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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오늘만 같아라, 색다른 출생의 비밀

만약 어느 날 갑자기 ‘내 부모가 사실은 내 부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그야말로 청천벽력.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소리가 들릴 것이다.

두 다리는 후들거리고 손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다 마침내 털썩하고 어딘가에 주저앉고 말 것이다. 현기증에 하늘은 노랄 것이고 가슴이 울렁거리며 구토증세가 일어날 것이다. 가슴이 미어지듯 쥐어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그런 감정, 밀려드는 배신감과 분노, 자기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초조로 하늘에 붕 떠있는 느낌. 자신의 존재가 하염없이 작아지면서 갑자기 광활해진 우주의 어디에 몸을 맡겨야 할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작은 몸이 덜덜 떨린다.

새 mbc드라마 <오늘만 같아라>에 그런 장면이 나왔다. 장지완은 30년 동안 누구보다 다정한 아버지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자기를 낳아준 친아버지는 따로 있단다. 오 마이 갓. 이 무슨 드라마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그런데 그 친아버지가 바로 자신이 사랑하고 결혼하고자 하는 여자 문희주의 외삼촌이라는 것.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문희주와의 결혼을 그토록 반대했던 것이다. 이건 또 무슨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친아버지가 따로 있고 하필 사랑하는 여자의 외삼촌이라니.

자, 이쯤이면 대충 내용을 짐작했을 것이다. mbc의 이 일일드라마가 시작된 지도 이제 겨우 일주일을 넘겼으니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갑수와 김미숙이 나오는 드라마라 특히 관심이 간다. 김갑수는 김영철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배우 중 한명이다.

김갑수가 맡은 역은 장지완의 아버지 장춘복이다. 그러니까 장지완의 의붓아버지다. 하지만 장지완은 30년 동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장춘복은 너무나 훌륭한 아버지였다. 장지완을 위해서라면 아버지 장춘복은 하늘에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니. 장지완의 가슴은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보는 장지완은 그렇게 무너지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매우 슬펐지만 냉정하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젊은 대기업 사원답다.

무너진 것은 장춘복이었다. 아내 윤인숙(김미숙 분)에게 아들에게 사실을 말해주라고 한 뒤-그래야 문희주와 결혼하겠다고 떼쓰지 못할 테니까-집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집주변 포장마차에서 만취한 장춘복. 하염없이 작아져 어디다 몸을 둬야할지 모르는 것은 그였다.

그는 두렵다고 했다. 어떻게 아들의 얼굴을 볼 것인가. 그는 아내에게 울면서 말한다. “이제 나는 아버지가 아니야. 나는 아들을 잃어버렸어.” 김갑수의 연기는 너무나 리얼해서 그만 나는 이것이 드라마란 사실조차 잊어버릴 지경으로 함께 슬펐다.

만약 나와 내 아들, 딸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 가슴은 온전할 수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건 정말이지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왜? 나는 결단코 김갑수 아니 장춘복처럼 살지 않았을 것이니까.

도대체 장춘복은 왜 이다지도 고통스러운 삶을 결정했을까. 그게 궁금하다. 곧 하나하나 밝혀질 일들이겠지만 나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장춘복은 했다. 아무리 윤인숙이 사랑스러웠더라도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다.

생각해보았다. 나는 장춘복처럼 남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을까? 답은 ‘없다’이다. 나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장춘복이야말로 위대한 성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죽은 친구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물론 그는 그녀를 더없이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 재호가 광주항쟁 때 죽자 그의 아이를 가진 그녀를 설득해 결혼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평생을 바쳤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아내와 자신뿐.

하지만 이제 아는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분신처럼 평생을 바친 사랑하는 아들, 장지완이다. 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해서는 안 되는 사실을 말해야 하는 장춘복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도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을까?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이 이야기는 요즘 흔히들 써먹는 불륜, 이혼, 출생의 비밀 따위와는 질이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80년대를 건너온 사람들의 생존투쟁과 훈훈한 인간미와 더불어 진한 아버지의 사랑이 저릿하게 전해져온다.

그건 그렇고 <천일의 약속>에서 박지형도 뛰어넘는 벽을 장지완은 뛰어넘지 못하란 법이 있을까. 고종사촌, 그까짓 게 뭔 문제라고. 그리고 법률적으로 장지완과 문희주는 아무 사이가 아니며, 게다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세 명뿐이다.

비밀은 묻어두라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장지완이 마음을 접은 듯하다. 하지만 그러면 드라마가 재미없어진다. 결국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키며 복잡하게 일을 꼬아갈 터. 그러다 어느 틈엔가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오르가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무튼, 어떻게 될 것인가? (관습의 벽을) 깨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ps; 아, 마지막 결론을 써놓고 보니 너무 앞서나갔다. 이래도 되는 건지.
내가 무슨 신라 진골도 아니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