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여수엑스포 팸투어 첫날 첫 관광지, 동백꽃이 피를 토하는 오동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특히 의미 있는 답사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한 번쯤은 읽었으리라. 유흥준은 자신의 답사기 제1장 제1절에 남도를 올리고 이름 하여 '남도답사 1번지'라고 정한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나아가 그는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남도답사 1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 1번지'라고 불렀을 답사의 진수처가 바로 남도"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남도의 봄빛을 보지 못한 자는 감히 색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남도의 봄에는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자연의 원색, 우리의 원색이 있으며, 그 원색의 물결 속을 거닐"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행운인 것이다. 유흥준에게 남도는 강진과 해남이었을 것이지만, 실은 남도의 봄빛, 그 화려한 원색의 향연이 가장 먼저 당도하는 곳은 여수 오동도였다.
여수에 도착한 우리는 엑스포 홍보관에서 지친 눈을 비비며 세계박람회 현황을 들은 다음 제일 먼저 오동도에 들렀다. 진초록으로 깊게 팬 터널 사이로 선홍빛 동백꽃이 내뿜는 붉은 홍채가 우리의 잠든 심장을 박동 치게 한다. 피로에 눌려 허물어지던 눈꺼풀도 파르르 떨며 일어섰다.
오동도. 왜 오동도라 했을까?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야♬" 이 노래하고는 별 관련이 없는 걸까? 아무튼 참 예쁜 이름이다. 곽재구 시인의 말처럼 어느 날 홀연히 떠난 여행자가 밤을 새운 기차여행 끝에 도달한 한 낯선 바닷가의 이름이 목포, 부산, 포항, 강릉이라도 좋겠지만, 그 마을의 이름이 여수라면 누가 한눈에 그 마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 여수의 오동도.
나는 오동도가 여수를 대표하는 이유로 그저 시내에서 가깝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동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명품, 자연유산이었다. 성채처럼 둥그렇게 바다를 막아선 깎아지른 절벽들 사이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마치 적군들처럼 깊숙이 부서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위로 날카로운 시누대를 앞에 두고 핏빛 선명한 붉은 동백전사들이 정말 유흥준의 말처럼 목이 부러져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실로 장엄한 광경이었지만, 내 카메라가 그 현장을 따라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압도당한 탓이었을까.
진초록을 뚫고 뚝뚝 떨어지는 선홍빛 향연의 터널을 지나면 다시 더욱 깊고 기다란 검은빛의 터널을 만난다. 시누대 터널. 시누대는 이순신 장군이 화살을 만들기 위해 심었다는 대나무다. 날카롭게 뻗은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전라좌수영 수병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동도 등대에 오르니 좌청룡 우백호, 왼쪽엔 남해섬이 오른쪽엔 돌산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돌산도는 여덟 번째로 큰 섬이란다. 과연 천혜의 요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달리면 머잖아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격전지 노량이 나타난다.
4백여 년 전, 이곳은 아마도 핏빛 바다였으리라. 선홍빛 동백꽃보다도 더 붉은 전사들의 피가 이 바다를 물들였으리라. 그러나 오늘 바다는 너무나 평화롭다. 바다 건너 남해를 배경 삼아 정박해있는 유조선들이 마치 한가로이 휴양 나온 여행객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등대에서 내려오니 함께온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차를 마시고 있었다. 동백꽃차. 어떤 이는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찻잔을 놓고 열심히 셔터를 누른다. 동백꽃으로 만든 차라니, 참으로 신기하다. 어떤 맛일까? 새콤달콤한 게 특이한 맛이다. 아주 좋다. 그런데 더 좋은 것은 이게 건강에 참 좋단다.
대한민국 사람 치고 몸에 좋다는데 마다 할 사람 있을까. 나 역시도 대한국인. 사람들 틈에 끼여 열심히, 정말 열심히 동백꽃차를 마셨다. 일단 몸에 좋다니까. 그런데 맛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고 해도 맛이 없다면 곤욕 아니겠는가.
동백꽃잎차는 특히 피를 맑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동백꽃의 선연한 핏빛을 보노라면 일리 있다는 생각을 넘어 매우 과학적이란 생각에까지 미친다. 현대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바로 피가 혼탁해지는 것 아닐까. 알코올에, 지방에, 과도한 영양섭취에 우리들의 피는 원래의 선홍색을 잃어가고 있다.
동백꽃으로 차만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사탕도 만들어 파는가보다. 아래 사진처럼 동백꽃제리도 있다.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사서 복용해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일단 맛만으로도 저렴한 가격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을 것이므로, 건강이 좋아졌다면 그건 덤이다.
동박새꿈정원 blog.daum.net/camelliatea 이메일 cssj1229@한메일
첫날 저녁은 이곳에서 먹었다, 여수시특산품전시판매장이 아니고 그 밑에 보면 한일관이라고 작게 적혀있는 곳에서. 늘 그렇지만 첫 날 첫 번째 먹는 저녁이 가장 푸짐하고 맛있는 법이다. 어딜 가나 그랬다. 역시 이날도 그 통상적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맛의 고장 남도에서도 여수다.
블로거들이란 대체로 피곤한 사람들이다. 물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지만. 한 블로거가 푸짐한 밥상을 앞에 두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그의 촬영행각이 끝날 때까지 모두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실은 식사 대기하고 있는 다른 블로거들은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
그러니까 지금 이 블로거는 지각생이다. 남들 다 찍을 때 뭐 했을까? 그의 카메라 행각을 아주 겸손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이는 시사블로거 거다란닷컴의 커서님이다. 그리고 포스 넘치는 동작으로 카메라를 조준하고 계신 이는 나도 잘 아는 부산의 블로거, 따뜻한 카리스마. 역시 표정만 봐도 카리스마가 넘친다.
얼큰하게 소주 한 잔 걸치고 야경을 보러갔다. 어라? 그런데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거야.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걸까. 참으로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내가 사는 마산의 야경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술 취한 손가락 탓에 사진이 실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창원 귀산동 쪽으로 가면 아마도 마산의 야경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한 번 거기 가서 여수의 야경과 비교해 보고픈 충동이 인다. 그러나 안 하는 게 낫겠지? 괜한 일로 자존심만 상할 뿐일 텐데. 그러나 한편 걱정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지키려면 얼마나 많은 욕심들을 꺾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인가.
우리들의 숙소다. 김주완 기자, 커서와 커피믹스 부부, 아 그러고 보니 이분들 커씨들이었네? 커플이라고 성씨도 커씨였구먼. 숙소가 아주 대만족이다. 디오션 리조트라고 했다. 여수에서 여기가 제일 좋은 곳인가? 잘 모르겠다.
늘 그렇지만 여행자들은 밤에도 잠을 잘 자지 않는다. 낮의 감동이 밤에는 술로 이어지기 마련. 등을 보이고 손을 흔들며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계신 분이 임현철님(알콩달콩 섬이야기), 그 옆으로 김주완 기자, 팰콘님(팰콘의 스케치북), 커서님(거다란닷컴), 커피믹스님(달짝지근), 따뜻한 카리스마님이다. 물론 내 얼굴은 여기 없다.
꼭 내 얼굴을 보고 싶으신 분은 저쪽 창밖에서 이쪽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잘 생긴 남자를 보면 된다. 좀 침침하긴 할 테지만, 원래 그렇게 보아야 잘 생겨 보이는 법이다. 어흠~
새벽 세시 반에 우리는 잠들었다. 나는 김주완 김자와 한 방, 한 침대에서 자게 되었는데, 남자와 자는데 익숙하지 않은 나로선 매우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그리고 새벽 6시경 김주완 기자의 우악스런 발에 밀려 나는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나는 하나의 선물을 받았다. 바다 건너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글쎄, 내가 일출을 본 것이 몇 년 만이었던가? 정확하진 않지만, 고등학교 때 설악산권으로 수학여행 갔을 때, 경포대에서 일출을 본 후 처음이었다.
신혼여행도 설악산으로 갔었는데, 현재의 아내와 낙산사 의상대에서 일출을 보려고 했으나 일기 탓으로 실패했었다. 그 이후론 굳이 일출을 볼 일도 보고자 한 일도 없다. 매년 1월 1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줄지어 떠나는 걸 보면서 그 짓들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였다.
아무튼, 김주완 기자 덕분에 나는 장엄한 일출을 생애 두 번째로 볼 수가 있었다.
아침은 여수시내에서 욕쟁이해장국을 먹었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해야겠다. 무슨 해장국이 이렇게 싸고 맛있는지. 키조개 완자도 들어있고, 홍합, 굴도 들어 있다. 그리고 가격은 5천원. 이런 해장국집을 우리 동네에다 차리면 갈고리로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속물근성.
바로 이 집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난 아줌마가 바로 이 아줌마다. 문화해설사. 그녀는 경상도에서 시집온 전라도 아줌마다. 고향은 경상도 함양 땅,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을 이곳 남도에서 살았다. 경상도 톤이 베이스로 깔린 전라도 말씨는 참으로 유창했다. 그야말로 에이스 해설사였다.
이 아줌마 얘기도 별도로 해야겠다. 두 손에 동백꽃잎을 들고 동백꽃의 전설, 동백꽃이 수정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백나무는 특이하게 벌이 아니라 동박새가 꿀을 따고 수정을 시켜준단다. 그런데 동박새가 미처 꿀을 따기도 전에 저렇게 스스로 목을 부러뜨려 장렬하게 떨어진다고 하니 실로 신기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뭇 사람들의 눈에는 동백꽃이 피를 토하고 풀밭에 쓰러져서도 그 선홍빛 자태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실로 감탄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저녁을 먹으러 갔던 식당의 정원에도 온통 붉은 동백꽃 천지였다. 여수는 동백의 나라였던 것이다.
마산에 돌아온 나의 눈에 우리 집 마당에 활짝 핀 동백꽃이 들어왔다. 그래,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마당에도 동백나무가 두 그루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년 봄이 오기 전에 그 꽃들이 피는 것을 보아왔을 터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 꽃들을 보며 원색의 선연함에 감탄하지 못했을까?
떨어진 동백꽃을 보며 왜 나는 스스로 부러뜨린 목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목이 부러져 피를 토하며 부르는 노래를 듣지 못했을까? 아니 그보다 왜 그토록 처연한 원색의 봄빛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여수에 가서야 그것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어쩌면 남도의 동그마한 산등성과 넓은 벌판, 신기루처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시리도록 푸른 바다가 나의 눈이 빛깔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외로운 한 두 그루가 아니라 천지로 둘러싸인 해묵은 동백나무들과 일사불란하게 목을 부러뜨리고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는 동백꽃들의 집단성이 흑백의 겨울에 갇힌 나를 꺼낸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원색의 남도, 여수는 아름다웠다. 그래서 이름이 여수였던가 보다. 여수….
2012 여수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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