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낙동강에서 접한 노무현 서거

낙동강을 걷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팀은 3차구간이 시작되는 단천교에서 시작하여 단천리 비경과 이육사기념관을 거쳐 윷판대에 올라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래로는 까마득한 천길 단애다.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에 떨면서도 아래를 내려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그때 누군가가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하고 말했다. 그는 행군을 하면서도 귀에 리시버를 꼽고 라디오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방금 뉴스에 나오는데 노무현이 죽었대.” 이 무슨 황당한 소리란 말인가. 신정일 대표는 어이없다는 듯이,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거야. 오늘이 만우절이야? 오늘 만우절 아니잖아. 그런데 방송국에서 그런 거짓말도 하나?”


사람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술렁거렸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야, 너 혹시 소식들은 거 있어? 노무현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된 거야. 뭐? 모른다고? 빨리 뉴스 틀어봐. 그리고 바로 전화해줘.”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지만 곧, 믿을 수 없는 또는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은 사실이 되어 우리를 침묵 속에 밀어 넣었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까마득한 윷판대 아래로 휘감아 돌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던 낙동강이 갑자기 흐릿한 회색빛으로 두려움을 몰고 왔다. 이제 겨우 두  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리고 두려움은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다. 화가 난다. 세상이 밉다. 구체적으로는 이명박이, 이명박의 똥개를 자처하는 검찰이, 모든 똥개들의 나팔수 조중동이 죽이고 싶도록 밉다.


이렇게 힘든 낙동강 걷기는 처음이다.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고 또 잘 찍히지도 않는다. 비록 카메라를 잡은 지가 갓 석 달째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구도를 잘 잡는다는 칭찬을 들었었다. 그런데 엉망이다. 전차의 도보기행에서는 찍은 사진이 천장을 넘었었다. 그러나 이번에 채 50여장도 채우지 못했다.


윷판대를 떠난 일행은 도산서원을 지나 자연공원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며 점심을 먹었다. 세 명의 길벗이 이곳에서 인사를 고했다. 조문을 가야겠단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오지에서 어떻게 가겠냐고 걱정들을 했지만, 그들은 짐을 챙겨 서둘러 떠났다. 나머지는 계속해서 걸었다. 비보에 기진맥진한 탓이었을까. 목적지인 병산서원에 훨씬 못 미친 우리를 태우기 위해 버스가 왔다.


병산서원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건축학도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한다는 병산서원. 아름다운 해넘이로 유명한 병산서원에서 그러나 우리는 붉은 노을을 볼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칙칙한 회색빛으로 하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고 있었다. 다음날도 여정은 계속되었지만, 너무나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여정은 처음이다.


유장한 낙동강의 아름다운 물결도, 역사도, 사람도 모두 덧없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그저 회색이었다. 어젯밤 늦게 집에 돌아온 나는 제일 먼저 인터넷부터 켰다. 온통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이다. 세상 밖 낙동강 상류의 오지에서 들었던 소문이 이제 눈앞에 사실로 다가왔다. 슬픔이 밀려온다. 소주 두병을 샀다. 취하지 않고서는 잠들기 힘들 것 같았다.


오늘 점심시간, 어느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을 시켰다. 텔레비전에선 노무현의 일대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 속에서 고무장화를 신고 밀짚모자를 쓴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중국집 여주인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에고~ 저렇게 소탈하신 분이었는데. 고마 고향 사람들과 농사지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국집 주방장이자 주인아저씨도 맞장구를 쳤다. “저기 다 이명박이 때문인기라. 쥑일 놈들.” “저리도 소박하게 사는 사람을 호화판 어쩌구 하며 욕하는 놈들도 미친 놈들이제.” 내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사장님. 호화판 어쩌구 한 놈들, 그거 바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아입니까. 노무현 사저가 땅이 천 평이 넘는다면서 말입니더.”


“전두환이며 노태우며 이런 더러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집터가 평당 천만 원만 하겠습니꺼? 그런데 봉화마을 땅값은 얼마겠습니꺼.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는 그거 오천 원에 사라고 해도 안 사겠습니더. 골짝에 뭐할라꼬. 그런데 그걸 씹고 대든 놈들이 바로 조중동 아입니꺼. 이집에 보니 동아일보 들어오는 모양인데, 낼부터 당장 끊으이소.”


주인 아줌마는 갑자기 미안했던지 말을 돌렸다. “그란데 아이씨요. 엊그제 테레비에 보니까 이명박이 나왔던데 말입니더. 모내기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고 하데예. 그란데 내가 그거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시상에, 모내기 한다는 사람이 말입니더. 하얀 와이샤스를 입고 팔도 안 거지고 모를 심고 있더라 이 말입니더. 흙 하나 안 묻히고… 쇼를 해도 잘 해야지예.”


그녀는 그러면서 논둑에 앉아 동네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생전의 노무현을 바라보며 눈물지었다. 그래, 그녀의 말처럼 하얀 와이샤스를 입고 국민을 향해 쇼를 벌이는 대통령이 있는가하면 노무현처럼 진심으로 국민들과 소통하고자했던 대통령도 있었다. 짬뽕을 먹고난 나는 중국집을 나서면서 말했다. “사장님, 낼부터 당장 동아일보부터 끊으이소.”


나는 노무현의 지지자는 아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때 그를 찍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비록 그를 또는 그가 속한 정당의 견해를 이해하진 못해도 그는 영웅이었다. 말하자면, 개천에서 용이 났으며 그런 용을 개천에 사는 우리는 선망과 희망을 섞어 바라보았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보통의 용들이 모두 개천을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과 달리 개천으로 돌아왔다. 밀짚모자를 쓰고 논에 오리를 몰면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런 모습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봉화마을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로 늘 붐볐다. 이런 일이 우리 역사에 언제 있었던가. 어떤 대통령이 퇴임 이후에 이런 대접을 받았던 예가 있었던가.


그러나 그런 모습이 이명박의 눈에는 가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넘쳐나는 봉화마을의 관광객들을 보며 이명박은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못하는 괴로움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검찰을 닦달했던 것일까. 그리고 똥개를 자처한 검찰은 소명도 하지 않은 조사내용을 언론에 슬쩍 흘리며 전직 대통령을 모욕하는 비열한 모습을 연출한 것일까. 


진짜로 모를 심고 있는 생전의 노무현을 눈물을 훔치며 바라보던 중국집 아줌마의 마지막 말이 다시금 생각난다. “진짜 죽어야 할 전두환이 같은 놈은 뒤지도록 안 뒤지고, 저런 소박한 분이 왜 죽느냐 이 말입니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걸 액면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그의 진심을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의 유언은 직접 몸으로 보여준 행동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중차대한 시국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세발의 미사일 쏘았다고 한다. 늘 그렇지만 북한은 저런 식으로 남한의 수구세력을 도와준다. 또 남한 국민들이 크나큰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감행한 도발에 비판은커녕 도리어 부화뇌동하는 듯 보이는 민노당의 논평도 참 걱정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그들이 벌이는 엉뚱하고 무모한 쇼에 관심둘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저 묵묵히 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몸을 던져 보여준 유서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며…. 그게 전직대통령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길이 아닐까. 방금 전 봉화마을에서 취재 중인 김주완 기자의 블로그를 살펴보니 봉화마을에 촛불이 켜지고 있다고 한다.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