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이다. 손석형은 바뀐 것이 없단다. 다만 자리 바꾸기를 했을 뿐이란다. 성공을 장담하기도 어려운 일에 실패할 가능성을 스스로 각오하고 움직이는 것이란다. 자신에 대한 비평을 꼬집어 ‘낭만적인 평론가의 변’이라 쓴 그 글을 읽노라면 이젠 낭만적이란 딱지도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궤변을 넘어 망언에 이르렀다면 지나친 것일까.
손석형의 탐욕은 변절이다. 이 탐욕에 박수치며 응원하는 것 또한 변절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 자기네들의 텃밭이라고 생각하는 진보정치 1번지 창원을에서 현직 도의원 자리를 박차고 출마한 것을 두고 ‘공익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만약 손석형이 창원을이 아닌데도, 요컨대 자기 고향 창녕에 진보정치를 심기 위해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 도의원 자리를 던지고 말처럼 공익을 위해 출마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도 온전한 지지를 받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 왼쪽부터 통합진보당 손석형-진보신당 김창근-무소속 박훈 후보. 12월 30일 진보후보 블로거합동인터뷰 때 찍은 사진. 이때도 손석형 씨의 도의원 중도사퇴 총선출마가 쟁점이었다. @사진=실비단안개
왜? 그가 4년 전에 한 일을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 더 큰 자리에서 더 큰 공익을 위해 봉사할 마음이 있었다면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말았어야 한다. 2년 후에 있을 총선을 위해 주민들과 만나고 토론하며 비전을 만들었어야 옳다. 도의원 자리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다.
“그래도 그런 모습(도의원 중도사퇴와 총선출마-필자 주)을 봐줄만한 것은 개인의 욕심이 결과적으로는 공익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최소한 해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과연 인간의 상식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손석형의 중도사퇴란 탐욕은 이미 진보진영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겼다. 더불어 애꿎은 시민단체들도 불신의 늪에 함께 빠지도록 만들었다. 개인의 욕심이 시민단체들로 하여금 ‘우리 편이 하면 로맨스요 반대파가 하면 불륜’이라는 아전인수의 오물통을 뒤집어쓰게 했으니.
오, 통제라! 궤변은 욕심이 지나쳐 이성까지 마비시킨다. 손석형의 행위를 개인의 아름다운 명예욕으로 미화하기 위해 ‘도학정치를 구현하고 싶었던 조광조도 정작 현실적인 정치인’이 되고 ‘공자도 하찮은 벼슬자리에 목말라 제후들에게 굴신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실로 어이없는 일이다.
손석형을 위한 방패에 변절자로 낙인찍힌 주대환과 박용진에 대해선 나름대로 할 말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른바 경로수정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기욕망에 따라 움직였을 뿐인 그들을 변절자라고 함부로 단정하는 것은 독선이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자신의 신념체계를 완성하기 위한 경로에 회의를 품어왔다. 그리고 그 결과가 민주통합당이었다. 물론 이 결과는 부족한 것이며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신념체계가 무너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이 가진 신념체계 곧 변혁의 최대치는 사회민주주의요 유럽형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민주통합당을 사민주의정당(민주진보당)으로 만들겠다는데 그걸 두고 정체성을 통째로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무지하고 주제넘은 일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손석형의 탐욕과 변절에 박수치는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일까? 그래도 손석형보다는 덜한 것으로 보이는 전 순천시장과 전북도의원들의 욕망에는 악을 쓰며 거품을 무는 통합진보당은 과연 진보정당일까?
그리고 또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며 민주통합당은 보수정당이라고 두부 자르듯 잘랐는가? 과거에는 이런 식의 분류가 옳았을지 몰라도 지금도 타당한지에 대해선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통합진보당은 구민노당과 진보신당 통합파 외에도 구민주당의 한 분파였던 국민참여당 세력이 함께 하고 있다. 반대로 민주통합당에는 구민주당 세력 외에도 진보세력의 한 분파였던 진보신당 복지파와 시민운동세력이 함께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아무리 살펴도 차이점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보다 더 진보정당답게 보인다는 일부 대중들의 평가도 있는 판이다. 이들은 같은 고양이일 뿐이다. 고양이끼리는 서로를 분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짐승들 눈에는 그저 고양이로만 보인다.
그리고 이 둘이 하나의 고양이로 보이게 하는 데는 손석형의 기여도 컸다. 하지만 그의 기여는 민주통합당에만 그치지 않고 통합진보당이 새누리당과도 별로 다르지 않은 고양이처럼 보이게 했으니 그 역할이 실로 만만치가 않았던 셈이다.
그런데 왜 특정한 사람들은 손석형이 한 일은 명예욕일 뿐이고 주대환, 박용진이 한 일은 변절이라 모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이 또한 모두 욕심에서 나온 것으로 다르지 않다. 손석형의 탐욕을 가리려다 보니 주대환, 박용진의 변신을 물고 늘어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내 눈에 든 들보를 감추기 위해 남의 눈에 든 티를 들추어내는 이기적인 인간들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이런저런 부조리들이 그리 생소한 일도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보수정당과 통째로 한 통속이 돼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에는 관대하면서 몇몇이 민주통합당에 들어가는 것만 골라 변절로 몰아대는 그 불온한 의도가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시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명박과 진보정당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3) | 2012.02.14 |
---|---|
부러진 화살 보고 정치판 보니, 사쿠라 되고 싶다? (1) | 2012.02.08 |
손석형 씨 옹호논리, 어처구니없다 (0) | 2012.02.06 |
난장판 블로거합동인터뷰, 임재범후보 탓만 아니다 (9) | 2012.02.05 |
총선출마용 중도사퇴 인정이 정치수준 높인다? (5) | 2012.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