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월요일자 경남도민일보(김훤주 기자)를 보니 보도블록 한 장에 25만 8500원 한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창원에서만 603장을 사서 깔았다고 합니다. 25만 8500원×603장, 계산해보니 155,875,500원입니다. 읽기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친절하게 다시 불러드리면 일억 오천 오백 팔십칠만 오천오백 원입니다. 길바닥에 1억 5천만 원이 넘는 돈을 바른 것입니다. 2008. 6. 13. 마산에 STX 유치를 호소하는 마산발전여성모임의 기자회견 @경남신문
마산시청에서 벌어진 재미난 에피소드 수녀원 앞에서 STX 유치찬성파주민들이 확성기 틀어놓고 수녀들에게 성적수치심을 조장하는 욕설까지 하고 있다.
대체 무엇으로 만든 블록이기에 한 장 가격이 이토록 비싸단 말입니까? 4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 달 동안 쓰는 용돈보다 훨씬 많은 돈입니다. 그런데 이 블록이 창원을 비롯해 마산, 창녕 등 경남과 대구, 부산에 약 6~7천장이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영남 일원의 도심 길바닥에 금칠을 한 셈입니다.
저는 오늘 왜 제가 사는 동네에서 길에다 이토록 비싼 금칠을 하나 따지려는 것은 아닙니다. 마산 내서에 있는 이 보도블록을 만드는 에스엘테크라는 회사의 회장님은 Y라는 여자분입니다. 오랫동안 학교 선생도 하셨다는 이분은 마산 대번일식의 대표이기도 하답니다. 제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분에 대한 독특하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에피소드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끔찍한 이야기긴 합니다만, 아무튼 재미는 있을 겁니다. 수정만 STX 조선소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모두들 들어보셨을 줄로 압니다. 지금도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수정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마산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나다보노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장입니다.
지난여름, 수정만 주민들과 트라피스트수녀원의 수녀님들이 마산시청에 항의 방문을 갔습니다. 조선소가 들어서면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되지만, 마산시나 STX는 특별한 보상대책도 없이 서로 책임만 떠넘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과 면담을 요구했지만 시장은 만나주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시청사 바닥에서 농성을 하게 됐습니다.
삿대질을 하다 느닷없이 팔을 붙들며 무릎을 꿇고, “수녀님, 마산의 눈물을 아세요?”
이때 바로 이분이 나타난 것입니다. 마산여성경제인연합회 회장이기도 했던 그녀는 수정만 STX 조선소 유치 찬성파 주민이었던 모양입니다. 고급스런 양장을 입고 목에 진주를 치렁치렁 감고 나타났더라는 원장수녀님의 표현을 빌자면 그녀에게 주민이란 이름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일단의 찬성파 주민들과 함께 나타난 이분은 분기탱천해서 달려들었다고 합니다. 삿대질을 하며 쌍욕을 해대는 이분의 모습을 들어보면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가 아닐까 연상이 될 정도였습니다. 원장수녀님은 난생 처음 쌍시옷이 섞인 온갖 욕설을 듣는 수모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원장수녀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시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후 가두행진하는 수정만 주민들
“그 여자가 말예요. 목에 진주를 치렁치렁 감고 나타나서는 나한테 막 욕을 하는 거예요. 난생 그런 욕 처음 들어봤어요. 막 쌍시옷이 나오는데, 어휴~ 그런데 그때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자 이 여자가 돌변한 거예요. 갑자기 내 팔을 꼭 잡고서는, ‘수녀님, 마산의 눈물을 아십니까?’ 굉장히 불쌍한 표정을 짓고 말예요.
생각해보세요. 사람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어 욕을 해대다가 갑자기 다소곳한 표정으로 무척 걱정이 많다는 듯이 ‘수녀님, 마산의 눈물을 아십니까?’ 팔을 잡힌 내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런데요. 그러더니 기자들이 가고 나니까 다시 삿대질을 하고, 쌍시옷을 내뱉고, 세상에 그런 사람 처음 봤어요. 나중엔 너무 우스워 한참을 웃었지만….”
(옆에 있던 다른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기자들이 나타나자 무릎까지 꿇고 애걸하듯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함께 온 다른 여자들이 “회장님, 왜 이러십니까?” 하면서 울며 말리고, 아래분 댓글처럼 그야말로 영화 한 편 찍어도 손색이 없을 뻔 했습니다. 기자들이 떠나자 다시 태도가 돌변해 삿대질을 하며 달려들었다는 대목에선 차라리 연민마저 느껴집니다.)
수정만을 파헤치자고 주장하는 주민들, 그들은?
이분은 최근에 수정만 매립지 근처에 땅을 샀다고 합니다. 계약금만 내고 아직 중도금과 잔금을 치르지 않았다는데 원장수녀님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겠다고 합니다. 다만, 이곳에 공단허가를 낼 계획이었는데, 요즘 조선 경기가 안 좋아 망설이고 있는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트라피스트수녀원에서 조금 올라가면 석곡이란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도 산업단지가 곧 조성될 것이라고 합니다. 쇼트와 도장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이곳에 6만 7천여 평 규모의 산업단지를 만들기 위해 행정절차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쇼트와 도장작업이 엄청난 분진과 공해를 유발할 것임은 자명합니다.
이 업체가 땅과 모텔 건물을 사서 이곳에 들어와 주민이 된 것은 불과 1년여 전이라고 합니다. 석곡은 안골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산 너머에는 뒷골이란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에선 마산만 매립용 석산이 개발될 예정입니다. 수정마을은 매립지에 STX 조선소만 들어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조선소와 관련된 온갖 공해유발 업체들이 조용한 수정마을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산업단지간소화특례법에 따라 이제 산골에 공단 만드는 것도 식은 죽 먹기가 따로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의 그녀가 원장수녀님에게 “수녀님, 마산의 눈물을 아십니까?” 한 것이 이유 없는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마산의 눈물을 아냐고? 너희들 목에 걸린 욕심의 눈물 말이냐?”
어쩌면 그녀의 목에 걸린 진주가 눈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장수녀님도 그러셨습니다. “날더러 마산의 눈물을 아느냐고? 보니까 그 여자 목에 치렁치렁 매달린 진주알들이 눈물인가 봐. 마산의 눈물은 무슨, 자기들 욕심의 눈물이겠지.” 원장수녀님은 다시 그때가 생각났는지 말을 마치고 한참을 웃었습니다.
지난 여름 땡볕에 1인 시위 중인 수정만 주민. 찬바람 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수녀님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마산시청 앞을 지나는데, 수정만 할머니 한 분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찬바람에 할머니의 하얀 머리칼이 날립니다. 시장의 눈에는 이 모습이 보이기는 할까요? 아마 부자의 목에 걸린 진주로 만든 눈물은 보여도 찬바람에 날리는 할머니의 하얗게 샌 머리칼이 보일 리가 없을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렇군요. 세상이 참 말셉니다. 그나저나 수정만을 STX에 내주기 위해 국회에 거짓문서까지 위조해 제출한 황철곤 마산시장님, 지금 심경이 어떠실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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