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패를 재미있게 보고는 있지만 이번 3부와 4부는 좀 실망이다. 물론 재미는 있었다. 꽃거지 노영학(어린 천둥이)도 괜찮았지만, 특히 최우식(어린 귀동이)과 진세연(어린 동녀)이 일품이었다. 내겐 꽃거지보다는 꽃도령이 더 나아보였다.
사실 꽃거지라는 이름이 왜 붙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이 조어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지면 거지지 꽃거지는 또 뭐람? 모르는 바는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김남길이 등장하자 꽃거지라며 열광하는 팬들로 인해 이 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김남길이 열연한 비담은 거지가 아니었다. 단지 행색이 초라했을 뿐 어디까지나 신라 화랑의 우두머리 문노의 제자였던 것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 떨어진 옷을 걸친 비담이 거지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는 무술 수행자였다.
............ ▲ 천둥이의 동패 거지들
아무튼, 그때부터 꽃거지란 말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 천둥이가 그 칭호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기분이 찜찜하다. 며칠 전 나는 “민중사극에서도 양반 아니면 주인공 못하나”란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바로 그것 때문이다. 왜 천둥이는 다른 거지들과 다를까?
나는 앞서 포스팅에서 “민중사극에서도 양반 아니면 주인공 못하나” 하고 불평을 하면서 이거야말로 이른바 양반우월주의에서 나온 운명론 아니겠냐고 비판했지만, 출신성분이 원래 양반인 거지가 거지답지 않게 행동하면서 꽃거지란 칭호까지 얻으니 내심 불편을 넘어 불쾌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런 불만들은 약과였다. 더욱 놀라운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천둥이가 여느 거지들과는 다르게 총명하고 행동거지가 반듯한 것은 양반의 핏줄을 타고난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라 인정하고 넘어가자. 양반 댁 자제들도 쉬 익히지 못하는 통감이나 성학집요를 어린 나이에 꿰는 것도 대감 자리까지 오른 애비의 유전자 탓이라고 치자.
... ▲ 거지 아이가 쓴 글씨를 동료에게 보여주며 감탄하는 성초시(좌)와 거지 천둥이
하지만 이건 아니다. 고을 서당의 훈장 성초시 앞에서 휘갈기는 천둥이의 기막힌 서예 솜씨라니. 성초시가 내어준 지필묵으로 하얀 종이 위에 만들어낸 글씨는 그냥 글씨가 아니었다. 한석봉이라도 이렇게 잘 썼을까? 아마 타고난 천재성에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한석봉이도 거지움막에서 살며 빌어먹는 처지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경지다.
함께 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말한다. “저렇게 글씨를 잘 쓰는 것도 원래 양반 핏줄이라서 그런가보지? 그런데 천둥인가 쟤 언제 붓이라도 한 번 잡아본 적이 있나?” 내가 말했다. “있긴 뭘 있어. 붓이며 벼루며 먹 구경은 오늘 첨 했을 걸.” “맞네. 그렇담 진짜로 대단하네. 처음 잡아보는 붓으로 저렇게 명필이면… 글씨도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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