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다 김남주 남편 정말 짜증난다, 라고 써놓고 가만 생각해보니 김승우가 기분 나쁘겠다. 그러나 그래도 어쩌랴. 잘난 마누라하고 살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게 예의다. 황태희 남편 정말 짜증난다, 이렇게 쓰려고 하다가 그냥 김남주로 갔다. 김남주가 좋으니까.
황태희 남편 봉준수, 정말 짜증나
그러나 지금부터는 황태희로 가기로 하자. 처음에 나는 황태희와 봉준수가 이혼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혼이 무슨 애들 장난인가. 그러나 둘을 이혼시키고 황태희와 구용식, 봉준수와 백여진의 4각관계를 만들어 재미를 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둘은 한 달인지 석 달인지는 모르겠지만 숙려기간이 끝나고 나면 이혼서류는 휴지조각이 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저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게 아니다. 돌아가는 꼴이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 봉준수
황태희와 구용식이 진짜 연애감정에 빠졌다. 구용식의 짝사랑 정도로 끝날 줄 알았던 불장난에 제대로 불이 붙어버렸다. 황태희의 감정도 갈팡질팡한다. 지금 그녀의 감정은 대체 무엇일까? 연민? 동정? 아니다. 내가 보기엔 황태희도 확실히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런 황태희를 지지한다. 또한 구용식의 사랑도 지지한다. 이제 구용식은 짝사랑을 할 필요가 없다. 둘은 본격적으로 떳떳하게 사랑을 나누면 될 일이고 그래야 한다. 이혼녀? 그게 무슨 주홍글씨라도 되나.
이혼녀가 무슨 주홍글씨냐
그렇다. 이혼은 주홍글씨가 아니다. 황태희가 봉준수와 다시 합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완전 전근대적인,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고리타분한 발상일 뿐이다. 물론 봉준수의 부모는 그렇게 바랄 수도 있다. 황태희의 엄마도 마찬가지.
아이도 있는 마당에 둘이 다시 사이좋게 합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한 달(혹은 석 달) 숙려기간이 지난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한 장의 추억으로만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미 그런 시추에이션은 어렵게 된 듯이 보인다. ▲ 구용식
이미 황태희의 마음에 구용식이 들어섰다면 최소한 구용식과 결혼하진 못한다고 하더라도 봉준수와 다시 합치는 따위의 일도 벌이진 못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담고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랑을 나눈다는 게 내 상식엔 없다.
그래서 나는 황태희와 구용식의 사랑을 지지하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봉준수와는 깨끗하게 정리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나는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봉준수의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는 우유부단함과 이기적인 욕심, 무능함 등등의 탓이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다 봉준수는 실로 짜증나는 인물이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보다 훨씬 잘나가는 황태희더러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지”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그러던 황태희가 회사에서 거의 잘리다시피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된 5년이 그에겐 황금기였을 수도 있겠다.
그런 그도 5년 뒤 퀸즈에서 잘리고, 다시 황태희가 계약직(말이 좋아 계약직이지 비정규직이란 표현이 적절하다)으로 퀸즈로 돌아오고, 황태희를 쫓아내려는 한송이 상무의 계략에 따라 봉준수가 다시 복직되고,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봉준수는 황태희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냥 간단하게 “응, 원래 백여진과는 잘 아는 사이였어. 오래전에 사귄 적이 있었지” 이랬으면 좋았을 걸 뻔히 사람을 눈앞에 두고 속이고, 그리고 몰래(물론 백여진의 의도였지만) 만나기도 했다. ▲ 황태희
게다가 황태희가 쫓겨난 후 팀장이 된 백여진의 지시에 따라 황태희가 작성한 기획안을 훔쳐 백여진과 한송이 상무에게 넘기기도 했다. 얼마나 한심한가. 결과적으로 황태희에게는 남편이 자기 아내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붙어먹은 꼴이 됐다.
봉준수, 멍청한 건지 뻔뻔한 건지 희한한 남자
그런데도 봉준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집안이 잘되려면 남자가 성공해야 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위해 희생해도 된다는 세계관이 그의 생각 저 깊은 곳에 깔려있다. 그래서 아내의 기획안을 훔치면서도 그게 다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테다. 봉준수는 참으로 부끄러운 남자였다.
이혼한 뒤의 모습은 어떤가. 구질구질하다. 옛 아내의 뒤를 밟고, 뭐 특별한 일이 없나 감시하고 캐기에 바쁘다. 이미 서로 남남이 된 처지에 일일이 신경 쓰고 간섭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 이혼녀의 집 옆으로 집을 구해 이사를 한 것도 구질구질하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기로 하자.
아무튼, 나는 봉준수의 그 구질구질한 얼굴만 봐도 역겨움에 괴롭다. 제발 봉준수는 화면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4각관계의 한 축인 백여진의 얼굴이 요즘 통 안보인다. 초반에 엄청난 활약을 할 것처럼 보이던 백여진, 그단새 작가님께 찍혔나?
▲ 백여진
백여진, 제발 봉준수 좀 데리고 가라. 그리고 둘이서 오붓하게 살아라. 얼마든지 행복해도 상관없다. 그건 두 사람의 일이다. 제발 황태희 곁에서 봉준수를 떼놓았으면 좋겠다. 백여진, 그대의 원래 목표가 그것 아니었던가. 그렇게 해라.
그리하여 시대착오적이고 전근대적인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로부터 황태희를 해방시켜라! 이렇게 얘기했는데도 작가님, 막판에 황태희와 봉준수를 재결합이니 어쩌니 하면서 엮어놓는다면 내 그대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요. 흐흐, 말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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