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서민가계의 장바구니도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친구들과 술 한 잔 하자는 소리도 부담스럽습니다. 환율이 1,500선을 돌파했다느니 주가 1,000포인트 저지선이 무너졌다느니 하는 건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만 들립니다. 그런 거시적인 국가경제 이야기는 서민들에겐 소용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장 먹고 사는 게 걱정이지요.
어제 창녕에 볼일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창녕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곳입니다. 따뜻한 동네입니다. 아직 시골다운 정서가 많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가을이면 머리에 억새물결이 나부끼는 아름다운 화왕산과 소벌(우포늪)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간다운 정이 살아있는 동네였습니다.
제가 처음 창녕에 갔을 때, 손님들을 만나기 위해 도천면의 어느 다방에 들어갔던 적이 있습니다. 커피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커피 한 잔에 삶은 달걀이 하나씩 따라 나오는 것입니다. 마담에게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여기서는 다 그렇게 서비스하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많이 드시고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1000원이면 커피에 삶은 달걀 하나가 따라 나오던 도천의 어느 다방. 그러나 이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죽 도시에서만 살아왔던 저에겐 특이한 경험이었지만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 시골이라 그런지 다방 장사를 하는 데도 정이 살아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끝내고 일어서면서 계산을 하려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날 커피를 일곱 잔을 마셨는데 7,000원이라는 것입니다.
7,000원을 7명으로 나누면 한 사람당 커피 값이 1,000원입니다. (그집은 도시스럽게 리필도 해주더군요.) 그래서 저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역시 7,000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커피 한 잔에 얼마냐고 확인하듯 물어보았지만 역시 커피 한 잔 값이 1,000원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창원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는 ‘다방’ 같은 것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고 ‘커피숖’이라는 이름의 공간도 워낙 비싼 땅값 때문인지 가물에 콩 나듯 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차 한 잔 하고 나면 최소한 4,000원 내지 5,000원은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창녕에선 커피 한 잔에 단돈 1,000원이었던 것입니다. (면 지역이 아닌 읍내는 1,500원이었음)
그래도 벌이가 꽤 괜찮다고 했습니다. 아가씨들 월급 주고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니 그 정도 가격에 삶은 달걀까지 제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알았지만 힘든 농사일을 하다가 들에서 커피를 시켜 먹는 것이 땀 흘린 중에 즐거움이었나 봅니다. 들에 앉아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채 커피를 시켜 마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옛날에는 들에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되면 막걸리와 함께 참이 나옵니다. 일꾼들에겐 그때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일하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정겨운 모습이었지요. 그러나 요즘 세상에 그런 모습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더 이상 농촌에서 참을 머리에 이고 날라다 줄 젊은 새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오토바이를 탄 아가씨들이 차지했던 것입니다.
우포늪에서 바라본 창녕 화왕산. 꼭대기 분화구에 억새평원이 보인다.
어제도 창녕에 사는 중장비(포크레인) 운전을 하는 선배와 함께 그 다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활기도 없어 보이고 오가는 손님들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커피값도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랐습니다. 불과 두어 달 전까지도 1,000원을 유지했는데, 원가부담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1,500원으로 인상했다고 했습니다. (면지역은 1,500원, 읍내는 2,000원)
그러자 손님들도 팍 줄었다고 울상입니다. 시골다방의 주 고객인 노인네들에게 1,000원과 1,500원은 엄청난 심리적 부담의 차이가 있습니다. 불황은 갈 곳 없는 시골노인들의 사랑방마저 빼앗은 것입니다. 오랜만에 들른 정겨운 시골다방도 쓰러져가는 한국경제의 참담한 현실은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워문 선배는 시골 다방에도 이제 구조조정 비슷한 바람이 불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결국 문을 닫고야 말 다방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마산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배웅하는 선배의 어깨가 한껏 처진 모습이 차창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예년에 비해 유달리 일감이 떨어진 올해는 그 선배에게도 무척이나 모진 한해였다고 합니다.
내년엔 좀 나아져야 할 텐데…, IMF가 발표한 내년도 한국경제의 전망은 깜깜하기만 합니다.
2008. 11. 25.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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