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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뻥'이 들통나 사퇴한다던 시본부장님, 그것도 뻥이셨어요?

요즘 말이 참 무게를 많이 잃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남아 일언 중천금"이란 말은 곧 법이었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이 말은 유행이어서 서로 어떤 약속을 할 때는 반드시 이 말로서 확인을 하곤 했다. 요사이 같으면 아이들이 손도장을 찍고 손바닥을 비벼 확인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을 게다.

중학교 때 교장선생님은 교단에 서시면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그 사람다움의 기준은 말이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곧 말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이란 신중해야 하며 신뢰가 있어야 한다. 말이 신뢰를 잃게 되면 인간관계가 흔들리게 되고 사회가 불안해진다. 

수정만 주민들에게 발언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밝히는 정 비전사업본부장. @경남도민일보


늘 하던 버릇대로 오늘 아침도 마당에서 경남도민일보를 집어다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신문을 넘기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름을 발견했다. 마산시 비전사업본부장인 정규섭 씨였다. 그는 얼마 전 수정만 STX 조선소 유치 문제로 실언을 하여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었다. (경남도민일보 기사 참조)

그는 마산시 의회에서 마산시가 밝힌 STX 유치 경제효과가 상당부분 '뻥'이란 주장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수정만 매립지에 STX 조선소가 입주하는 데 반대하는 주민은 20여 명밖에 안 된다. 20명을 넘을 경우 본부장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반대 주민 80여 명이 몰려가 항의하자 거듭 "책임지겠다"고 밝혔었다.

말하자면 그는, 마산시가 밝힌 STX 유치 경제효과가'뻥'이라는 사실에 변명하려고 다시 '뻥'을 친 셈이다.  그리고 그 '뻥'이 '뻥'으로 들통 나자 약속대로 본부장직을 사퇴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의회에서 한 발언은 속기록에 남아있을 터이고, 주민들 앞에서 한 발언도 기자들과 주민, 공무원들이 모두 들었으니 빼도 박도 못할 일이다

나는 그가 사퇴하겠다고 거듭 의사를 밝혔을 때, "에이 우리나라 (고위)공무원들이란 게 뭐 늘 그렇게 거짓말하고 뒤통수치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 그만한 일로 뭘 사퇴해. 언제부터 그렇게 깨끗한 나라였다고" 라고 생각하며 웃었었다. 그의 사퇴의사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오늘 아침 신문에 이름이 났다. 그는 여전히 비전사업본부장의 직함을 달고 있었다. "아니 사퇴한다고 한지가 벌써 한 달도 훨씬 지났는데, 이분 아직도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있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자기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말에 대해 책임을 지며 살았다고."

대통령도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나라에서 일개 마산시 비전사업본부장의 '뻥'이 뭐 그리 대수라고. 하여튼 이분, 마산시 비전사업본부장이라는 이분은 불과 한 달 사이에 수정만 STX 유치와 관련하여 '뻥'을 세 번이나 친 셈이 되었다. 이러다 드림베이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마산시의 모든 비전들이 '뻥'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정 본부장이 오늘 신문에 난 이유였다. 가포대로 주민공청회 자리에서 주민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등을 밀치자 바로 인도에 누워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병원에 입원해 진단서를 발부받아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사실의 진위는 신문만 보고서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달 새 무려 세 번이나 '뻥'을 쳤던 그가 이번엔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인도에 드러눕는 쇼를 벌이고 진단서를 끊어 경찰서에 고소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 본부장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건화맨션 주민들이 가포대로 공사로 인해 받게 될 피해에 대하여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누구라도 자기 집 담벼락과 30cm 자 두 개 정도의 거리를 두고 도로가 지나간다고 하면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재산권 침해의 문제만이 아니다. 아파트 주민들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내 집 옆으로 차들이 씽씽 거리며 달리는 상황이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뜨거운 여름날 태양 아래 수정만 주민이 STX 유치반대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그럼에도 나는 다른 마산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당장 내가 받는 피해가 아닌지라 남의 동네 불구경 하는 심정이란 걸 감추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거 하나만은 묻고 싶다. 벌써 비전사업본부장 직을 사퇴했어야 할 정규섭 씨가 왜 가포 건화맨션 주민공청회에 가서 길바닥에 드러눕는 해프닝을 연출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는가. 모르긴 몰라도 가포 건화맨션 주민들도 정 본부장이 별로 신뢰가 없는 인물이란 것은 이미 들어서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비록 비전사업본부장의 직함을 차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책임 있는 당국자로 바라보지 않을 게 틀림없다.
 
물론 부시장이 참석하겠다고 했으면 약속을 지켜야하는 게 도리인 것은 맞지만,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 본부장이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었다면 이런 사태까지 빚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 본부장이 지금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한 사람의 직업인이요 공무원으로서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다.

사람의 고용문제를 그렇게 가벼이 처리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제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마산시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 공사자(사업자)의 입장에만 서서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사람의 입장에서, 그곳에 사는 주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STX 유치든, 도로공사든, 모든 비전사업들은 결국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사업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이 과연 마산시의 비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병원에 누워 계시다고 하니 빨리 쾌유하시길 빌며, 이참에 깊은 성찰도 함께 해보시기를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