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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선덕여왕이 만든 분황사의 석불머리, 왜 없어 졌을까?

국립경주박물관에 가면 목 없는 석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기다랗게 줄을 지어 앉은 목 없는 석불들을 보노라면 섬찟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석불들의 머리는 왜 없어진 것일까요?

선덕여왕 기행으로 국립경주박물관에 함께 간 김주완 기자가 목 잘린 석불들을 보고 있다.

  
위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김주완 기자가 안내문을 읽고 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석불의 머리는 왜 없어졌을까?
1965년 경주 분황사를 발굴 조사할 때, 절 안에 있는 우물 속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석불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머리가 잘려진 것들이었습니다. 이 불상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그렇다면 불상들의 머리는 왜 없어진 것일까요? 
그 원인으로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를 들 수 있습니다. 지진이 나면 받침대 위에 있던 불상이 굴러 떨어지는데, 가장 약한 부분인 목이 부러지기 쉽습니다. 또 몽고군의 침입, 왜란, 호란과 같은 전란에 의해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유교를 국가 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는 일부러 불상을 훼손한 적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간혹 땀을 흘리는 불상에 관한 기록이 보입니다. 이러한 일이 나면 유생들은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으로 간주하여 불상을 파괴하였습니다. 목불은 태워버렸고, 석불이나 금동불은 우물, 저수지, 바다에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머리를 잘라 관청에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분황사 우물 속에서는 머리가 없는 석불의 몸체에 비해 적은 수의 머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머리 없는 불상들은 머리가 잘리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깊은 우물 속에 버려지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석불의 머리를 잘라 분황사 경내 우물에 버린 것은 조선의 유생들

분황사 우물 속에서 발견된 머리 없는 석불들은 지진이나 전란에 의해 피해를 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진이나 전란은 머리가 잘린 채 우물 속에 버려진 사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지진이나 전쟁의 와중에 불상의 목을 잘라 우물에 버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조선시대 유생들이 저지른 일이 분명합니다. 매우 과격한, 오늘날로 말하자면 근본주의자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이 근본주의 혹은 원리주의라고 부르는 것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이나 사상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는 결벽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그렇고, 기독교 근본주의가 그렇습니다.

몇 년 전 아프카니스탄에서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바미얀 석불을 탱크를 끌고가 포격을 가해 파괴한 것입니다. 몇 일 몇 시에 파괴하겠다고 공언했으므로 그 시각 세계의 시선이 그곳에 주목되었을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일은 마치 사형장의 사형수를 TV를 통해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자행한 당사자는 바로 당시 아프카니스탄 정권이었던 탈레반이었습니다. 바미얀 석불은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클 뿐만 아니라 역사유적으로서도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입니다. 현장법사는 이 석불을 일러 ‘황금이 번쩍이는 화려한 석불’이라고 했습니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의 혜초스님도 722년에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그럼 이런 일은 과거의 우리나라나 이슬람 세계에서만 일어났을까요? 개방적인 문명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애석하게도 근본주의란 최면에 걸린 유생들이 저질렀던 범죄행위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 공원이 하나 있고 거기에는 단군상이 놓여있습니다. 이 공원은 저도 가끔 가는 곳이고 엊그제는 제 아내가 속한 여성단체에서 마을문화제를 매년 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단군상의 목이 예리하게 잘려나간 적이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이야기도 아니고 불과 3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는 가끔 불상에 똥물을 끼얹고 도망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듣습니다. 작년 부산의 어느 체육관에서 열린 모 종교단체의 신앙대회에서는 참으로 기괴한 기도가 벌어졌는데, 부산의 절 이름을 하나하나 들먹이며 불태워달라고 기도를 하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돼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잔혹한 근본주의자들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얼마든지 있다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광신적인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전쟁이 일어나고 자신과 다른 모습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을 살육하는 잘못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경주박물관 한켠에 일렬로 늘어선 목 없는 불상들을 모며 오만 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쳤습니다.

그런데 잘려진 불상의 머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잠시 후 불상들 뒤에 보이는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더니 거기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섬찟…!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창건한 절입니다. 절의 이름에서 보듯 여황제(황)의 향기가 묻어나는(분) 절입니다. 선덕여왕은 즉위하던 해에 신하들로부터 성조황고란 칭호를 받기도 했지요. 

성조황고. ‘성스런 혈통을 지닌 여황제’란 뜻입니다. 이미 당시에 자주적 독립국가였던 신라는 여자를 황제로 옹립할 정도의 배포로 분황사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조상들의 위대한 힘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일부 유생들은 사대주의와 근본주의의 포로가 되어 악마의 만행에 앞장서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