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나를 실망시켰다. 사실 내가 오늘 밤이 늦은 이 시간까지 MBC 연기대상을 시청한 이유는 단 하나다. 마지막 연기대상 수상자에 강마에가 호명되는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내 기대는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강마에는 대상을 받았다. 그러나 전년도 수상자인 배용준이 대상 수상자 명단이 들어있는 밀봉 카드를 열어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는 순간 나는 ‘아차’ 하는 불안을 느꼈다.
결국 연기대상까지 나누어 주다니…
방금 전, 사회를 보던 신동엽이 누가 대상을 수상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자 배용준이 “가장 절친한 후배 송승헌이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불안하게 흘리던 배용준의 미소는 결국 김명민과 송승헌이 공동으로 대상을 받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래, 둘이 받아도 좋겠지. 뭐, 상이라는 게 어차피 서로 나눠먹으려고 있는 거 아닌가?’ 이미 앞에서 수상한 우수상이며 최우수상들이 모두 복수로 상을 나누어가졌다. 대상이라고 해서 별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사위원들도 고충이 많았을 것이다. 김명민이나 송승헌이나 나무랄 데 없이 뛰어난 배우들이다. 김명민은 카리스마의 연기자다. 송승헌의 카리스마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 더욱이 송승헌의 출중한 외모는 수많은 여성팬들을 브라운관으로 사로잡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에덴의 동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피날레에 대한 시청자들의 기대가 있을 터이고, 그 기대를 부풀려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고충들로 심사위원들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MBC 연기대상’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대상만큼은 저울에 달아 그 무게를 가렸어야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상만은 이러면 안 된다.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저울에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중을 가려야 마땅하다. 나는 저울로 달았다면 마땅히 강마에의 김명민이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실로 오늘 이 순간 김명민을 넘어설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의 카리스마는 ‘불멸의 이순신’에서 빛났으며 ‘하얀 거탑’에서 확인되었고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실로 강마에를 통해 보여준 그의 ‘달란트’는 신이 내린 것이었다. 그가 대상이 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이고 아무런 이의도 달아서는 안 되는 섭리와도 같은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확신은 배반당했다.
물론 송승헌이 대상에 한 점 모자람이 없는 훌륭한 연기자라는 걸 너무나 잘 안다. 김명민이 없었다면 송승헌이 대상을 받는 것에 무한한 박수를 치고 싶다. 그러나 이번만은 아니다. 김명민이 있는 것이다. 공동수상이란 그에겐 자랑도 아니고 그저 치욕일 뿐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MBC 총파업 지지발언 한 문소리가 위안
그나마 우수상을 받은 문소리의 소감 중 한 대목이 위안을 준다.
“…… 사실 이 상은 제가 아닌 다른 사람, 이지아 씨나 이다해 씨가 받아야 될 거 같은데요. 음~ 저에게 그러실 거여요. 영화나 잘 하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와서 상까지 받아 가느냐고…… 그렇지만 저도 여기에 올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거든요. 어떤 곳인지 알고 싶기도 하고, 어떤 게 있나 보고 배우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 저는 오늘 이 자리보다 지금 바깥 추운 곳에서 언론악법에 반대하며 촛불을 들고 있는 MBC 노조원들이 있는 그곳에 있는 게 더 편할 거 같아서 사실은 거기로 가려고 했는데, 매니저님이 여기에 꼭 참석해야 된다고 해서 그래서 왔거든요…….”
문소리는 틀림없이 연기대상 행사가 끝난 후 촛불을 격려하러 갔을지 모른다. 아마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그녀가 하는 말 속에서는 따뜻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래도 방송 연예인 중에 이렇게 제대로 정신 박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늘의 실망에 대한 커다란 보상이다.
시상식은 보상식이 되어선 안돼
그러나 어찌되었든 나는 오늘 실망감이 대단히 크다. 앞으로는 제발 상을 골고루 나눠주는 이런 시상식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런 시상식이라면 굳이 비싼 전파를 빌어쓸 필요까지 있겠나. 그냥 친목회 하듯 자기들끼리 모여서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이런 시상법이 초등학생들에겐 꼭 필요하고 바람직한 격려가 될지 몰라도,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시상식은 단순히 한해를 마무리하며 상을 주고 축하하는 자리만이 아니다. 거기엔 어제에 대한 반성과 내일에 대한 비전이 함께 들어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냉정한 평가와 시상으로 그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2008. 12. 30. 밤 자정을 넘기고, 파비
ps; 좀 쪽팔리긴 하지만 어쨌든 표 안내고 대상을 받으면서 김명민이 남긴 마지막 강마에 어록. 이명박은 귀가 있으면 좀 듣고 배우기 바란다. 공자님 말씀도 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불협화음을 잘 조율해서 화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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