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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너는 내 운명?" 사회적 부작용을 우려한다

너는 내 운명!
드디어 새벽의 시어머니가 백혈병에 걸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온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이 마침내 도도한 로하스의 안주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 드라마를 두고 금세기 최고의 막장드라마라는 혹평이 잇따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 막장 드라마, 드라마 같지 않은 드라마의 결말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다. 마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해서 더 자주 쳐다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이 막장드라마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기가 막힌 반전(?)을 선물할 것인지,
기대 섞인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혹시나… 말이다.

 


장기기증과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제고를 기획의도로 한 새로운 가족 드라마?

나는 이 드라마를 첫 회부터 지금까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다 보았다. 혹시나 회식이 있거나 다른 특별한 일이 있어 이 드라마를 시청하지 못했을 때는 인터넷방송(KBS는 인터넷으로 다시보기가 무료다)으로 반드시 본다. 내가 이 드라마에 집착하는 까닭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원래 드라마를 좋아한다.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도 좋아한다.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는 안 본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일일연속극을 단 한 차례도 빠트리지 않고 본 경우는 아무래도 「너는 내 운명」이 처음이다.  처음 장새벽과 강호세의 운명적 만남을 암시하는 오토바이 사건, 그리고 강호세와 김수빈이 만들었던 비행기 안에서의 불편한 조우가 뭔가 심상치 않은 삼각관계를 예고했다. 그리고 드라마는 빠르게 전개되며 흥미를 돋우었다.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강호세와 어설프게 헤어진 김수빈이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 앞에서 죽치던 ‘싫증나서 버린’ 옛 애인과 다투는 걸 엄마에게 들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았을 때,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하는 정도로 그냥 가볍게 넘어갔다. 그런데 갈수록 김수빈이란 여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세상에 저런 정도의 바람둥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특별히 드라마를 보는데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김수빈이 호세의 어머니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사람을 사서 호세 어머니의 차를 앞뒤로 가로막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자기 차로 모신다는 설정까지도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갈수록 이상해지는 캐릭터들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런 정도의 목표의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약간 부도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대로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부도덕한 캐릭터는 김수빈에서 끝나지 않았다. 출연한 모든 사람들이 도덕 불감증이란 캐릭터로 무장하고 나왔다. 염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전부였다.

그래도 처음엔 장새벽과 강호세, 그리고 김나영 선생의 부모만큼은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은 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위한 무대장치쯤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드라마에서 선한 사람들이 돋보이기 위해선 악역들이 필요 이상의 오버페이스를 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나중엔 새벽과 호세에 대해서도 실망하기 시작했다. 강호세의 우유부단함에 대해선 묻어두기로 하자. 이 드라마에서 그가 하는 일이란 거의 없다. 문제는 장새벽이다. 이 캐릭터는 착한 짓은 혼자 독으로 하면서 사람 염장 지르는 재주를 가진 인물이다. 시어머니의 악독함에는 새벽의 역할도 그리 적은 게 아니다.

온갖 기괴한 연기를 다 펼쳐야 하는 양금석을 비롯한 쟁쟁한 연기자들이 애처롭다.[이미지=다음영화]


일례로, 시어머니에게 쫓겨나 대문 앞에서 밤을 지새운 사건은 요즘 세상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다. 그리고 설령 이런 사례가 벌어졌다 하더라도 가까운 친정으로 가서 잠을 자고 다음날 고부간의 갈등을 푸는 것이 순리였을 것이다. 또 친정이 멀리 있다고 하더라도 부잣집 며느리가 갈 곳이 없다는 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그렇잖아도 성격이 괴팍한 시어머니만 더 몹쓸 여자로 만들었다.     

점입가경을 넘어 서스펜스로

그러나 그것마저도 이해하기로 했다. 드라마가 꼭 사람을 선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누어 캐릭터를 정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과 악의 이면을 동시에 공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어느 쪽이 더 부각되느냐에 따라 사람은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선한 사람도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악하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어느 때부터인가 점입가경의 경지마저 넘어서기 시작했다. 갑자기 추리극 또는 서스펜스로 드라마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50대의 홍봉실 여사가 느닷없이 임신을 하는가하면 급기야 달밤에 체조하다 사산했다. 게다가 느닷없이 등장한 새벽의 친모는 과거에 사경을 헤매는 그녀의 남편과 딸아이를 버렸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도대체 극의 전개가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막장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다. 출연 캐릭터들이 하나 빠질 것 없이 부도덕하고 몰염치하다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보아주기로 했지만, 부도덕성을 넘어 사람의 생명까지 함부로 여기는 작가와 연출자의 태도에 대해선 실로 경악이란 말도 모자란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호세의 어머니가 실어증 행세를 하며 새벽과 호세를 이혼시키려한다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오다 못해 불안하기까지 했다. 너무나 어색한 전개가 차라리 애처로웠던 것이다. 함께 드라마를 보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이었을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도 아니고 연출자도 아닌 내가 부끄러웠다. 아마도 그래서 불안했던 것이리라.

갑자기 잉태한 아이를 죽이더니 이번엔 호세 모친에게 사형선고를

그런데 어제는 결국 호세의 어머니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고 말았다. 백혈병에 걸린 것이다. 아, 달밤에 체조하다 햇빛도 보지 못한 새 생명을 죽게 하더니, 이젠 호세의 어머니마저 백혈병이란 희귀한 병명을 붙여 죽이려고 한다. 도대체 서스펜스도 이런 서스펜스가 없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드라마의 음악이 음산한 분위기로 바뀌었던 걸 미처 눈치 채지 못했다. 

도대체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의도로 이 드라마를 기획한 것인지, 갑자기 맹렬한 궁금증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너는 내 운명」의 홈페이지에 들러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내가 지금껏 보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행복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은 매우 바람직했으며 시사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보시라! 정말 훈훈하지 않은가. 세상은 저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실제 드라마의 전개를 보았다면 저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부도덕과 몰염치 나아가 거의 범죄적 스타일로 무장한 사람들이 그려가는 서스펜스에서 저토록 아름답고 훈훈한 세상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의 애초 기획 의도는 “편견과 상처를 극복한 새로운 가족의 탄생!”, “벼랑 끝에서도 꽃피우는 희망의 메시지!”, “장기기증, 나누면 두 배가 되는 행복!”이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과연 이 기획 의도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대답은 “전혀 아니요!”다. 

이 드라마가 끼칠 사회적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반사회적인 내용들, 예컨대, 아이 둘을 가진 장판재 대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회사 사정이 안 좋다며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는다든가, 그런 장 대리가 스스로 무보수로 자기 책상을 지키겠다며 응석을 부리는 따위는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리자. 가정부, 운전기사에게 마치 조선시대 상전이 종 다루듯 막 대하는 것도 그냥 귀엽게 봐주고 넘어가자.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라는 장기기증이나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있다.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이 드라마가 과연 소기의 기획의도를 달성할 수 있을까? 아니면 거꾸로 이 드라마가 장기기증이나 입양 같은 사회적 문제를 희화화 시키고 부정적인 인식만 확산시키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기획의도와 상관없이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는 아주 치욕적인 드라마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가 언제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오롯이 작가의 마음이다. 아마 이 드라마에 대고 이래라 저래라 희망을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너무나 충격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모인 특이한 세계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있을 만한 사람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만 결말을 보자!

그래도 나는 이 드라마가 마지막 종영방송을 하는 그 순간까지 여전히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보게 될 것이다. 이미 나는 이 드라마에 중독되었다. 초두에도 말했지만, 너무나도 특이한 도저히 이 세상에는 현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비상식적이고 부도덕하며 무모하기까지 한 인생들의 결말이 너무나 궁금하다. 그래서 거부하면서도 헤어나지 못한다. 

아! 그러나 어떠하든, 제발 빨리 끝내 주었으면 좋겠다. 빨리 이 혼란스러운 세계로부터 이별하고 싶다. 그리하여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온한 내가 사는 평범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2008. 12. 22.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