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선덕여왕』 최고 히어로는 누가 뭐래도 미실입니다. 그 미실이 죽자 온 세상이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왕이었소!" 칭송이 자자합니다. 그녀에게 바치는 헌사는 넘치고 넘칩니다. 이 정도면 미실을 비판하는 게 오히려 악당으로로 몰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미실이 이토록 대단한 영웅이 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 참고로 나는 <미실이 대인배면 전두환도 대인배다> 란 포스팅도 한 바가 있다는 점을 밝힌다. 내 입장은 늘 그렇다.
미실에게 넘치는 칭송들, 이유가 뭘까?
나도 애초에 미실이 결국 덕만을 왕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대업을 이루지 않겠느냐, 그리 생각했습니다. 삼한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기초는 무엇보다 국내 제 세력들을 통일 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라벌도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삼한을 통일 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러나 극 초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실의 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그녀가 전형적인 독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히틀러나 박정희 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독재자의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 모든 독재자들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될 듯했습니다. 물론 매력적인 독재자였지만 말입니다.
미실은 30여 년 신라를 지배했습니다. 왕이 있었지만, 왕은 허수아비였습니다. 신국의 신료들도, 화랑들도 왕보다는 미실의 말을 따랐습니다. 마치 일본의 막부정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왕은 그저 상징적 존재일 뿐, 통치는 막부의 쇼군이 하는 것처럼요. 미실은 충성을 맹세하는 측근들에겐 한없이 자애롭지만, 백성들에겐 공포정치를 폈습니다.
미실의 지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백성들은 무지하고 변덕스러우므로 공포를 통해 통치에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실은 군사력과 더불어 백성들을 지배할 수단으로 신권까지 장악했던 것이죠. 여기에 덕만공주가 반기를 들었지요. "미실이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었다면, 나는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겠다."
30년 동안 미실이 독재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미실의 측근들은 미실의 권력을 믿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다 저질렀습니다. 탈세와 매점매석은 기본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땅을 뺏고 소작으로 전락한 양민들을 고리대를 이용해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나라 재정은 파탄 일로에 처했습니다. 귀족들은 세금을 안 내고, 세금을 내야할 농민들은 땅을 잃고 귀족들의 노예로 팔려가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30년 미실 독재의 결과가 이랬습니다. 결국 진흥왕이 이룩한 영광은 빛이 바래고 발전은 정체했습니다. 40여 회가 지날 때까지도 미실은 악녀였습니다. 그녀는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으며,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또한 무력으로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다가오면서 미실은 갑자기 판타지로 다시 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고 충분히 이해도 합니다. 미실의 인기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드라마의 인기도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미실은 쿠데타를 일으켜 반란수괴의 길을 걸었지만,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왕이다!'란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만들어낸 픽션이지만,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독재자가 영웅으로 미화된 것입니다. 무력으로 백성들을 핍박하던 미실이 진정한 여왕으로 탄생했습니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신료를 다중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고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모두 이처럼 되리라"고 협박하던 미실이 애국자로 변신했습니다. 실로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상력입니다.
30여 년 공포정치는 사라지고,
짧은 미실의 최후만 남았다
미실이 막판에 속함성에서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돕기 위해 달려온 여길찬을 국경 수비에 충실 하라며 돌려보낸 사건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이는 어쩌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피살된 이후 권력공백기를 이용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일파를 향한 독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9사단장이었던 노태우는 전방을 지켜야할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정권을 장악하고 마침내 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니 미실은 비록 똑같은 반란 세력이라도 이들에 비하면 애국자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30여 년간 자행된 미실의 공포정치가 없어지는 걸까요?
막판에 그토록 처연하고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을 남겼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고 노예로 만든 독재자의 삶이 하루아침에 고귀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나의 머리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런 스토리 전개 때문에 그토록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드라마의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이었던가요? 그 해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야망의 세월』이었습니다. 아마 요즘 『선덕여왕』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당시엔 텔레비전 말고는 별다른 오락 도구가 없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도 없었으니 인터넷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 『야망의 세월』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일개 건설사 사장을 영웅으로 미화한 드라마
그러나 사실입니다. 드라마『야망의 세월』은 이름 없던 일개 건설회사 사장을 졸지에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영웅으로 미화했으며, 결국 대통령 자리에까지 앉혔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오늘날 이명박 정권에서 완장을 찬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었습니다. 유인촌이 현 정권 최고 실세처럼 행세하고 다니는 것도 다 나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명박을 뽑은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최대의 실수였다.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뽑았다. 어떤 사람을 뽑더라도 이보다 더 나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명박을 뽑은 게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가 뽑았답니다."
한편의 드라마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 만든 한편의 드라마가 어떤 참담한 결과를 몰고 올수 있는지 나는 이명박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1989년 『야망의 세월』이 방영되기 전에 이명박을 알았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장담하건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현대건설 사장이 누군지 혹 아는 분이 계시나요?
아니면 삼성전자 사장이 누군지 아시는 분은요? 아무튼 『야망의 세월』덕분에 이명박은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이 서울시장 재직 중이던 2004년이었던가요? 이번엔『영웅시대』란 드라마가 이명박 영웅 만들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드라마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웅시대』의 실제 주인공은 이명박이 아니라 정주영과 이병철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동근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극의 중심은 이명박으로 쏠렸습니다. 유동근이 바로 이명박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남자 연기자는 누가 뭐래도 유동근이었죠. 이를 두고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아니냐는 음모론도 솔솔 나왔었지요.
아무튼 드라마란 삶의 재미를 주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한편 이처럼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이는 어디까지나 국민 일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일부 소수의 의도는 분명 있을 터이지만―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실의 영웅 만들기가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미실을 그렇게 애국자로 미화해야만 미실의 최후가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었을까? 미실이 반란군의 지도자로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막판에 국경수비대의 지원을 마다하고 패배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30년 독재가 사라지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네티즌들이, 미실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이었다며 열광하지만, 나는 아직도 불편합니다.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러고서도 우리가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여전히 소화불량처럼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선덕여왕』은 재미있습니다. 『대장금』이래 이토록 화제를 만발한 드라마가 있었습니까?
그렇지만 결론은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미실의 진정한 모습은? 공포정치 이면에 두툼한 전별금으로 부하들을 위로했다는 전두환이야말로 미실의 모습 아닐까?
미실에게 넘치는 칭송들, 이유가 뭘까?
나도 애초에 미실이 결국 덕만을 왕으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 그래야 '덕업일신 망라사방'의 대업을 이루지 않겠느냐, 그리 생각했습니다. 삼한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기초는 무엇보다 국내 제 세력들을 통일 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라벌도 통일시키지 못하면서 삼한을 통일 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러나 극 초반 베일에 가려져 있던 미실의 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그녀가 전형적인 독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히틀러나 박정희 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독재자의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 모든 독재자들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될 듯했습니다. 물론 매력적인 독재자였지만 말입니다.
미실은 30여 년 신라를 지배했습니다. 왕이 있었지만, 왕은 허수아비였습니다. 신국의 신료들도, 화랑들도 왕보다는 미실의 말을 따랐습니다. 마치 일본의 막부정치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왕은 그저 상징적 존재일 뿐, 통치는 막부의 쇼군이 하는 것처럼요. 미실은 충성을 맹세하는 측근들에겐 한없이 자애롭지만, 백성들에겐 공포정치를 폈습니다.
미실의 지론이 무엇이었습니까? 백성들은 무지하고 변덕스러우므로 공포를 통해 통치에 길들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실은 군사력과 더불어 백성들을 지배할 수단으로 신권까지 장악했던 것이죠. 여기에 덕만공주가 반기를 들었지요. "미실이 사람을 죽여 사람을 얻었다면, 나는 사람을 살려 사람을 얻겠다."
30년 동안 미실이 독재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미실의 측근들은 미실의 권력을 믿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다 저질렀습니다. 탈세와 매점매석은 기본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땅을 뺏고 소작으로 전락한 양민들을 고리대를 이용해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나라 재정은 파탄 일로에 처했습니다. 귀족들은 세금을 안 내고, 세금을 내야할 농민들은 땅을 잃고 귀족들의 노예로 팔려가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미실이 장기 독재하는 동안 최고 수혜자는 역시 남편과 아들. 이들은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30년 미실 독재의 결과가 이랬습니다. 결국 진흥왕이 이룩한 영광은 빛이 바래고 발전은 정체했습니다. 40여 회가 지날 때까지도 미실은 악녀였습니다. 그녀는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으며,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을 또한 무력으로 억압했습니다. 그러나 결말이 다가오면서 미실은 갑자기 판타지로 다시 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고 충분히 이해도 합니다. 미실의 인기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드라마의 인기도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공했습니다. 미실은 쿠데타를 일으켜 반란수괴의 길을 걸었지만, "그녀야말로 진정한 여왕이다!'란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만들어낸 픽션이지만,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독재자가 영웅으로 미화된 것입니다. 무력으로 백성들을 핍박하던 미실이 진정한 여왕으로 탄생했습니다. 자기에게 반대하는 신료를 다중이 보는 앞에서 목을 베고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모두 이처럼 되리라"고 협박하던 미실이 애국자로 변신했습니다. 실로 드라마가 아니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상상력입니다.
반란으로 장기집권하며 독재를 했지만 역시 미실처럼 미화된 표본들
30여 년 공포정치는 사라지고,
짧은 미실의 최후만 남았다
미실이 막판에 속함성에서 군사를 이끌고 자기를 돕기 위해 달려온 여길찬을 국경 수비에 충실 하라며 돌려보낸 사건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이는 어쩌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피살된 이후 권력공백기를 이용해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두환 일파를 향한 독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9사단장이었던 노태우는 전방을 지켜야할 병력을 이끌고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정권을 장악하고 마침내 80년 5·17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니 미실은 비록 똑같은 반란 세력이라도 이들에 비하면 애국자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30여 년간 자행된 미실의 공포정치가 없어지는 걸까요?
막판에 그토록 처연하고 아름답게 미화된 죽음을 남겼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억압하고 노예로 만든 독재자의 삶이 하루아침에 고귀한 것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나의 머리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불편하기 그지없는 이런 스토리 전개 때문에 그토록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드라마의 사회적 부작용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9년이었던가요? 그 해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는 『야망의 세월』이었습니다. 아마 요즘 『선덕여왕』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합니다. 당시엔 텔레비전 말고는 별다른 오락 도구가 없었습니다. 퍼스널 컴퓨터도 없었으니 인터넷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이 『야망의 세월』이란 제목의 드라마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일개 건설사 사장을 영웅으로 미화한 드라마
그러나 사실입니다. 드라마『야망의 세월』은 이름 없던 일개 건설회사 사장을 졸지에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영웅으로 미화했으며, 결국 대통령 자리에까지 앉혔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오늘날 이명박 정권에서 완장을 찬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었습니다. 유인촌이 현 정권 최고 실세처럼 행세하고 다니는 것도 다 나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분들 중에 많은 이들이 "이명박을 뽑은 것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겐 최대의 실수였다.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을 뽑았다. 어떤 사람을 뽑더라도 이보다 더 나쁜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줍니다.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명박을 뽑은 게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가 뽑았답니다."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는 누가 뭐래도 이명박, 그 다음은 완장 찬 유인촌이다. 이들에게 드라마는 대박의 조건인 셈이다.
한편의 드라마가, 단순히 재미를 위해 만든 한편의 드라마가 어떤 참담한 결과를 몰고 올수 있는지 나는 이명박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1989년 『야망의 세월』이 방영되기 전에 이명박을 알았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장담하건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현대건설 사장이 누군지 혹 아는 분이 계시나요?
아니면 삼성전자 사장이 누군지 아시는 분은요? 아무튼 『야망의 세월』덕분에 이명박은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국회의원도 되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이 서울시장 재직 중이던 2004년이었던가요? 이번엔『영웅시대』란 드라마가 이명박 영웅 만들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드라마에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웅시대』의 실제 주인공은 이명박이 아니라 정주영과 이병철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동근이 등장하면서 갑자기 극의 중심은 이명박으로 쏠렸습니다. 유동근이 바로 이명박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남자 연기자는 누가 뭐래도 유동근이었죠. 이를 두고 유력한 대권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아니냐는 음모론도 솔솔 나왔었지요.
아무튼 드라마란 삶의 재미를 주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한편 이처럼 뜻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이는 어디까지나 국민 일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일부 소수의 의도는 분명 있을 터이지만―사회적 부작용도 만만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미실의 영웅 만들기가 과연 옳은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미실을 그렇게 애국자로 미화해야만 미실의 최후가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이었을까? 미실이 반란군의 지도자로서 최후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막판에 국경수비대의 지원을 마다하고 패배의 길을 걸었다고 해서 30년 독재가 사라지고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네티즌들이, 미실이야말로 진정한 여왕이었다며 열광하지만, 나는 아직도 불편합니다.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이러고서도 우리가 정의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여전히 소화불량처럼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선덕여왕』은 재미있습니다. 『대장금』이래 이토록 화제를 만발한 드라마가 있었습니까?
그렇지만 결론은 답답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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