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 브린너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나 어릴 때 가족을 따라 하얼빈으로 갔다가 다시 파리로 이주했습니다. 세계를 떠돌던 그는 마지막으로 미국에 정착하여 영화배우로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복잡한 혈통으로 인해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던 그는 '영원한 몽골청년'으로 불리길 좋아했다고 합니다. 영화 십계의 한 장면. 아래 율 브린너 이미지는 모두 "다음영화"에서 인용
미국으로 건너간 율 브린너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왕과 나>에 태국 왕 역할로 출연했는데 이때부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뮤지컬 <왕과 나>는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여기서도 주연으로 데보라 카와 열연했었지요. 저도 이 영화를 좋아해서 몇 번이나 보았지만, 율 브린너와 데보라 카가 춤추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 인상적이었던 것은 역시 여러분도 마찬가지시겠지만, 번쩍이는 대머리였습니다. 대머리는 바로 율 브린너의 매력 포인트였던 것입니다. 물론 강렬한 인상과 뛰어난 연기력이야말로 그를 불세출의 배우로 만든 자산이었음이 틀림없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게는 '율 브린너의 대머리'가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왕과 나'에서 태국 왕으로 출연한 율 브린너. 이 영화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타 아카데미 최고배우상을 수상.
율 브린너는 <왕과 나> 외에도 <십계>에 람세스 2세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 <황야의 7인>, <대장 브리바> 등에서 열연했습니다. 하나같이 명작들이죠. 이 모든 영화들에서 율 브린너의 대머리가 빛났음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왜 갑자기 뜬금없이 율 브린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황야의 7인'의 율브린너. 그 옆이 스티브 맥퀸, 찰슨 브론슨과 제임스 코번은 어디 있을까요?
<선덕여왕>을 보던 중에 문득 율 브린너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종반전을 향해 달리고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아직도 20회 이상이 남았지만―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께서 몹시 편찮으십니다. 진심통(심장병)이라니 곧 돌아가실 모양입니다. 수척한 모습이 몹시 안쓰럽긴 하지만 바야흐로 여왕의 탄생을 알리는 소식이기도 한지라 반갑기도 합니다.
엥? 이래도 되나? 하여튼…
심장병으로 병환이 위중한 진평왕
그런데 곧 이승을 떠나야 할 노인네의 머리가 너무 곱고 탐스럽습니다. 진평왕이 54년을 재위했으니 최소한 70은 되었을 터인데 어쩜 저리도 머리가 검고 숱이 많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왕들은―물론 TV나 영화에서 본 것일 뿐이지만―대머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선덕여왕의 증조부이시며 진평왕의 조부이신 진흥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도 포스팅했지만, 진흥왕은 일곱 살에 등극하여 37년을 재위하다 마흔셋에 죽었으니 젊은 나이에 죽은 셈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북두의 일곱별이 여덟이 되는 날 개양자가 오리라는 예언을 말하는 진흥왕이 너무 젊어서는 신비감이 없으리란 점을 고려했던지, 70이 훨씬 넘어 보이는 늙은 왕으로 나왔습니다.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린 진흥왕
그런데 역시 머리카락이 쌩쌩하게 많습니다. 희끗희끗하기는 해도 마치 한 올도 안 빠진 것처럼 빽빽합니다. 그러고 보니 <태조왕건>에 나왔던 최수종도 그랬고, 세조대왕으로 나왔던 서인석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들도 죽기 전에 비록 하얘지긴 했어도 머리카락 한 올 빠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왕들은 어째서 대머리가 하나도 없는 것일까요? 좀 엉뚱한 생각이긴 하지만, 율 브린너처럼 멋진 대머리 왕도 한 명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골룸처럼 보기 흉한 대머리면 또 어떻습니까? 사람이 늙으면 머리털이 쇠거나 빠지는 게 당연한 이치입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인 것처럼 대머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아 참, 그렇군요. 이덕화도 대머리라고 했지요. 그런데 무수한 사극에 출연했던 그도 늙어 죽는 장면에서 대머리를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언제 한 번 보여줄 수는 없을까요? 물론 현대극 말고 사극 할 때 말입니다. 현대극에선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그러나 사극은 그나마 좀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실은 저도 언젠가는 대머리가 될 가능성이 아주 짙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나 고려시대처럼 남자들은 모두 머리에 모자를 똑같이 쓰고 다니는 그런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소심한 중생 중의 한 명이긴 합니다. 아무튼 <선덕여왕>을 보다가 문득 율 브린너가 생각난 까닭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번쩍거리는 대머리를 오히려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어 세계적인 스타가 된 율 브린너가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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