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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해양도시 마산에 왜 바다가 없어?

이 정도 수준을 바라는 건 절대 아니랍니다. ^--^





















대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게, 많이 덥재? 여기도 보통이 아이다. 사람 딱 죽긋네.”
“네, 많이 덥습니다. 본격적으로 더울 모양이네요.”
“이사람아, 그래도 자네 사는 마산은 좀 시원하잖아? 거는 그래도 좀 걸어 나가면 바다도 있고 말일세.”
“…….”
“시원한 바닷바람 좀 쐬고 그러면 훨씬 안 낫겠나?”
“그야 그렇겠지만, 형님, 마산은 바다가 없습니다.”
“아이, 그게 뭔 소리로? 마산에 바다가 없다니? 마산이 해안도시 아니었나?”
“글쎄요. 해안도시가 맞는 거 같기는 한데, 그런데 바다는 없습니다.”

대구에 사는 아는 형님으로부터 마산은 바다가 있어서 시원할 거라는 소리를 듣고 황당했던 제가 마산엔 바다가 없다고 말하자, 이번엔 그 형님이 어리둥절해졌습니다. 그는 도무지 제 말이 이해하기도 힘들고 믿기도 어려운 모양이었습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합니다. 전국 어디에 사는 사람이라도 백이면백 마산은 바닷가에 있는 해양도시라고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15년 전 우리집이라면 둥그런 달처럼 마산만이 훤히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가더라도 바다에 접근할 순 없다.


사실 마산에도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던 시절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8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마산엔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해수욕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건 저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담할 순 없지만, 경남도민일보가 몇 년 전에 기획 연재한 기사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산시청 자리가 월포해수욕장이었고 그 뒤로 울창한 송림이 있었는데(아마도 세무서 자리겠지요), 서울에서 직통 증기기관차가 다녔다는 겁니다. 

인천의 송도해수욕장과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해수욕장이었다고 합니다. 무학산에 올라가서 마산만을 내려다보시면 과거에 존재했을 월포해수욕장이야말로 천혜의 해수욕장 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항아리 같은 만에 자리 잡은 해수욕장, 상상이라도 해보셨습니까? 멀리 갈 것 없이 20년 전만 하더라도 마산에 해수욕장이 있었지요. 가포해수욕장. 오염된 바닷물에 좀 썰렁하긴 했어도… 지금은 매립되어 육지가 됐습니다. 

제가 마산에 와서 처음 어시장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모두들 홍콩빠라고 불렀습니다. 바닷가에 길게 늘어선 횟집 아무 곳이나 골라 들어가면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때도 오염이 심했지만, 그래도 답답한 도회의 한 귀퉁이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그 홍콩빠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홍콩빠가 있던 자리 역시 매립으로 육지가 됐습니다. 바다였던 자리엔 차가 달리고 콘크리트 벽이 만들어졌습니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아쉬운 대로 집에서 마산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아파트와 빌딩들로 이루어진 숲에 가려 바다를 볼 수가 없습니다. 굳이 바다를 보고 싶다면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무학산에 오르면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철썩이는 파도를 느낄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산에서 내려다보는 마산만은 바다라기보다는 빌딩숲에 가리워진 자그마한 호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땀 흘려 산에 오르지 않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겐 해당이 없는 이야깁니다. 아마도 짐작하건대 바다를 가끔이라도 보면서 살아가는 마산 시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1년 동안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저도 바다를 본지가 오래 됐습니다. 일부러 교외로 빠져나가 바다를 보려고 마음먹지 않는다면 바다를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기는 여수, 왼쪽에 카메라 든 이가 필자. 이 수변공원의 뒤는 아파트 단지촌이다. 사진=김주완


“해양도시 마산에 바다가 없다니 참 거 희한한 말이로세.”
“형님, 그러니까 바다가 있긴 있는데요, 우리는 그 바다에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왜?”
“글쎄요. 어쨌든 저는 마산에서 바다에 가 본 일이 없으니까.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
“바다와 연결되는 부분은 모두 철조망으로 막아놓았거나,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공장이거나 그렇거든요.”

하긴 그러고 보니 그 형님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마산에 바다가 있는지 없는지 그런 사소한 문제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산에는 바다가 있어서 시원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보니 과연 마산에도 바다가 있었던가, 내가 사는 곳이 해양도시였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거의 생각지도 않고 살아왔던 마산의 정체성이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가진 마산에 살고 있는 저를 부러워하는 대구의 형님에게 괜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이, 그냥 바닷바람이 참 시원하다고 말하고 말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