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캐롤송이 울려 퍼지는 밤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연인들에겐 더없이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평생을 간직할 추억들이 거리에서 기다리고 있지요. 아이들에게도 최고 행복한 시간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이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데에는 단지 성탄이라는 사건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성탄은 특별한 메시지이며 복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연말연시에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는 날임에 틀림없습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축제가 된지 이미 오래이지요.
창원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빨간 십자가가 빛난다.
크리스마스의 기원
크리스마스란 크리스트Christ와 마스mas의 합성어입니다. 크리스트를 우리나라에선 그리스도라 발음하고 예수를 이름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마스는 라틴어의 미사missa가 고대영어에서 mass로 변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사는 가톨릭에서 매주 주일에 치르는 전례를 의미하지만, 원래는 축일, 축제일이란 뜻입니다. 즉 크리스마스란 ‘메시아의 제전’이란 뜻이라 하는군요.
역사에 의하면, 로마황제로부터 기독교가 공인된 초기에 로마가톨릭은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하였고, 이때부터 세계(물론 기독교의 영향이 미치는)는 성탄절을 성대하게 기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톨릭 교황이 만든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고집하는 러시아정교회는 1월 7일을 성탄절로 기념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세계는 12월 25일이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이 분열된 이후 개신교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불과 백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크리스마스는 이교도의 축일이라 하여 배척하였다고 합니다. 기독교의 최고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사실은 아기 예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이교도의 축제로 배척하던 시절도...
이러한 관점이 있었던 것은 개혁의 기치를 걸고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던 프로테스탄트의 지도자들, 루터나 칼뱅, 쯔빙글리 등이 크리스마스가 제정된 4세기경이 가톨릭이 이교도화하는 계기였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세상에 오기 이전부터 태양신을 숭배하던 이교도들의 축제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도 개신교파 중 일부 교단에서는 12월 25일은 성탄절이 아니라며 배척하고 기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12월 25일이 동짓날이었고, 이 동짓날은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부활하는 날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메시아의 제전’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한 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이점을 고려하였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동지에 태어났든 하지에 태어났든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탄절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꿈과 기쁨과 희망을 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로마가톨릭이나 칼뱅이나 예수에게 바라는 것은 사랑과 평화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일 테니까요.
그런데 저는 오늘날 교회가 사람들에게 꿈과 기쁨과 희망은커녕 위안이나 주고 있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입니다. 위에 보시는 사진은 한 보름 전 창원시청 로타리에 갔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로타리를 삥 둘러친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으로 빛나는 시설물에는 각 교회와 담임목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시청광장 트리에 달린 교회광고판도 물신숭배란 이교도처럼 보여
얼마 전, 한 블로거가 창원시청광장에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에 달린 십자가를 비판한 기사를 봤습니다. 성탄절에만 잠깐 전시하는 것도 아니고 11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무려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을 그것도 시청광장이라는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것이라면 십자가보다는 별을 달아놓는 게 어떠냐는 지적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 입장에서야 트집이라고 했겠지만, 그러나 저는 상당히 공감이 가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어 본 저는 일부러 시청광장에 가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블로거가 트집 잡은 십자가는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눈에는 다른 것이 더 커다랗게 보였습니다. 시청광장을 전세 낸 듯한 크리마스 트리용 전등시설물은 창원시내의 모든 교회들과 담임목사들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꼭 저렇게 자기들 교회이름과 목사들 이름을 광고하듯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요? 그냥 크리스마스 트리만 만들어놓아도 다 교회에서 만들어놓았다는 걸 모르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저렇게 경쟁적으로 상업적으로 보이는 광고판을 달아야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청광장에 설치된 대형트리의 아래쪽은 이렇게 교회와 목사의 이름들이 적힌 광고판으로 빙 둘러쳐져 있었다.
시청광장을 빙 둘러친 광고판을 보면서 몇 달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탕 하나에 하느님을 파는 신도들
서너 달 전에 딸애를 데리러 학교에 간적이 있습니다.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서 걸어오는 아이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먼저 아이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두 분이었는데요. 딸아이에게 사탕과 과자봉지를 건네주면서 그러더군요.
“얘야. 조금 있다가 요 위에 교회 있지? 거기로 오면 사탕하고 과자 더 많이 준다. 그리고 선물도 줄 거야. 그러니까 교회로 꼭 와야 된다. 알았지?”
두 사람은 우리 아이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이 사탕과 과자를 나누어주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제가 가서 아주머니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니 교회가 참모습을 보이며 열심히 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다 모일 텐데, 학교 앞에서 애들한테 왜들 이러십니까? 어린 아이들 눈에 예수님이 무엇으로 보이겠습니까? 하느님이 고작 사탕 하나에 자기를 판다는 걸 어떻게 이해할까요?”
그랬더니 그분들은 저에게도 말하기를, ‘교회의 사명이 어떻고, 믿지 않으면 모두 지옥에 가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구원하는 일이니 복 받을 일’이라며 제게도 교회에 나오라고 열심히 권했습니다. 얼굴이 벌개져서 더는 말을 못하겠더군요. 저는 따지듯이 말했는데 그분들은 화도 안내면서 계속 말을 거니 제가 당해낼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 더욱 오만해진 기독교
어쨌든 이런저런 모습들을 보노라면 기독교의 부정적인 모습만 자꾸 연상되어 마음이 몹시 편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연이어 벌어졌던 희극 같은 기독교인들의 난센스도 자꾸 떠오릅니다.
부산지역 기독교인들이 대규모 기도집회에서 세상의 모든 절간을 불태워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이라든지 어청수 경찰청장의 전국 경찰 복음화 발언은 그것만으로도 오만한 현대 기독교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굳이 절간에 똥물을 투척한다거나 단군상의 목을 베는 무시무시한 행태까지 보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 서울시장 재직시절에 서울시를 들어 하나님께 봉헌한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이제는 대한민국을 들어 하나님께 봉헌할 차례가 아니냐는 우스개소리들이 시중에 많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어청수 경찰청장 같은 분들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행태들이야 이런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알아서 모신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직접 뽑은 창원시장이 대통령의 심중을 미리 헤아려 공공장소를 교회와 목사들의 광고판으로 내어주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무슨 의중으로 그리 하셨을까요? 혹시 교회단체로부터 거액의 광고비라도 접수하셨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운 겨울에 놀고 있는 광장을 이용해 세수를 확보하는 게 그리 나쁜 일도 아니겠지요. 예수. 6세기경 모자이크/ 다음백과
그 내막이야 제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성탄절을 맞이하여 남모르게 사랑을 실천하라는, 또 그 말씀을 몸소 모범을 보이신 예수의 참뜻을 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돌적인 선교운동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선교는 어느 종교인이든 그 의무요 사명입니다. 선교란 또한 신앙인의 기쁨이며 목적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업주의에 빠진 교회의 모습 버리고 사랑의 교회로 다시 태어나기를...
그러나 진정 선교하는 신앙인의 자세에 선다면 자기 교회 이름과 목사의 이름을 광고하기보다는 자기를 희생해 이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몸을 내맡긴 예수의 사랑을 알리는 데 더 노력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 교회와 목사의 이름 대신 경제난으로 고통 받는 민중들의 염원을 담아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바람은 물신숭배에 빠진 듯한 한국교회에 가지는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요?
그래도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런 정도의 소박한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 그리 큰 죄는 아니겠지요.
2008. 12. 22.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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