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으로 달려가는 <아이리스>, 서울 한복판에서 핵폭탄을 사이에 두고 모든 것이 결판날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북한의 염기훈 위원과 남한의 NSS(국가안전국) 백산 국장은 한편이다. 연기훈은 북쪽 아이리스 지부장이고, 백산은 남쪽 아이리스 지부장이다. 이렇게 보면 아이리스를 매개로 이들은 이미 남북통일을 이룬 것인가.
엉터리 같은 상상이지만, 아무튼 남과 북의 정보책임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공동목표를 두고 심사숙고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다. 평화적 통일을 반대하기 위한 남과 북의 통일전선이라.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는 이런 욕망을 부추기며 냉전을 조장하는 아이리스가 있다.
베일에 가린 아이리스 본사의 실체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아이리스는 그야말로 드라마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연 위원과 백 국장이 본사라고 부르는 아이리스의 실체에 아직도 우리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대체 아이리스의 본사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규모일까? 그 본사를 움직이는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러나 그런 의문들은 어느 순간 일거에 드러날 것이다.
드라마란 늘 그렇다. 막판에 모든 의문들이 싱겁게 해소되면서 드라마는 막을 내리고 사람들은 허탈감에 빠져드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어떻든 지금 이 순간 <아이리스>는 아이리스의 실체 외에도 많은 의문점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고,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아이리스>에 고정시키는 커다란 힘이다. 그중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할까.
첫째, 검은 암살자 빅의 정체다. 그는 누구일까? 누구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일까? 북한의 핵물리학자 홍승용을 암살한 것도 그였다. 처음에 나는 그가 백산 국장의 지시에 의해 홍승용을 암살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14부에서 평화롭게 아내와 장을 보는 백산을 미행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아이리스 본사에서 파견한 요원이란 얘긴데, 왜 백산을 미행했던 것일까?
둘째, 남한 대통령 비서실장의 정체. 그는 백산과 대통령의 독대를 도청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비서실장은 대통령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측근중의 측근이다. 그런 그가 왜 대통령의 대화를 도청했을까? 혹시 그도 제 3의 세력의 조직원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조직이 있다면 대체 어떤 조직일까? 혹시 백산에게 살해당한 유 박사가 만들었다는 그 조직?
셋째, 진사우다. 진사우는 어째서 아이리스의 조직원이 되었을까? 진사우가 백산으로부터 김현준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아이리스가 아니었다. 친구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던 진사우는 백산이 최승희를 대신 보내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국가관이 매우 투철해보이던 그가 왜 아이리스가 되었을까? 혹시 최승희 때문에?
아이리스로부터 최승희를 살려낸 백산의 의도가 뭘까
마지막, 역시 가장 커다란 의문은 최승희다. 도대체 최승희는 누구일까? 냉혹한 백산, 어떤 경우에도 감정이 흔들리지 않는 백산도 최승희가 테러범들에게 납치당했다는 보고에 눈빛이 흔들린다. 고민하던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최승희를 살려 보낼 것을 부탁한다. 아마도 통화의 상대방은 염기훈 위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연기훈의 전화 한통으로 최승희는 사지에서 돌아온다. 염기훈의 지시로 북에서 내려온 핵 테러범들도 결국 아이리스인 셈이다. 아무튼 최승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살아났다. 그러나 왜 백산은 연기훈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까지 하며 최승희를 살리려고 했을까? 도대체 최승희와 백산은 무슨 관계일까?
지금까지 정황으로 보아서는 아이리스에 충성하는 백산이 최승희를 살려야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백산이 진정한 아이리스라면 오히려 최승희를 살려서는 안 된다. 최승희는 특수요원이며 NSS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파일러다. 그런 그가 살아 돌아온다는 것은 아이리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최승희는 NSS 내부의 배신자가 백산과 진사우란 사실을 인지한 실장의 도움을 받아 테러범들의 아지트를 찾아냈다. 이는 백산이 아이리스 본사로부터 충분히 의심 받고 책임 추궁을 당할 만한 사건이다. 빅이 백산을 미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미 아이리스 본사는 백산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사우로부터 최승희가 테러범 아지트를 찾아냈다는 보고를 받은 백산은 다시 다급히 지시한다. “어떻게 해서든 승희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서 막아.” 역시 백산은 접근을 막으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 불가피하다면 제거해도 된다는 지시까진 내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최승희의 안전을 걱정하는 당혹함이 엿보이는 지시였다.
풀리지 않는 가장 큰 의문, 백산과 승희의 관계는?
대체 무엇이 백산으로 하여금 최승희에 대한 감출 수 없는 연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아끼는 부하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최승희가 너무 위험하다. 최승희는 이미 아이리스와 가까운 거리에 접근했다. 최승희의 이런 예기치 못한 활약으로 인해 백산 자신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백산 정도라면 그런 가능성을 충분히 알 수 있지 않은가.
풀리지 않는 의문, 세 번째까지의 의문들은 실상 별다르다 할 것이 없다―솔직히 말하면, 이 글에서도 그저 구색용이다―. 어차피 줄거리의 전개와 더불어 서서히 풀려지기로 되어있는 것들일 뿐이니까. 다만, 백산과 최승희의 관계는? 이게 내 최대 관심사다. 만약 내가 상상하는 것과 다르게 아무 관계도 아니라면 NSS 국장이며 동시에 아이리스 한국 지부장인 백산은 참 부질없는 아이리스다.
그렇지 않다면 백산은 최승희부터 빨리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려야 되는 게 아닐까? ... 아닌가?
ps; 아무튼 빅의 정체는 백산도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리스의 비밀 조직망이 국내에 있다는 반증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긴 그 정도는 돼야 세계 지배의 야심을 가질 만 하겠지, 그게 군산복합체의 비밀기관이든 뭐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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