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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근초고왕과 진홍란이 쇠꼬비를 양자로 삼은 이유

그러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는데, 결국 근초고왕의 뒤를 잇는 근구수왕은 여화의 아들 쇠꼬비가 되는 것인가요? 늘 그렇습니다만, 왕이 될 자들은 마치 커다란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부여구도 비류왕으로부터 버림받고 요서에서 소금장수로 젊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비류왕으로부터 왕재를 인정받고 후사를 이어받을 참이었던 여구는 비류왕을 암살하고 왕이 된 계왕으로부터 핍박당해 다시 요서로 쫓겨 갔으나 갖은 고난 끝에 다시 돌아와 근초고왕이 됐습니다.

여구에겐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홍란으로부터 얻은 태자 부여근이요, 다른 하나는 여화가 낳은 아들 쇠꼬빕니다. 아시겠지만, 여화가 낳은 아들은 여구가 요서에서 전연과 전쟁을 하는 중에 일으킨 위례궁의 반란 때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여화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사태의 진상은 이렇습니다. 여화의 아들을 죽이려는 세력은 진씨족뿐만 아니라 위례궁과 해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제의 모든 세력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여화의 아들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화의 아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여화의 아들을 죽이란 명을 받은 해건의 심복 을마흘은 여화의 시녀장 단단이와 함께 궁을 빠져 나가 목지국으로 숨어들어 곡나부 철산에서 야장이 되어 자기 아들처럼 키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장성한 쇠꼬비가 곡나부에 들른 여구를 구한 것은 운명이었을까요? 여구는 쇠꼬비의 소원대로 한성으로 데려가 태자 여근의 호위장으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쇠꼬비가 지난주에 이어 이번엔 태자 여근을 구했군요.

남당에 모인 대신들 앞에서 쇠꼬비는 어라하로부터 위사군 장군을 하사받게 됩니다. 고구려군에 의해 죽을 뻔한 태자를 목숨을 바쳐 구한 것은 곧 백제를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왕후 진홍란이 이 정도 상으론 부족하다며 양자로 세우겠다고 결정합니다.

물론 진홍란이 쇠꼬비를 양자로 삼기로 한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쇠꼬비가 한성으로 가자 신분이 들통 날까 불안해진 을마흘과 단단이도 부랴부랴 한성으로 따라옵니다. 쇠꼬비가 들고간 여화의 머리끈을 되찾기 위해서지요.

참나, 쇠꼬비는 그런데 여화의 머리끈은 왜 들고 간 것일까요? 어머니(단단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인 줄 알면서, 그래서 머리에 매지도 못한다는 걸 알면서 말입니다.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 머리끈으로 쇠꼬비의 출신내력이 이렇다 사람들이 알게 함이 목적이지요.

좀 어설프다 싶긴 합니다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지요. 아무튼 쇠꼬비의 정체는 쇠꼬비 본인과 생모인 여화만 모르고 모두들 알게 됐습니다. 아니 아직 진씨족과 해씨족도 모릅니다. 이들이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당장 죽이려 난리가 날 겁니다.

자, 이쯤에서 태자 여근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요. 여근은 진홍란의 아들입니다. 전연이 쳐들어오자 여구가 군사를 이끌고 요서로 떠난 사이 해씨족들과 위례궁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와중에 진홍란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고, 만삭이 된 배를 발에 차이는 등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때 그런 생각을 했었죠. 태중에서부터 저토록 고초를 겪으며 자랐으니 강성한 군주가 될 자질을 타고 태어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의심할 여지없이 진홍란의 아들이 근구수왕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게 순리라 생각했습니다.

허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태자 여근은 여구가 만들어놓은 넓은 백제를 경영하기엔 너무나 단순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흑과 백이 그에게 너무나 뚜렷한 것입니다. 그는 진씨족을 매우 경멸합니다. 외가이면서 장차 처가가 될 진족이 그는 매우 부담스럽고 화가 납니다.

“내 아비가 어라하고 내가 장차 어라하가 될 것인데 어찌 감히 진족 따위가 우리를 능명하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죠. 맞습니다. 왕권이 서지 못하면 나라가 강성해질 수 없습니다. 특히 당대는 삼국이 정립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치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측근들의 결속을 다져 우군을 확대하는 한편, 비판세력을 포용해 다독이면서 반격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은 정치의 주요기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여근은 측근의 결속을 다지기는커녕 내쳐 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낸데” 하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런 그의 태도를 보는 순간 아뿔싸, 여구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자는 태자 여근이 아니라 쇠꼬비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고구려 태왕의 태자(후일 소수림왕이 되나요?)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저자를 반드시 죽여라. 후일 고구려에 큰 근심이 될 자다!”

그러나 쇠꼬비가 근구수왕이란 판단엔 무엇보다 진고도의 딸 진아이와의 관계가 작용했습니다. 근구수왕의 장인은 진고도입니다. 그러니 여구의 뒤를 이어 어라하가 되려면 진아이와 결혼해야만 합니다. 헌데 태자 여근은 진아이에겐 관심도 없고, 경멸의 눈길만 보냅니다.

반면에 여근에게 무시당하는 진아이를 바라보는 쇠꼬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연정이 싹트고 있는 것이지요. 허, 그것참. 꼭 MBC 선덕여왕의 덕만공주를 보는 듯합니다. 단단이는 그럼 뭐가 되는 거지요? 소화가 되는 거네요. 근초고왕은 진평왕이고요. 하하~

에혀~ 아무튼 저로서는 매우 불만입니다. 왜 꼭 2대에 걸쳐 이런 진부한 시추에이션을 만들어야만 하는 건지… 그냥 진홍란의 아들 부여근을 근구수왕으로 만들면 안 되는 건지… 그러면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했을까요? 하지만 그걸 재미있게 만드는 게 작가의 능력이지요.

쇠꼬비가 여구의 뒤를 이어 어라하가 되기엔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부여화라는 거지요. 사료에 의하면, 근구수왕은 왕후도 진씨이지만 어머니도 진씨라고 합니다. 즉 근구수왕은 어머니가 부여화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편법을 쓴 것일까요? 근초고왕 부여구가 왕후 진홍란에게 쇠꼬비의 정체를 알리면서 양자로 세워줄 것을 부탁했고, 처음에 이를 거절했던 진홍란이 쇠꼬비를 양자로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로서는 매우 불편한 설정이긴 합니다만,

이로써 작가는 쇠꼬비가 백제의 다음 왕이 되는데 장애물을 제거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 태자 여근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혹시 일본에서 온 야마타이국의 진구공주와 결혼해서 아예 일본으로 가버리는 그런 설정으로 가는 것은 아닐지….

야마타이국은 지금은(드라마 시점) 비록 백제의 한 고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자그마한 나라일 뿐이지만, 장차 야마토 정권을 수립해 오늘날 일본 천황족이 되는 중요한 나랍니다. 어쩌면 쇠꼬비에게 대권을 주는 대신 여근에겐 일본 야마토 정권의 시조 자리를 주려고 하는 걸지도.

곧 고흥의 수제자 왕인박사도 나올 것으로 보이니… 대충 제 예감이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저는 진홍란의 아들 여근이 근구수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여화야 한 일이 뭐 있나요. 여구와 백제에 만날 근심만 안겨줬지요.

지금은 또 뭘 하고 있지요? 역모를 꾸미고 있지 않습니까. 친정이 고이왕통이면 고이왕통이지, 무슨 초고왕통을 무너뜨리고 고이왕통을 세우겠다는 황당한 음모나 꾸미는 얼빠진 부여화에 비해 진홍란이야 정말 한 일이 많지요.

하여간 진홍란을 위해서라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 감정이긴 합니다만, 부여화, 정말 미워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여잡니다. 그런 부여화를 싸고 도는 여구도 마찬가지고요. 내가 볼 땐 여구는 고구려 태왕 사유에 비해 턱없이 왕재가 모자랍니다. 카리스마가 없어요.

아이고, 이거 이야기가 삼천포로 막 새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만, 제 결론을 말씀드리고 끝내지요. 결국 쇠꼬비가 여화의 아들이란 사실은 드러나게 될 겁니다. 양자로 세운다고 여화의 아들이 진홍란의 아들이 될 수 있나요?

그러니 작가님. 쇠꼬비를 왕으로 만들겠다는 무협지 같은 생각 버리시고 그냥 여근을 근구수왕으로 만드는 순리로 갑시다. 부여근과 진아이를 맺어주고, 쇠꼬비와 진구공주를 결혼시켜 야마토 정권을 만들도록 하는 건 어떨지요. 물론 수행비서로 왕인박사를 함께 보내야지요.

안 된다고요? 벌써 여근이와 야마타이국 공주가 키스를 해버렸다고요? 읔, 진짜 아뿔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