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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아테나, 레전드급 첩보원이 너무 멍청해

아테나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정보원이라면 절대 저렇게 안 할 텐데…" 싶은 장면이 너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정보원에서도 최고의 요원으로 평가받는 이정우, 그래서 NTS에 특채됐지만 내가 볼 땐 영 문제투성이다.
 
사실 어제오늘만 해도 그렇다. 납치된 핵물리학자 김명국 박사를 구출하기 위해 NTS가 출동했는데 이미 적은 그들의 동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내부 정보가 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이정우(정우성)가 조금만 더 예민하게 생각했다면 정보누출의 진원지가 어딘지 금세 알아챌 수 있었을 거다.

정보누출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윤혜인(수애)이었다. 이미 모두들 느꼈을 테지만, 이 윤혜인이란 인물이 참으로 미스터리다. 그녀란 존재보다는 그녀가 국정원에서 블랙으로 활약했다거나 느닷없이 NTS에 차출되었다는 것이 미스터리란 말이다.


국정원 홍보실에서 일 잘하고 있던 그녀가 왜 갑자기 이태리 비첸차의 활극에 동원됐을까? 하긴 뭐 원래 이런 부류의 첩보물이 다 그렇다.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고 덤비다가는 다치는 수가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번엔 너무했다.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지만, 나도 알 수 있는 일을 레전드급 첩보요원이 모른다니.

상황은 이렇다. 납치된 김명국 박사가 감금된 곳으로 파악된 일본의 모처를 포위한 NTS. 그러나 상대는 아테나다. 그들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2중의 보호막을 치는 것쯤은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최정예들이다. 미 국가안보국(DIS)과 NTS(국가대테러정보원)에도 잠입해 암약하는 아테나다.

NTS가 포위한 곳은 아테나의 현장지휘부가 있을 뿐 김명국 박사는 다른 곳에 감금돼 있다. 김명국 박사는 순간적인 기지로 자신의 위치를 NTS에 알린다. 엄청난 양의 전압이 흐르는 연구소의 전력을 잠시 차단함으로써 인공위성에 위치를 노출시킨 것이다.

NTS 상황실에서 이 사실을 포착한 김준호(최시원), 즉시 휴대폰으로 이정우에게 김명국 박사가 잡혀있는 곳은 NTS 요원들이 출동한 곳이 아니라 다른 곳임을 일러준다. 휴대폰. 그렇다. 이 휴대폰은 NTS 요원들끼리만 연락되는 휴대폰으로 위장한 무전기일까? 아니면 진짜로 어디에나 노출되는 휴대폰일까? 통과. 

아무튼 전화를 받고 다급해진 이정우, 즉시 팀장에게 전화를 걸지만 불통이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최고 엘리트급 특수요원님들, 내가 볼 땐 심각한 문제다. 일반 사회에서도 전화 잘 안 받으면 불성실한 사람으로 찍히는데…. 급박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해 이것도 일단 이해하고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그 다음 이정우가 전화를 건 곳은 역시 윤혜인이다. 물론 핑계는 팀장이 전화를 안 받아서다. 그러나 이정우, 자신이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부터 출동할 곳이 실제로 김명국 박사가 납치돼 감금된 곳이다" 하고 고백하는 상대가 다름 아닌 아테나의 특수요원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절초풍?

이정우가 현장에 도착하기 전 이미 김준호가 먼저 도착했다. 총격전. 과거의 트라우마로 결코 총을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김준호도 위기상황이 닥치자 본능에 몸을 맡긴다. 이정우와 협동작전으로 김명국 박사는 구하지 못했지만 분실했던 SNC(신형원자로 핵심기술)는 되찾는 쾌거를 올린다.

자, 여기까지가 어제오늘 벌어진 활극의 스토리다. 김준호는 내부 정보가 누군가에 의해 새고 있음을 눈치 챘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대는 이미 자기들이 올 것을 알고 철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정우도 조금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그 정도 낌새는 단박에 눈치 챌 수 있는 레전드 요원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 위기의 순간에 번개처럼 뇌를 굴려야만 한다. 어떻게 정보가 샌 거지? 누군가 우리가 여기에 올 것을 미리 알려주었던 거야. 하하, 그러나 그렇게 애써 머리를 굴릴 것도 없이 범인은 이미 나와 있다. 윤혜인, 그녀가 NTS에 잠입한 스파이인 것이다.

그래 네 말처럼 이정우는 멍청해서 눈치 채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지금 이정우는 사랑에 빠져 스파이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 이정우는 바람둥이다. 옛 애인을 옆에 두고서 딴 여자에게 눈을 돌린다. 오늘은 보아하니 '보아'와도 눈인사가 예사가 아니다.


007 제임스 본드의 스파이론에 입각하자면, 연애박사가 훌륭한 첩보원임에 틀림없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레전드 이정우는 정도가 좀 심한 듯싶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이번엔 김준호가 있다. 그는 냉철하다. 그리고 이미 사태를 파악하고 권용관 NTS 국장(유동근)에게 보고한다.  

권 국장에게 보고하면서 그가 김명국 박사의 실제 감금장소를 알려준 사람이 이정우 요원 한 사람뿐이었음도 보고했을까? 아마도 보고했을 것이다. 그 정도는 보고 하는 자나 보고 받는 자나 기본에 속한다. 그럼 이정우를 당장 소환해 취조하면 윤혜인의 존재는 금방 드러나게 된다. 얼마나 간단한가.

게다가 이미 권 국장은 오숙경 실장(오윤아, NTS 과학수사실 실장)이 푼수인 척 하면서 윤혜인을 시험해 그녀가 첩자임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다. 그런데도 윤혜인을 김명민 박사를 구출하는 일선 현장 작전에 투입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뭐 다른 의도가 있다고? 김명국 박사를 확보하는 것 외에 또 무슨 의도? 

여하간 뭔가 다른 의도가 있기는 있겠지. 이정우가 멍청한 짓을 자꾸 하는 것이나 권 국장의 이해하기 힘든 인력 운용을 보면서 그런 생각도 해본다. 군대 시절 배운 시쳇말로 '고참이 반합에 똥을 눠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거늘, 뭔가 이유가 있기는 있을 거다. 그렇겠지. 그럴 거야.

그런데 만약 안 그러면, 안 그러면…, 혼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