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해 한승수 국무총리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총리입니다. 지난 가을에는 대통령이 불교계를 향해 유감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 서울시를 하나님에게 헌납한 이명박을 기쁘게 하고 싶었던지 전국의 절간을 다 태워 없애자고 기도하던 시골도시의 어떤 시장도 있었지요.
여하튼 결국 이명박이 직접 TV 화면에 나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그런 대통령을 보며 참 유감스러웠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태를 모면하고자 자기도 무슨 뜻인지 잘 알지도 못하는 ‘유감’이란 말들을 저렇게 함부로 할까? 무엇이 유감인지 알기는 알고나 저런 말을 쓰는 것일까?” 살인계획 뉴타운 사업 반대집회 모습. 사진/오마이뉴스
그래서 유감이란 말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전에 나오는 용례를 찾아 제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소개했던 유감(遺憾)의 뜻과 용례를 다시 한 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감(遺憾) :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불만스럽게 남아있는 느낌”
용례를 살펴보니,
“유감을 품다.” “내게 유감이 있으면 말해 보아라.”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박완서 ‘도시의 흉년’)
“양 서방은 노상 나이대접을 안 해주고 떵떵거리는 김두수에게 유감이 많다.” (박경리 토지)
또, 유감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았더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장관의 발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한 전례’가 있다.
유감이란 이럴 때 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동무들과 놀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먼저 따지는 것이 있습니다. “유감 있나?” “그래. 유감 있다!” 그러면 둘은 서로 주먹다짐을 주고받습니다. 그리고 둘 중 하나는 코피가 터지게 되고 싸움은 끝납니다.
물론 유감이란 표현을 이용하는 또 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과거 일본 총리가 일제의 조선강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전례가 있습니다. 물론, 이 애매한 유감표명은 나중에 다른 일본 총리에 의해 번복되어 취소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유감이란 말이 사과 하기는 싫은데 그러지 않으면 뭔가 난처한 입장을 피하기 어려울 때 던지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무총리가 표명한 유감은 위에 든 용례나 사례 중 어디에 해당할까요?
그러나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그 유감의 의미가 무엇이든 이 사태에 대한 총리의 언사로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총리는 고작 유감이란 말밖에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그의 머릿속에는 유감이란 단어 외에는 들어있지 않았을까요?
우리 말 중에는 이런 경우에 쓸 수 있는 좋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엎드려 사죄드립니다.”
정히 할 말이 없으면 이러면 됩니다.
“참으로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용서받기 어려운 일일 터인데, 총리란 사람이 하는 말이 고작 유감이라니… 그런데 총리의 유감 표명이 우리나라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을 하기 싫으면서도 난처한 국면을 회피하기위해 사용하던 일본 총리의 유감과 하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뻔뻔스러운 일본의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립니다.
2009. 1. 20.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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