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한 세상입니다. 친일파를 보고 친일파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보수파 회원들이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의 이름을 게재한 민족문제연구소를 향해 "왜 박정희가 친일파냐? 너희들은 빨갱이냐?" 라고 고함을 치며 거칠게 항의했다고 합니다. 주로 노인네들로 구성된 이분들은 국가쇄신국민연합 소속이라고 밝혔다고 하는데 참 별난 단체도 다 있습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
그러고 보니 일전에 김대중 대통령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겠다며 난동을 부리고 국립묘지에서 나오던 참배객을 구타해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일단의 노인들 생각이 납니다. 그분들도 무슨 보수단체 소속이라고 했었지요.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매일 그런 류의 집회에 참석하고 동원되는 대가로 점심을 얻어먹는다고 하더군요. 이 국가쇄신국민연합이란 단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보수파나 우익단체들이 친일파의 대변인 내지는 앞잡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수우익의 선봉대를 자임하는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는 아예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함으로써 근대화가 앞당겨졌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는 판이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수우익들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겠지요. 그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에 남들보다 오래 앉아 있었다고 해서 일본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만주에서 연합군과 교전을 치른 친일 전력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이완용이 한일합방에 부역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이완용이 비록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겼지만 친일파는 아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누가 그를 일러 미쳤다고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또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을 잡아 고문하고 죽인 친일경찰에게 "그는 그저 직업에 충실했을 뿐 친일파라고 할 수 없다!"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어느 누가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하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군이었지만, 친일은 아니다?
바로 박정희의 유족들입니다. 박정희의 유족이란 다름 아닌 박근혜, 박지만 등 박정희의 자녀들을 말함입니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법원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할 예정인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법원에 '박정희의 이름을 게재하지 말 것을 청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합니다. 주장의 요지인즉슨, "비록 일본육사를 나온 일본군 장교였지만 만주군에 근무했으므로 친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실로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논거로 제시하는 박정희 유족들의 변호인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만주군이 곧 일본군이란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만약 만주군이 일본군이 아니라면 일본육사 출신의 장교가 왜 만주군에 근무한단 말입니까? 이런 주장이 서슴없이 횡행하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말이면 다냐?"가 그들에겐 "다다!"로 통하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일분군이었지만, 친일이 아니다"란 주장이나, "미디어법이 위법하게 통과됐지만, 유효하다"란 판결에는 일맥상통하는 보수우익의 정신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가 있군요. 삼성 X파일을 폭로한 혐의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도둑놈을 신고했다는 죄로 재판받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만약 2심에서도 1심의 형량이 유지된다면 노회찬은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습니다. 진보신당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생명보다는 정의가 실종됐다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도둑놈을 신고하면 안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도둑이 확실한데도 도둑을 도둑이라고 하면 명예훼손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보고 도둑이라고 하면 범죄자가 되는 세상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둑들은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도둑들이겠지요. 박정희가 일본육사를 나왔다는 것도, 일본군 장교였다는 것도 모두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친일파란 것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본육사를 나왔다고 해서, 일본군 장교였다고 해서 친일파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만주군은 일본군이 아니라는 거짓 증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모두들 주지하듯이 박정희는 일제시대에 교사였습니다. 당시에 교사는 꽤 괜찮은 직업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교사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얼마나 있었겠는가를. 그런 직업을 내팽개치고 만주군관학교로 가게 된 배경에는 출세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 군관학교 입학이 어려웠던 그는 진충보국을 혈서로 써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이는 조갑제의 말이라고 하니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만약 조갑제가 거짓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면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그가 일제도 동경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보면 10·26 당시 궁정동에서 통닭(당시 중정이나 경호실 은어)이 된 심수봉에게 엔가를 시켜 들으며 감상에 젖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들이 그저 영화 속의 픽션만은 아니라는 것을 대개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박근혜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박정희가 경제를 부흥시켜 국민들이 배곯지 않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사실 18년 동안이나 권좌를 지키면서 치적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중국인(그중 대부분은 중국교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다 보면 놀라운 소리를 듣게 됩니다. 개방개혁 기치를 내건지가 오래된 중국 사람들은 아직도 모택동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부흥 치적? 18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그것도 못했다면 식물인간이지
"모택동 주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오늘날 이 자리에 없어요. 전부 다 굶어 죽었지." 만약 북한 동포들을 똑같은 자리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면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김일성 주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모조리 미제의 노예가 되어있었겠지비. 수령님의 은덕이 있었기에 공화국이 오늘날 이토록 부강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된 기야요." 그들이 하는 말은 실제 진심에서 우러나온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떨 땐 조갑제 같은 박정희 추종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신인 것처럼 그들에게도 박정희는 신이겠지요. 그리고 대개 이분들은 박정희를 비판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떤 대통령이 박정희처럼 그렇게 청렴결백하고 근면하고 검소하게 사신 분 있었는가." 오죽 나라가 부패했으면 이런 말이 나오나 싶기도 하지만, 막상 박정희가 청렴결백한 대통령이었다고 하니 실소할 힘도 없어집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자에게 청렴결백이란 말을 갖다 붙이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 치고, 정말 박정희가 청렴결백했을까요? 그럼 박근혜와 박지만이 지금 배 쫄쫄 곯아가며 고생하고 있습니까? 우선 박근혜의 재산내역이나 살펴보고 그런 말을 하더라도 해야지요. 박근혜는 재벌입니다. 만약 박정희가 그토록 청렴결백했다면 박근혜가 가진 재산들은 도대체 무얼로 해명할 거죠? 게다가 그녀의 드러난 재산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합니다. 박정희 시대는 암흑시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보십시오.
아무튼 좋습니다. 경제개발에 엄청나게 공이 많았다고 인정해줍시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청렴결백했다고 인정해줍시다. 그래도 박정희는 역시 일본군 장교이며 친일파입니다. 그의 형 때문이었다고 변명하지만 한때 좌익운동에 연루되어 처형당할 위기까지 갔다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글쎄, 그것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인정해줍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사란 좋은 직업을 내팽개치고 만주 목단강까지 달려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했다는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한다면, 전국은 친일파의 기념관으로 넘쳐날 것
그리고 일본육사에 편입해 졸업 후 일본군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친일파라고 해야 합니까?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것도 아니고 자의로 입대했으며, 그것도 나이 제한에 걸려 어렵게 되자 일본과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진충보국'이란 글자를 혈서로 써 바쳤다니 이를 두고 친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친일파란 말입니까?
내가 살고 있는 마산에서는 친일파로 지목받고 있는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 건립 문제로 한동안 홍역을 앓았습니다. 유명한 시인이며 작곡가라는 이유로 황철곤 마산시장은 이들의 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했습니다. 희망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저지로 잠잠해졌지만, 이들 친일파들의 기념관을 짓고자하는 시도는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래, 봐라. 일본육사를 나와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가 되어 조선을 해방시키려는 연합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박정희도 친일파가 아니란다. 그런데 약소한 친일을 한 데 불과한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도 못 짓게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맞습니다. 박정희처럼 직접 황군의 장교가 된 자도 친일이 아니라는데 그저 글줄이나 긁적여 일제에 아부한 이은상이나 조두남 나부랭이가 친일이라니요.
전국이 친일파를 찬양하는 기념관으로 넘치고 친일파가 아니면 존경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거지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격살한 날은 10월 26일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를 비명에 가게 한 총탄이 발사된 날도 바로 10월 26일입니다. 물론 우연입니다. 그러나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묘한 우연이지요. 안중근 의사의 의거 1백주년이 되는 이때 들려오는 이 불미스러운 소식들도 어쩌면 우리를 일깨우기 위한 하늘의 소리가 아닐런지요.
만주군 박정희 @오마이뉴스-박정희 인터넷기념관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뉴라이트
그러고 보니 일전에 김대중 대통령 묘를 국립묘지에서 파내겠다며 난동을 부리고 국립묘지에서 나오던 참배객을 구타해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일단의 노인들 생각이 납니다. 그분들도 무슨 보수단체 소속이라고 했었지요.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매일 그런 류의 집회에 참석하고 동원되는 대가로 점심을 얻어먹는다고 하더군요. 이 국가쇄신국민연합이란 단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보수파나 우익단체들이 친일파의 대변인 내지는 앞잡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수우익의 선봉대를 자임하는 자유주의연대 등 뉴라이트는 아예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함으로써 근대화가 앞당겨졌다"는 해괴한 주장을 하는 판이니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수우익들도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하겠지요. 그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박정희가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리에 남들보다 오래 앉아 있었다고 해서 일본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만주에서 연합군과 교전을 치른 친일 전력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이완용이 한일합방에 부역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이완용이 비록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겼지만 친일파는 아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누가 그를 일러 미쳤다고 비난하지 않겠습니까? 또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군을 잡아 고문하고 죽인 친일경찰에게 "그는 그저 직업에 충실했을 뿐 친일파라고 할 수 없다!" 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어느 누가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게 못하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군이었지만, 친일은 아니다?
바로 박정희의 유족들입니다. 박정희의 유족이란 다름 아닌 박근혜, 박지만 등 박정희의 자녀들을 말함입니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법원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할 예정인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법원에 '박정희의 이름을 게재하지 말 것을 청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합니다. 주장의 요지인즉슨, "비록 일본육사를 나온 일본군 장교였지만 만주군에 근무했으므로 친일을 했다고 볼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실로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논거로 제시하는 박정희 유족들의 변호인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만주군이 곧 일본군이란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만약 만주군이 일본군이 아니라면 일본육사 출신의 장교가 왜 만주군에 근무한단 말입니까? 이런 주장이 서슴없이 횡행하는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말이면 다냐?"가 그들에겐 "다다!"로 통하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헌재의 미디어법 판결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박정희 추모제에 참여한 박지만, 박근혜 @오마이뉴스
"일분군이었지만, 친일이 아니다"란 주장이나, "미디어법이 위법하게 통과됐지만, 유효하다"란 판결에는 일맥상통하는 보수우익의 정신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예가 있군요. 삼성 X파일을 폭로한 혐의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도둑놈을 신고했다는 죄로 재판받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만약 2심에서도 1심의 형량이 유지된다면 노회찬은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습니다. 진보신당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생명보다는 정의가 실종됐다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제 도둑놈을 신고하면 안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도둑이 확실한데도 도둑을 도둑이라고 하면 명예훼손이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보고 도둑이라고 하면 범죄자가 되는 세상
물론 여기서 말하는 도둑들은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도둑들이겠지요. 박정희가 일본육사를 나왔다는 것도, 일본군 장교였다는 것도 모두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친일파란 것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일본육사를 나왔다고 해서, 일본군 장교였다고 해서 친일파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만주군은 일본군이 아니라는 거짓 증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모두들 주지하듯이 박정희는 일제시대에 교사였습니다. 당시에 교사는 꽤 괜찮은 직업이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때 교사보다 더 좋은 직업이 얼마나 있었겠는가를. 그런 직업을 내팽개치고 만주군관학교로 가게 된 배경에는 출세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 군관학교 입학이 어려웠던 그는 진충보국을 혈서로 써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이는 조갑제의 말이라고 하니 가히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만약 조갑제가 거짓으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면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그가 일제도 동경한다는 말이 되겠지요.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보면 10·26 당시 궁정동에서 통닭(당시 중정이나 경호실 은어)이 된 심수봉에게 엔가를 시켜 들으며 감상에 젖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들이 그저 영화 속의 픽션만은 아니라는 것을 대개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쩌면 박근혜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박정희가 경제를 부흥시켜 국민들이 배곯지 않게 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사실 18년 동안이나 권좌를 지키면서 치적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야말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우리나라에 일하러 온 중국인(그중 대부분은 중국교포)들과 술자리를 같이 하다 보면 놀라운 소리를 듣게 됩니다. 개방개혁 기치를 내건지가 오래된 중국 사람들은 아직도 모택동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부흥 치적? 18년 동안 장기집권하며 그것도 못했다면 식물인간이지
"모택동 주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오늘날 이 자리에 없어요. 전부 다 굶어 죽었지." 만약 북한 동포들을 똑같은 자리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면 이런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김일성 주석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모조리 미제의 노예가 되어있었겠지비. 수령님의 은덕이 있었기에 공화국이 오늘날 이토록 부강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된 기야요." 그들이 하는 말은 실제 진심에서 우러나온 듯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떨 땐 조갑제 같은 박정희 추종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 동포들에게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신인 것처럼 그들에게도 박정희는 신이겠지요. 그리고 대개 이분들은 박정희를 비판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어떤 대통령이 박정희처럼 그렇게 청렴결백하고 근면하고 검소하게 사신 분 있었는가." 오죽 나라가 부패했으면 이런 말이 나오나 싶기도 하지만, 막상 박정희가 청렴결백한 대통령이었다고 하니 실소할 힘도 없어집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 자에게 청렴결백이란 말을 갖다 붙이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다 치고, 정말 박정희가 청렴결백했을까요? 그럼 박근혜와 박지만이 지금 배 쫄쫄 곯아가며 고생하고 있습니까? 우선 박근혜의 재산내역이나 살펴보고 그런 말을 하더라도 해야지요. 박근혜는 재벌입니다. 만약 박정희가 그토록 청렴결백했다면 박근혜가 가진 재산들은 도대체 무얼로 해명할 거죠? 게다가 그녀의 드러난 재산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합니다. 박정희 시대는 암흑시대였다는 점을 상기해보십시오.
아무튼 좋습니다. 경제개발에 엄청나게 공이 많았다고 인정해줍시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청렴결백했다고 인정해줍시다. 그래도 박정희는 역시 일본군 장교이며 친일파입니다. 그의 형 때문이었다고 변명하지만 한때 좌익운동에 연루되어 처형당할 위기까지 갔다가 동지들을 배신하고 밀고한 대가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글쎄, 그것도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인정해줍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사란 좋은 직업을 내팽개치고 만주 목단강까지 달려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했다는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한다면, 전국은 친일파의 기념관으로 넘쳐날 것
그리고 일본육사에 편입해 졸업 후 일본군대에서 복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친일파라고 해야 합니까?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것도 아니고 자의로 입대했으며, 그것도 나이 제한에 걸려 어렵게 되자 일본과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진충보국'이란 글자를 혈서로 써 바쳤다니 이를 두고 친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도대체 누가 친일파란 말입니까?
내가 살고 있는 마산에서는 친일파로 지목받고 있는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 건립 문제로 한동안 홍역을 앓았습니다. 유명한 시인이며 작곡가라는 이유로 황철곤 마산시장은 이들의 기념관을 건립하려고 했습니다. 희망연대 등 시민단체들의 저지로 잠잠해졌지만, 이들 친일파들의 기념관을 짓고자하는 시도는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습니다. 만약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래, 봐라. 일본육사를 나와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가 되어 조선을 해방시키려는 연합군에게 총부리를 겨눈 박정희도 친일파가 아니란다. 그런데 약소한 친일을 한 데 불과한 이은상과 조두남의 기념관도 못 짓게 하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맞습니다. 박정희처럼 직접 황군의 장교가 된 자도 친일이 아니라는데 그저 글줄이나 긁적여 일제에 아부한 이은상이나 조두남 나부랭이가 친일이라니요.
전국이 친일파를 찬양하는 기념관으로 넘치고 친일파가 아니면 존경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거지요.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격살한 날은 10월 26일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를 비명에 가게 한 총탄이 발사된 날도 바로 10월 26일입니다. 물론 우연입니다. 그러나 우연치고는 너무나 기묘한 우연이지요. 안중근 의사의 의거 1백주년이 되는 이때 들려오는 이 불미스러운 소식들도 어쩌면 우리를 일깨우기 위한 하늘의 소리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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