하문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의 좌우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서있다.


그러나 피안의 세계에 다다르기 위해선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선 차이가 없을 듯합니다. 세상 모든 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음만 먹고도 세상 일이 뜻하는 대로 될 수만 있다면 차안이니 피안이니, 지옥이니 천국이니 하는 말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자하문에 서서 한참을 그렇게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곳에 연못이 그대로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연못에 비친 자하문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폭포처럼 연못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하얀 물보라가 일며 한없이 아름다운 오색 무지개가 펼쳐지고 잔잔한 물결 속에 아스라이 자하문의 그림자가 보일 듯합니다. 

그러나 피안의 세계로 가는 다리는 높고 험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이곳에 오르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굳이 이곳으로 오를 필요는 없습니다. 왼쪽으로 돌아 경내로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옛날 신라의 스님들도 사실은 이곳으로 오르내리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을 해봅니다. 

청운교 앞에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어쩌면 이 다리는 차안의 세계(속세)에서 피안의 세계(불국토)로 넘어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고행에 대해 가르침을 주고자 상징적으로 만들어놓은 가파른 다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무나 쉽게 넘나들었다면 청운교와 백운교, 자하문에 담긴 의미가 너무 하무하지 않겠습니까? 

자하문 너머 대웅전을 쪽을 바라보니 한 떼의 무리들이 줄을 지어 대웅전을 향해 절하기도 하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도 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중국 또는 태국? 생김새로 보아 불심이 충만한 남방계 사람들이 분명해보입니다. 호젓한 불국사 대웅전을 담고 싶어 한참을 기다렸으나 결국 포기해했습니다. 

조용한 불국사를 사진에 담는다는 것은 웬만한 정성이 없이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