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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조지 오웰, 글쓰기의 첫번째 목적 '허영심"

이 글은 <100인닷컴>과 <알라딘서평단블로그>에도 함께 올렸습니다. 제목을 "조지 오웰, 글쓰기의 첫번째 목적 "허영심'"이라고 고쳐 달았는데, 저는 조지 오웰의 이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블로그나 트윗, 페이스북을 하는 이유도 물론 정치적 목적도 있고, 상업적 목적도 있는 등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가 1차적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허영심이야말로 글쓰기든, 트윗이든, 페이스북이든 혹은 다른 어떤 일에도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 마케팅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경남도민일보에서 강좌를 해주셨던 '인맥경영연구원장' 구창환 원장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페이스북 성공의 동인은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구다"라고. 물론 공공의 이익이니, 순수한 미학적 열정 따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도 중요한 이유이지만, 역시 가장 강한 동인은 '순전한 이기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조지 오웰. 어린 시절 으레 이발소마다 걸려 있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시를 쓴 푸슈킨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그가 쓴 <동물농장>은 이른바 ‘북한공산집단’과 대치하고 있는 ‘자유대한’에겐 가장 탁월한 반공교육 자료였다.

책이 아니라도 만화로 된 <동물농장> 한번 안 읽어보고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그가 투철한 사회주의 작가이며 언론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모두를 지양하는 새로운 민주적 사회주의를 꿈꾸었다.

영국에서 명문사립학교를 나온 그였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버마에서 5년 동안 제국경찰 간부로 근무하게 되는데, 제국주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압제의 일원’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그만두게 된다.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밑바닥으로 내려가 피억압자가 될 필요가 있었던’ 오웰은 런던의 빈민가에서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다. 이때의 경험이 나중에 그의 첫 번째 문학 에세이 <스파이크>로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이 조지 오웰의 수많은 에세이 중 단 29편을 모아놓은 책 <나는 왜 쓰는가>의 첫 번째 장이다.

조지 오웰은 1999년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영국 BBC방송이 실시한 조사 가운데 ‘지난 천년 간 최고의 문학가 부문’에서 세익스피어와 제인 오스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찰스 디킨스가 4위, 도스토예프스키가 8위, 세르반테스가 9위였으니 그의 세계문학사적 비중을 짐작할만하다.

오웰의 글은 매우 명징하고 맑아서 술술 읽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그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 두 번째에다 올린 ‘미학적 열정’에 이끌려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해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였다.

조지 오웰은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로 ‘순전한 이기심’을 첫 번째에 올렸는데, 그것은 매우 솔직한 진술이었다. 여기서 이기심이란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 ‘허영심’, ‘자기중심적’ 패턴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이기심, 허영심과 자기중심적 욕구가 없다면 대부분의 작가는 글쓰기를 포기할 것이다.

그는 또 이에 비해 “대부분의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으며 대부분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탁견인가. 만약 “나는 허영심으로 유명해지고자 글을 쓰지 않는다. 자기중심적이란 말은 작가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똑똑해 보이거나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거나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마음 따위는 추호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허위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의 동기로 오웰은 1) 순전한 이기심 2) 미학적 열정 3) 역사적 충동 4) 정치적 목적을 들었는데, 여기서 그는 “나는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많은 글을 썼다.

그는 빈곤과 좌절을 겪으면서 노동계급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고, 버마에서 제국경찰로 일해본 덕에 제국주의의 본질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이런 경험들은 그가 행동하는 지식인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스페인내전이 일어나자 오웰은 프랑코 파스즘에 맞서 의용군으로 참전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책상머리 좌파들이나 소련을 떠받드는 공산주의를 경멸했다. 그가 보기에 히틀러나 프랑코 같은 독재자들과 러시아 공산당은 다른 점이 없었다.

전체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동물농장>과 <1984년>이 한국에서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지만(미국의 정보당국이 판매촉진에 앞장섰다는 설이 있다), 반공을 앞세워 독재와 탄압을 일삼던 대한민국의 현실로 보건대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오웰은 모든 형태의 전체주의에 반대했다. 나찌의 파시즘과 스탈린식 공산주의뿐 아니라 자본주의도 그에겐 전체주의였다. 오웰이 추구했던 것은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그는 그의 이상주의를 알리기 위해 글을 썼다. 그는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서 이점을 분명히 밝혔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보기에 난센스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없”고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라고 주장하는 오웰은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문학적 예술성에 대한 깊은 애정과 고민이 묻어나는 그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내가 스페인내전에 대해 쓴 <카탈로니아 찬가>는 물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하지만 대체로 어느 정도 초연한 마음으로 형식을 고려하며 쓴 작품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문학적인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모든 진실을 말하기 위해 상당히 애를 썼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지만, 그 이전에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지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보는, 낱말들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희열을 느끼는 이기심과 허영심으로 가득한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였던 것이다.

<한겨레 출판사>가 조지 오웰의 수많은 에세이 중에 29편을 엄선해 <나는 왜 쓰는가>란 제목으로 책을 내놓았다. 오웰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썼던 수많은 에세이들 중 29편을 시간대 순으로 나열한 이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 틈엔가 조지 오웰이 살아온 길, 변화해온 과정들을 만날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더불어 ‘전 생애에 걸쳐 인습과 관성을 거부한 오웰의 삶으로부터 나온 사유’와 ‘인간에 대한 경이로운 성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은 과거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오늘 우리와 함께 살며 내일을 내다보는 사람이다. 1950년 1월, 오웰은 오랫동안 앓던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 책의 번역자 이한중은 역자 후기를 통해 조지 오웰로부터 받은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를 이렇게 전한다.


“오늘 우리가 작가 오웰에게서 구할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일까?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심지어 업으로든 아니든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오웰이 주목한 언어의 타락에 대하여 오늘 우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젖줄에 비유되는 강을 파헤치고 댐을 쌓아 물을 가두는 일을 ‘강 살리기’라 부르고 ‘녹색’ 뉴딜이라 일컫는다. 오웰은 말한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죽이면서 살린다고 하고, 나무와 습지를 파내면서 ‘녹색’이라고 하는 것은 <1984년>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선전을 담당하는 기관이 “전쟁은 평화/자유는 예속/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 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 10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

▲ 이 글은 인터넷서점 <알라딘 서평단 블로그>와 <100인닷컴>에도 함께 싣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 목차
스파이크 The Spike (1931/04)
교수형 A Hanging (1931/08)
코끼리를 쏘다 Shooting an Elephant (1936/가을)
서점의 추억 Bookshop Memories (1936/11)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Spilling the Spanish Beans (1937/07, 09)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Why I Joined the Independent Labour Party (1938/06)
마라케시 Marrakech (1939/12)
좌든 우든 나의 조국 My Country Right or Left (1940/가을)
영국, 당신의 영국 England Your England (1940/12)
웰스, 히틀러 그리고 세계국가 Wells, Hitler and the World State (1941/08)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Looking Back on the Spanish War (1942/가을)
시와 마이크 Poetry and the Microphone (1943/가을)
나 좋을 대로 As I Please (1944/01)
민족주의 비망록 Notes on Nationalism (1945/05)
당신과 원자탄 You and the Atom Bomb (1945/10)
과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Science? (1945/10)
문학 예방 The Prevention of Literature (1946/01)
행락지 Pleasure Spots (1946/01)
“물속의 달” “The Moon under Water” (1946/02)
정치와 영어 Politics and the English Language (1946/04)
두꺼비 단상斷想 Some Thoughts on the Common Toad (1946/04)
어느 서평자의 고백 Confessions of a Book Reviewer (1946/05)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1946/여름)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Politics vs. Literature: An Examination of Gulliver's Travels (1946/09~10)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How the Poor Die (1946/11)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Lear, Tolstoy and the Fool (1947/03)
정말, 정말 좋았지 Such, Such Were the Joys (1947/05)
작가와 리바이어던 Writers and Leviathan (1948/03)
간디에 대한 소견 Reflections on Gandhi (1948/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