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노무현의 꿈은 노선과 가치가 살아있는 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진=경남도민일보
노무현이 떠났다. 그러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서로 모순될 것 같은 이 두 명제를, 그러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의 육신은 이승을 떠났지만, 그의 혼은 이 세상에 남았다.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이 잊혀져가던 그의 혼을 되살려낸 것이다.
그는 살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실망을 주기도 했다. 실망은 반드시 희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실망도 없다. 우리가 이명박에게 아무런 실망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바로 그에게서 아무런 희망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무한한 기대를 보냈다.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사람들이 바라마지않는 희망덩어리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그가 살아왔던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탈권위주의, 서민적인 대통령, 우직함, 바보스러움, 솔직함, 무엇보다 그는 솔직한 대통령이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정치인이나 언론인 하면 거짓말쟁이들이었다. 그래서 그의 솔직함은 더욱 빛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재임 중에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 강행으로 진보진영으로부터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과거의 동지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섰으며 그를 향해 돌을 던지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무현은 민주주의 신장과 남북관계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루어냈다. 한나라당 정권이 만들어놓은 국가부도사태도 10년의 민주정권은 잘 수습했다. 경제는 회복됐으며 다시 본 궤도에 올라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밝은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있게 마련이다.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이 추구했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였다. 한미FTA가 바로 그 정점이었다. 그는 신자유주의가 나라경제를 발전시키고 국민들을 잘 살게 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혹은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어두운 면은 너무도 참혹했다. 철거민들이 정처 없이 쫓겨났으며 농민들은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늘어나고 KTX 여승무원들은 쇠사슬 시위로 맞섰다. 민주주의가 독재를 대체했지만, 그 자리에는 국민 대신 시장이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래서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신장되고 사람들은 자유를 더 많이 누리게 되었지만, 실상 그 자유와 민주의 대부분은 자본이 독식하게 되었고 서민들은 비탄에 빠졌다.
그러나 오늘 노무현에 대한 이 유례없이 뜨거운 추모의 열기는 무엇인가? 왜 그토록 사람들은 그를 못 잊어 하며 울부짖는가? 한때는 미워하기도 했을 그를 향한 충성스러운 행렬에 담긴 뜻은 무엇인가? 노무현은 죽었지만, 그를 영웅으로 재탄생시킨 힘의 원천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솔직함에서 찾는다. 그의 솔직함이야말로 노무현이 ‘바보’이기도 하면서 위대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야말로 국민과 소통할 수 있었던 최대의 무기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엊그제 TV에서 그가 의연히 살아있는 모습으로 지난 정치역정에 대해 토로하는 걸 들었다. 그는 매우 차분한 어조로, 그러나 슬픈 얼굴로 말했다. “내가 제일 괴로웠던 것은 과거의 동지들이 한미FTA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데모를 할 때도 아니었고, 탄핵 당할 때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괴로웠던 것은 열린우리당이 해체될 때였다. 열린우리당에 나는 모든 것을 걸었었다. 지역과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는 정당이 아니라 진짜 노선과 가치가 살아있는 정당, 그런 정당을 나는 만들고 싶었다. 내가 남기고 싶었던 것은 그거였다.”
노선과 가치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정당. 그것이 노무현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과거로 역행하려는 기득권의 강력한 본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고 그는 좌절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죽어서야 TV에 나온 그의 모습을 보며 그의 꿈을 헤아렸다. 그의 육신이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이십년 전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살고 있던 마산창원 지역의 한 노동조합 파업농성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그는 그때 겨우 내 나이 정도나 되었을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그저 연설이나 하고 떠나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운동가였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우리의 절친한 이웃이었다. 아마도 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인간 노무현의 그런 모습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가 연설하는 모습보다 사람들 속에서 웃는 모습을…. 그러나 이제 그는 떠났다. 영원히 그의 육신은 이 세상 밖으로 떠났다. 그렇지만, 그의 혼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나는 노사모가 아니었지만, 이제부터 노사모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무현의 정신과 노무현의 희망을 대변하는 노선과 가치가 살아 움직이는 정치, 바로 노무현의 꿈과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노사모 말이다. 파비
'시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파정권 10년? 그럼 김태호지사도 좌파빨갱이다 (5) | 2009.06.05 |
---|---|
노무현 서거에 신영철 함께 묻히나 (8) | 2009.06.02 |
낙동강에서 접한 노무현 서거 (1) | 2009.05.25 |
민노당, 봉준호 감독에게 사과해야 (0) | 2009.05.22 |
대통령도 탄핵하던 국회, 신영철은 왜 못하나 (29) | 2009.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