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슥한 밤, 식당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담배연기인지 김인지 모를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자욱하게 천장을 타고내리며 희미한 백열등을 더욱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식당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기역자 형으로 생긴 부엌에선 세 명의 여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두 명은 중년이 조금 넘은 듯 보이고 한명은 나이가 지긋한, 이제 노인이라고 불러도 좋을만한 나이로 보였다. 그들은 나를 본체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 취급하는 듯했다. 아니, 그보다는 오래된 단골손님이라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그저 들어오건 말건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것 같았다. 그들은 나를 매우 친밀한 이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금단의 선을 넘어 그들만의 공간으로 들어섰음에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기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이 바라다보이는 주방 안쪽에선 너무 오래 타서 색깔이 바랜 듯이 보이는 붉은색으로 춤추는 가스불꽃 위에서 커다란 솥이 마음껏 하얀 김을 내뿜고 있었다. 주방 안에서 말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 사람을 보며 일순 혹시 이곳은 저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유령일까 아니면 저들이 유령일까 잠깐 생각하고 있는 사이 또 다시 세 명의 남자가 커튼을 걷듯이 뽀얀 김을 들추며 들어왔다. 정말이지 그들은 오른손을 들어 김을 걷어내는 동작을 취하며 부엌으로 들어섰는데 그 동작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세 여자는 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림자 대하듯 익숙하게 오랜 단골손님 대하듯 아무 문제도 없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자기들 일에만 열중했다. 이 좁은 부엌에 나를 포함해 일곱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어떻게 전혀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사라졌다.
새로 들어온 세 남자 중 한 사람이 주방 한쪽 구석에서 돼지 내장 비슷한 것을 가져와서는 도마에 올렸다. 아니다.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칼을 든 채 나는 길쭉한 것이 대장 아니면 소장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길이로 반을 자르자 쭈글쭈글한 내장의 통로가 드러났다.
도마에는 손바닥 크기의 뭉툭한 것도 있었는데 이게 염통일까 위장일까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것 역시 칼로 반을 잘랐는데 쭈글쭈글한 빈 공간이 드러났다. 고기는 이미 삶겨진 것으로 보였다. 소금이나 막장에 찍어 입에 넣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잠깐 데우기만 하면 아주 맛있는 수육이 혀와 식도와 허기진 배를 행복하게 할 것이었다.
길쭉하게 반을 자른 내장을 익숙한 솜씨로—정말이지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익숙했다—서너 토막 잘라내고 있는데 묵묵하게 제 일에만 열중하던 중년을 갓 넘긴 것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 손에서 칼을 거두며 간섭했다.
“잠깐 기다리세요. 아직 다 익은 게 아니에요. 좀 더 익혀야 해요.”
여자는 도마 위의 내장을 커다란 프라이팬에 담고는 예의 너무 오래 타서 색깔이 바랜 듯이 보이는 붉은색으로 춤추는 가스불꽃 위에 올려놓았다. 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내장이 충분한 수분을 흘려보내 프라이팬을 적시며 지지직 지직 하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소리를 냈다.
그 액체는 어쩌면 해삼을 감싸고 있는 하얗고 끈적끈적한 점액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색깔은 누르스름하기도 하고 검붉기도 하고 그런 색들이 뒤섞여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장 안쪽의 일부는 이곳저곳 빨간 핏빛이 보였다.
여자의 말대로 고기는 한번 삶은 것이지만 완전히 익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솥에 한 번 더 삶지 않고 왜 프라이팬에다 굽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쭈글쭈글하기도 하고 울퉁불퉁하기도 하게 길쭉한 내장은 프라이팬 위에서 그런 걱정일랑 집어치우라는 듯이 지지직 지직 소리를 내며 빨간 핏빛을 회색빛으로 지워가고 있었다. 고기에서 흘러나온 액체는 달아오른 프라이팬 위에서 비누방울 같은 거품을 뽀글뽀글 만들어내며 춤추고 있었다.
모든 의문은 사라졌다. 이제 저 내장을 다시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반듯하게 잘라 소금에 찍어먹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막장에 찍어먹어도 좋겠다. 부엌은 이제 세 여자와 세 남자를 분간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온통 뽀얀 김에 뒤덮였다. 익숙하게 코를 자극하는 냄새만이 침샘을 자극했다.
“아아, 빨리 먹고 싶다.”
그러나 내 혀와 식도와 허기진 배는 행복감에 젖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다. 꿈이었다. 방안은 어둠에 싸여있었다. 창문 유리를 타고 희미한 보안등 불빛이 노란색으로 하늘거리고 있었다. 머리맡에서 휴대폰을 찾아 열어보았다. 네 시가 조금 넘었다.
거실에 나왔다.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사과를 하나 꺼냈다. 지난번 태풍에 일찍 떨어진 낙과다. 과일칼로 반을 잘라 붉은 껍질을 깎았다. 달다. 낙과가 온전한 사과보다 더 달고 맛있는 거 같다.
떨어진 후에 적당히 익어서 그런 것일까. 고요한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혼자 먹는 사과라서 더 단 것일지도 모른다. 세 여자와 세 남자는 어떻게 된 것일까? 맛있는 수육에 집중하는 사이 나는 그들을 뽀얀 김 속에서 잃어버렸다.
꿈속에선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들이 환영처럼 자욱하게 서린 김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걸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왜 이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너무나 생생해서 먹먹하다. 아직 새벽이다. 방에 들어가 조금 더 자야 할까 생각하고 있다.
ps; 잠결에 써놓고 두어시간 더 자고 일어났다. 아직도 꿈속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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