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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김민석 구속, 사필귀정 아닐까요?

커서님. 원래 커서님께서 쓰신 “김민석도 못지킨 등신 민주당 http://geodaran.com/898” 에 댓글로 달려다가 기회를 놓쳤던 것을 조금 늦었지만 새삼스럽게 포스팅으로 대신합니다. 사실은 커서님과의 안면 때문에 김민석이는 지킬 필요가 없다는 투의 댓글 달기가 그리 쉽지가 않더군요.


어제 민주당 최고위원 김민석이 구속됐습니다. 민주당은 김민석을 포기하면서 사법부와 대립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핑계를 달았지만, 사실은 그의 구속을 막을 명분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이제 무조건 정권의 탄압을 빌미로 자기 당파 국회의원의 비리를 감싸줄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저는 김민석의 죄과에 대해 판단할 자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가 실제로 검은돈을 받았는지 여부는 법정에서 가릴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는 최대한 자신을 위해 변호를 할 것이고 검찰은 그의 범법사실을 밝혀 감옥에 오래도록 쳐 넣으려 하겠지요. 그러면 되는 것이고, 그뿐입니다.

그런데 왜 쓸데없이 김민석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김민석을 통해 변절한 좌파들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날 유명한 정치인들 중에 변절한 좌파들이 많습니다. 한나라당만 하더라도 김문수, 이재오, 차명진,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인사들이 널려 있습니다. 여기다 요즘 뉴라이트의 수장 격으로 국회에 입성한 신지호를 추가해야겠군요.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정치는 여야를 통틀어 이들 좌파 출신들이 주름잡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물론 그들은 이제 좌파가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의 출신을 부정하려는 듯 극단적인 극우 성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문수 경기지사와 신지호 의원입니다.

김문수는 과거(1985년)에 심상정(현 진보신당 대표), 박노해(‘사회주의노동자동맹’ 중앙위원) 등과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을 결성했던 인물입니다. 서노련은 당시 운동권에서도 대단히 급진적 노동운동 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문수는 이재오와 함께 민중당을 통한 좌파정치세력화 실험에 실패하자 곧바로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자기 출신을 부정하듯 한나라당(당시 민자당)이 추진하는 노동법 개악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가장 과격하던 노동운동가가 노동운동을 향해 깃발을 꺾으라고 종용하며 탄압하는 처지로 뒤바뀐 것입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지호는 1980년대 후반 울산에서 활동하던 노동운동가였습니다.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출신이며 87년 노동자투쟁의 상징인 권용목을 뉴라이트로 끌어들인 것도 이때의 인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는 한때 지하조직 ‘사회주의자연합’(이후에 ‘한국사회주의노동당’으로 발전)의 중앙위원이며 지역대표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변절해서 주체사상을 최초로 남한에 전파했다는 ‘강철서신’의 김영환, 맹렬 주사파 출신 홍진표, 최홍재 등과 함께 ‘자유주의연대’란 조직을 만들어 뉴라이트 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공을 인정받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 김민석은 어떻습니까? 그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며 전대협과 한총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의 의장 출신입니다. 그는 또 1985년 미문화원 점거 농성으로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아마 전대협이나 한총련 출신들에겐 거의 신적 존재였으리라 생각합니다.

1985년의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은 NLPDR(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론)을 노선으로 하는 민족해방파(또는 ‘자주파’)가 학생운동의 주류로 등장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만큼 학생운동에서 차지하는 김민석의 영향력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후에 그가 보여준 모습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10여 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광주 518전야제에서 일어난 386 국회의원들의 단란주점 추태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방북사건으로 유명한 임수경이었습니다. 임수경이 무려 다섯 시간 동안 518 전야제 사회를 보고난 다음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불려갔는데, 광주의 한 단란주점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김민석, 송영길, 우상호, 박노해, 정범구 등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민주당 의원들이었습니다. 물론 남자들이 모여 단란주점에 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아가씨를 끼고 술을 마실 수도 있겠지요. 바깥에선 성인군자인 척 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해가 지면 끼리끼리 어울려 그런 밤의 환락을 즐기는 게 요즘 세태라는 걸 부정할 순 없습니다. 조선시대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낮에는 검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망월동을 참배하던 그들 386출신 국회의원들이 518 영령들을 추모하는 전야제가 벌어지는 그 시각에 단란주점에서 아가씨를 끼고 노래 부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걸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이년저년 소리를 듣고 임수경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녀가 공개편지를 통해 세상에 까발려 알려진 것입니다.

이들의 정신은 이미 썩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김민석은 얼마 후 그 썩어 냄새가 진동하는 적나라한 모습을 온 세상에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바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의 등에 칼을 꽂을 때입니다. 노무현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그는 탈당해서 정몽준의 품에 안깁니다. 그 이후 김민석은 이인제의 뒤를 잇는 철새정치인에 그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그는 영원히 정치판에서 추방되는 듯 보였지만,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통합민주당의 출범과 같은 혼란기를 틈타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다시금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이번엔 돈 때문입니다. 2002년에 그가 정몽준에게 갔을 때도 돈 때문에 그랬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살아온 궤적과 정몽준은 너무 안 어울렸기 때문이지요.

제가 보기엔 김민석은 이번 기회에 영원히 정계에서 추방당할 것 같습니다. 만약 법정에서 그의 범죄가 사실로 밝혀진다면 다시 재기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겁니다. 그가 구속되는 모습을 보며 연민을 느끼기도 합니다만, 사필귀정 아니겠습니까?

커서님의 의도가 김민석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원칙과 투쟁성을 상실한 민주당을 비판하는 것임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김민석 이야기가 나오니 그저 옛 기억이 떠오르는데다가, 김민석과 같은 사람이 다시는 이 나라 정치판에 나타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몇 자 적어 올립니다. 더구나 김민석은 민주당에도 별 도움이 안 되는 인물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변절한 좌파 또는 운동권 출신 중에 원래 우익보다 훨씬 극우로 변했거나 아니면 부정부패로 얼룩진 인사들을 가끔 봅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같은 보수정치판이란 게 사람의 근본까지 바꾸는 모양입니다. 슬픈 일이지요. 그러나 정말이지 이런 사람들을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걱정이군요. 김민석이보다 더 기분 나쁜 신지호가 요즘 TV에 자주 나오니 말입니다.

커서님의 예리한 글은 잘 보고 있습니다. 계속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며칠 후 부산대에서 열리는 '정보문화포럼'에서 뵐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이만...

2008. 11. 25.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