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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김두관 지사님, 영화 한편 보러 오시죠?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잠시 교도소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다행히 겨울에 입소(?)한 탓에 덜 힘들었다. 왜냐하면, 소위 혼거방이라 부르는 미결사동의 옥사는 매우 비좁았다. 만약 여름이었다면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곳에서 두어 달을 보내다 독거방으로 옮겼다.

아마도 기억에 17~8명이 함께 복닥이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있던 방은 절도방이었다. 이른바 도둑놈들이 득실거리는 방이다. 하루는 이들 도둑놈들 간에 시비가 붙었다.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1년에 영화를 몇 편이나 보느냐는 것이었다. 시비가 붙은 두 사람 중 하나는 쓰리꾼이요, 하나는 담치기였다.

쓰리꾼은 20편을 본다고 했다. 그러자 담치기는 "천만에, 30편 이상 본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팽팽했다. 쓰리꾼은 주로 낮에 일을 한다. 이른바 소매치기다. 담치기는 밤에 일을 한다. 이른바 밤손님이다. 일하는 시간대가 다른 만큼 한국인이 얼마나 영화를 보는지 통계에 대한 감도 확실히 달랐다.

결론이 나지 않자 혼거방의 나이 지긋한 어른(이분이 방의 책임자로서 봉사원이라고 불렀다)이 제안을 했다. "야야, 그러지 말고 이런 문제는 우리 시국한테 판결을 구하도록 하자. 아무래도 우리들 도둑놈들하고는 다르니까 시국이 그렇다고 하면 그게 맞는 거다."

그들은 보통 우리를 시국 혹은 독립군이라고 불렀다. 결국 내가 재판을 맡게 되었는데 나는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한국 사람들은 보통 1년에 영화를 한 10편 정도밖에 보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판결은 내려졌고 모두들 수긍했다. 하하, 10편? 근 2년이나 수배생활을 하던 나도 실은 도둑놈들처럼 극장이 내 집 같았으니…, ㅋ~

어제 <조용한 남자> 영화 시사회에 다녀왔다. 아니 다녀온 것이 아니라 내가 주최자였다. <경남블로그공동체>와 <100인닷컴>이 <경남영화협회>의 요청으로 개최한 시사회였던 것이다. 나는 <경블공>의 총무요 <100인닷컴>의 편집장으로서 행사를 기획하고 주관해야 했다. 

앞에 별로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 그러나 내겐 오래도록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내가 영화에 대해 완전 백지는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래도 꽤나 영화를 본다고 본 사람이고, 더욱이 지금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도 드라마 리뷰가 주 소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는 내게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였던 것이다. 물론 영화를 만든 김재한 감독이나 제작 총괄을 맡았던 설미정 씨나 <경남영화협회> 사무국장인 박재현 감독 같은 분들은 내가 매우 고마웠을 수도 있다. (아닌가? ㅎㅎ) 어쨌든 나도 영화계에 뭔가 기여를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는 내내 슬펐다. 단돈 천오백만원으로 만든 영화 안에는 조용한 남자의 예술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져야만 하는 고달픔. 무엇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 담배값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열악한 경제적 환경.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바닥에 퍼질러 앉아(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뒷풀이로 술을 마시면서 인사를 돌리게 되었는데,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자기 남편이 저렇게 돈도 못 벌어오고 한다면 아내 입장에서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도 의견들을 말씀해보시지요."  

그러자 바로 경남아고라의 하얀리본님이 일어나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그건 그렇지 않죠. 주인공들은 보아하니 서로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인정과 이해를 전제로 부부가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돈을 벌고 잘 살아야 하는 건 아니죠. 저런, 힘들지만 예술을 지키는 사람도 있어야 세상이 밝아지는 거 아닐까요?"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일어나서 "가장 현실적인 질문에 가장 이상적인 훌륭한 답이네요" 하고 맞장구를 쳤는데 여기다 정확하게 옮겼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때 나는 이미 맥주에 소주를 타서 양껏 마셨으므로 상당히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떠올랐다.  

'그래, 우리나라 사람들 영화를 좀 많이 봐야 되는 거야. 특히 이렇게 지역에서 만드는 독립영화를 많이 봐(줘)야 되는 거야. 그리고 창원시나 경상남도도 관심 좀 많이 가져줘야 되는 거야. 이은상이니 이원수니 친일작가들 기념관에 세금 퍼부을 생각 그만 하고 이런 데다 돈 좀 써야 되는 거야.'

그리고 나아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좀 관심을 가져주면 어떨까? 내가 볼 때 박완수 창원시장이 이런 미천한(그들에겐 분명히 그럴 것이다) 곳에 관심 가져줄 리는 만무하고, 아무래도 도민의 염원으로 한나라당 일당독재를 꺾은 김두관 지사야 다르지 않을까?'

............ 영화를 보고난 후 감독, 스텝, 출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워낭소리>도 이명박 대통령이 봤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실 나도 <워낭소리> 봤지만 지루하기로 말하면야 <조용한 남자> 뺨치는 영화였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워낭소리>를 군말 없이 보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것일까? 

한국사람들도 이제 지루한 영화를 볼 줄 아는 정도로 문화적 소양이 높아진 것이다. 자극적인 할리우드식 양념으로 범벅이 된 영화만 영화로 치부하던 우리나라 사람들도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이다. 그래서 감히 말 나온 김에 김두관 지사님께 부탁 한 번 드려볼까 한다.

"김두관 지사님. 영화 한 편 봐주십시오. 제목이 <조용한 남자>입니다. 3월 3일 창원 메가박스에서 관객시사회 합니다. 중요한 건 공짭니다. 보좐관들과 함께 영화 한 번 보러 오십시오. 잠시 휴식한다 생각하셔도 되겠습니다. 피곤하시면 좀 조셔도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깜깜해서 안 보입니다. 하하."

김두관 지사가 대단히 바쁘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경남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조금만 신경을 나누어 주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우수한 인력들이 집중되어 있다는 경남도청 공무원들도 지역 영화예술에 관심을 많이 가질 것이고, 나아가 도민들도…, 그러면 경남은 이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1번지? ㅎㅎ

그건 그렇고, 한국인들은 1년에 영화를 몇 편이나 볼까? 책은 한 달에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어떤 통계자료를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한국인들은 너무 불쌍하다. 책이든 영화든 문화를 즐기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예 노는 것 자체를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