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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책을 보지 마라니, 왜 책보지 마라고 했을까?























성철스님의 법문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이 말을 모르는 대한민국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간첩이니 신고하시면 크게 포상 받으실 겁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이 말이 무얼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산이
산이지 그럼 강이란 말인가. 그래도 성철스님 말씀이니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건 분명해" 
하고 생각하는 정도지요. 

성철스님이 남긴 법문 중에 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책보지 마라!"

엥? 이게 대체 무슨 말씀! 책을 보지 말라니.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히기 위해 독서인증제 같은 약간은(혹은 대단히) 강압적인 정책까지 마련하는
오늘날의 교육감들이 들으면 실로 황당해마지 않을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틀림없이 "책보지 마라"는 법문을 남기셨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럼 성철스님은 왜, 무엇 때문에, 중생들로 하여금 제발 책 좀 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남기셨을까요?
혹시 요즘 책들이 음란하거나 성공만을 추구하거나 뭐 그런 너무나 속세적인 책들이 많아서 그러신 건 아닐까요? 
역시 이 말 또한 성철스님이 남긴 말씀이니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게 분명합니다.
아하,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였군요.
책보지 마라는 성철스님의 법문은 깨달음을 얻는데 책이 방해된다는 뜻이었을까요?

가만 생각해보니 깨달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위대한 선지자의 가르침을 잘 새기고 알아들어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 선지자가 남긴 말씀이 적힌 책을 잘 배우고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마 한반도에 전래된 최초의 불교는 이런 종교 방법론을 가졌을 것입니다.
교종…, 경전을 잘 연구하고 그 뜻을 민중에 전파하는 것이 승려의 역할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왜 "책보지 마라!" 하고 법문을 남기셨을까요?
그러고 보니 성철스님은 선종의 큰스님이셨군요.
조계종을 처음 만드신 스님을 우리는 대체로 지눌스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눌스님은 돈오점수를 설파하셨지요.
돈오점수,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어느날 문득 깨달음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성철스님은 이에 반해 돈오돈수를 설파하셨습니다.
천년 선불교 역사에 매우 도전적이며 혁명적인 교리를 내세운 것입니다.
글쎄요, 돈오돈수가 뭘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점진적 수행을 강조하는 지눌스님의 돈오점수와는 달리 단박에 깨달음을 얻기 위한 화끈한 어떤 수행방법?
불교 신자도 아닌 제가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오점수든 돈오돈수든 수행을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선 반드시 고된 수행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 수행의 방법을 선불교에서는 참선 혹은 면벽수도라 보통 부릅니다.
다양한 수행방법이 있겠지만 한국 선불교는 면벽을 최고의 수행으로 치는 듯 합니다.
벽을 보고 앉아서 무슨 수행을 한다는 것일까요?
저 같으면 졸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

이렇게 얘기를 풀어나가다 보니 그렇군요.
왜 성철스님은 책을 보는 것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셨을까? 
이런 말이 있더군요. 
깨달음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책이 수행자에게 선입관이나 교조를 만들어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셨나봅니다.

그럼 성철스님은 책을 전혀 안 보셨을까요?
그건 그렇지 않은 거 같습니다.
성철스님처럼 박학하고 다식한 사람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스님들이 유식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책 보지 마라는 스님의 가르침이 워낙 완고했다고 하니
이런 애매한 자의적 해석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그러나 아무튼, 우리 같은 범부들이야 스님들처럼 책도 보지 않고서야,
깨달음은 고사하고 세상 말을 제대로 알기듣기도 어려운 법.
어차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인즉,
오늘은 무슨 책을 읽어볼까 서가를 기웃거립니다.
게다가 저로 말하자면, 알라딘 신간서평단 활동을 하는 터라
택배 아저씨가 날라다주는 책을 의무적으로 읽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니, 
"책보지 마라!"는 스님의 법문은 그야말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