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예

비담의 난으로 용두사미 된 선덕여왕

<선덕여왕>이 막판에 용두사미가 되고 있다. 진흥대제로부터 시작된 드라마는 실로 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에 부끄럽지 않았다. 갈수록 더해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블로고스피어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선덕여왕>으로 인해 블로그가 융성했고, 반대로 블로그는 <선덕여왕>을 부흥시켰다. 

이미지는 요즘 TV나 컴 앞에 앉을 시간이 별로 없어 불가피하게 연어군님 블로그에서 무단으로 도용했음.


선덕여왕, 미실의 난으로 끝냈어야

천명공주와 미실의 대결, 이어 타클라마칸에서 돌아온 덕만공주와 미실의 대결은 늘 숨이 가빴다. 상상을 뛰어넘는 지략과 술수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여기에 문노의 비밀과 비담의 활기가 더해져 <선덕여왕>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국민 남동생이라는 유승호의 등장으로 절정에 달했던 <선덕여왕>은 그러나 미실의 죽음 이후 기가 빠졌다. 

여기까지였다.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덕만공주가 여왕에 즉위하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덕만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곧 드라마가 처음 시작할 때 진흥대제가 던져준 예언의 완성을 의미한다.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이길 자가 오리라!” 이것이 드라마의 처음이자 끝이 아니었던가.

덕만이 태어나고, 미실을 물리치고, 그리하여 최초로 여왕이 된 덕만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룰 기초를 닦을 것이란 희망을 보여주며 드라마는 마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사람들은 선덕여왕이 진정 개양자였음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무도 덕만이 개양자란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블로거들 누구도 그 사실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그럼 비담은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그거야 비담은 유신, 알천과 함께 덕만공주를 도와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선덕여왕 옹립의 1등공신이 되면 되는 것이다. 미실의 난을 진압하는 중에 비담에게 전해진 진흥대제의 칙서로 먼 훗날 비담의 난을 암시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묘한 여운을 남기는 것도 좋은 전략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비담의 난은 <선덕여왕 시즌2>로 만들면 어땠을까?

미실의 난을 진압하고 논공행상 과정에서 유신과 비담의 갈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면 시청자들에게 <선덕여왕 시즌2>를 기다리게 하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랬을까? <선덕여왕> 제작진은 무리하게 짧은 기간에 선덕여왕의 치세와 비담의 난과 선덕여왕의 죽음 그리고 춘추의 등극까지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는 듯하다.

비담의 난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선덕여왕> 전편에 버금가는 대작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무리한 드라마의 진행은 어이없는 선덕여왕을 만들고 말았다. 처음에 예언의 인물, 신국의 개양자였던 덕만은 한낱 사랑에 휘둘리고, 사람을 의심하고, 그러다 결국 느닷없이 병을 얻어 죽게 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예언속의 개양자란 말인가. 

그리고 사랑만 해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덕만이 유신을 사랑하는 줄로 알고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 갑자기 여왕이 된 덕만의 사랑이 비담에게로 갔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애틋한 눈길로 유신을 바라보다 블로거들로부터 왕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비판을 받으며 논란에 휩싸였던 그녀다. 그럴만한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외로워서 그랬을까? 아니면 원래 바람둥이라서?

외로우면 유신을 부르면 될 일인데, 나는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간다. 그토록 간절하던 두 남녀의 사랑이 고작 그 정도였단 말인가? 물론, 비담은 자신의 정체를 알고 난 이후 줄곧 덕만을 향한 연정의 화살을 쏘아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은 야심의 발로였다.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한 발판으로 덕만을 선택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진정한 사랑으로 느끼지 못했다.
 

역시 연어군님 블로그에서 도용한 이미지


용두사미가 된 선덕여왕, 탓은 비담의 난 때문이다

그런데 막판에 비담의 야심마저 애절한 사랑으로 둔갑했다. 게다가 더욱 어이없는 것은 냉혹하고 날카로운 카리스마로 미실의 뒤를 이어 미실파를 장악한 비담이 오히려 이들의 간계에 넘어가 말이 물가에 끌려가 물마시듯 반란의 주모자가 된다는 스토리다. 바로 어제까지도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것 같던 비담이 하루아침에 오해에 빠져 반란수괴가 된다니. 

비담의 난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선덕여왕을 잃어버렸다. 진흥대제가 예언한 ‘미실을 이기고 신국의 영광을 되찾을’ 개양자를 잃어버렸다.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온갖 고난을 이기며 서역과 중국의 발달한 문명을 배우고 돌아온 덕만을 잃어버렸다. 덕만이 왕좌를 차지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면 얻을 수 있었을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선덕여왕> 제작진으로 보자면, 시즌2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만약, 시즌2를 만들 수 있었다면 전편을 능가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비담이 어떻게 세력을 모아 나가는지, 유신과 춘추는 어떻게 합종하고 연횡해서 집권기반을 구축하는지, 덕만의 치세는 어떻게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는지 우리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선덕여왕> 전편에서 던져졌던 모든 의문들이 후편을 통해 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꼭 만났어야 하지만 나타나지 않았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시즌2를 만들든 말든, 비담의 난으로 인해 <선덕여왕>은 용두사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