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을 보면서 가장 한심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진평왕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국의 황제가 가장 한심해 보이는 것이다. 진지왕도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개 궁주인 미실에게 끌려 다니다 결국 왕좌를 잃고 죽음을 당했다. 덕분에 그의 아들들, 용수와 용춘은 성골의 자리에서 밀려나 진골로 족강되었다.
그러면 이 두 명의 황제가 이토록 한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이 황실을 보호하려는 대의에 따른 것이든 권좌를 지키려는 사욕이든 그 출발은 욕심이다.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두려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이 두 황제가 욕심을 버리고 과감한 결단의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군권을 쥐고 있는 미실을 대적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 효과는 거둘 수 있었다. 미실에게 역적이란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지왕이라면 특히 그랬어야 했다. 어차피 그는 죽은 목숨이 아니던가.
진평왕의 경우는 더 기가 막히다. 그래도 진지왕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노력은 했다. 미실을 끝까지 황후에 봉하지 않음으로써 최소한의 체면은 지켰다. 그런데 진평왕은 어떤가? 아내의 황후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자식을 버렸다. 심지어 죽일 생각까지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평왕은 약간의 부성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일까?
부성은 인류의 발명품이다?
물고기들이 보여주듯이 원래 생명체가 바다에 있을 때 새끼를 번식하고 키우는 책임은 수컷에게 있었다. 루이지 조야가 <아버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것처럼 암컷은 물속에 난자를 방출함으로써 모성을 완수하고 떠나는 첫 번째 존재였다. 그 다음 임무는 수컷이 정액을 난자들에 발산하고 이어 태어난 새끼들을 돌보는 책임까지 맡았다.
그러나 생명체가 바다에서 나와 마른 대지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본능적 방식은 역전된다. 정자와 난자를 함께 위탁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물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체내수정을 시작한 생명체들은 암수의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수컷은 먼저 생식 행위를 종결짓는 첫 번째 존재가 되고 번식의 임무를 암컷에게 넘겼다.
긴 진화의 시간 속에서 고등한 동물 수컷일수록 가족관계에 정자의 제공이란 역할 외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부성이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인류를 통해 부성이 돌아왔다. 오늘날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인류의 가장 위대한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루이지 조야에 의하면 모성이 본능적인 것이라면 부성은 문명적인 것이다.
즉 인류에게 부성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고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다. 또는 부성의 귀환이 문명의 발생을 촉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부성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발명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고단한 작업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늘날 인류에게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모성과 달리 '본능을 억누르면서 사회적으로 선택된' 것이 부성이라는 루이지 조야의 가정이 아니더라도 부성은 모성과 달리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마야부인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들어보자. "폐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다. 아버지는 어머니와는 다른 거란다. 게다가 네 아버지는 아버지기 전에 왕이다."
자식을 앞에 두고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진평왕은 한심한 것일까, 이기적인 것일까?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진평왕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확하게는 자기 부인을 지키기 위해 딸을 버린 것이다. 혹독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지키기 위해 딸을 죽이려고 했다는 가정도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진평왕은 딸을 지키려는 것도 마야부인을 지키려는 것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안위와 황제의 지위가 불안했을 뿐이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부성을 발휘해 가족을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래서 가족 중 하나를 희생시키는 결단을 했던 것이라면 덕만의 말처럼 20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모순이다. 그에겐 문명적 부성보다 생존 본능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
덕만이 일식을 이용해 본래의 신분을 되찾고자 몸부림치는 중에도 진평왕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이때 과감히 몸을 던져 나선 것은 마야부인이다. 그녀는 어머니였다. 그녀의 모성은 자식을 보호하려는 뜨거운 피로 용솟음친다. 그러나 이런 모성 앞에서도 부성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왕이기 때문에?
물론 모성의 강력한 이끌림에 진평왕도 마침내 부성을 발휘해 덕만을 공주로 선포하는 조처를 취하긴 하지만, 그 한심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시 여성들의 역할이다. 그 중심에 덕만과 미실이 있다. 물론 모성이 생략된(또는 생략한) 특수한 여성들이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강하다.
반면에 남성들은 한없이 약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이다.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연약한 남성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그에 반해 마야부인의 모성은 원시적 본능에 투철하다. 역시 문명의 힘보다는 자연의 힘이 위대한 것인가. 아직 부성은 태초에 부여받은 원초적 본능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인가. 파비
그러면 이 두 명의 황제가 이토록 한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이 황실을 보호하려는 대의에 따른 것이든 권좌를 지키려는 사욕이든 그 출발은 욕심이다.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두려움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이 두 황제가 욕심을 버리고 과감한 결단의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군권을 쥐고 있는 미실을 대적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 효과는 거둘 수 있었다. 미실에게 역적이란 낙인을 찍는 것이다. 진지왕이라면 특히 그랬어야 했다. 어차피 그는 죽은 목숨이 아니던가.
진평왕의 경우는 더 기가 막히다. 그래도 진지왕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노력은 했다. 미실을 끝까지 황후에 봉하지 않음으로써 최소한의 체면은 지켰다. 그런데 진평왕은 어떤가? 아내의 황후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자식을 버렸다. 심지어 죽일 생각까지 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평왕은 약간의 부성도 갖고 있지 않은 것일까?
부성은 인류의 발명품이다?
물고기들이 보여주듯이 원래 생명체가 바다에 있을 때 새끼를 번식하고 키우는 책임은 수컷에게 있었다. 루이지 조야가 <아버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 것처럼 암컷은 물속에 난자를 방출함으로써 모성을 완수하고 떠나는 첫 번째 존재였다. 그 다음 임무는 수컷이 정액을 난자들에 발산하고 이어 태어난 새끼들을 돌보는 책임까지 맡았다.
그러나 생명체가 바다에서 나와 마른 대지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본능적 방식은 역전된다. 정자와 난자를 함께 위탁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물을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자 체내수정을 시작한 생명체들은 암수의 역할이 뒤바뀌게 된다. 수컷은 먼저 생식 행위를 종결짓는 첫 번째 존재가 되고 번식의 임무를 암컷에게 넘겼다.
긴 진화의 시간 속에서 고등한 동물 수컷일수록 가족관계에 정자의 제공이란 역할 외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쪽으로 발달해왔다. 부성이 길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인류를 통해 부성이 돌아왔다. 오늘날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인류의 가장 위대한 특징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루이지 조야에 의하면 모성이 본능적인 것이라면 부성은 문명적인 것이다.
즉 인류에게 부성은 원래 있던 것이 아니고 문명의 발생과 더불어 필요에 의해 생긴 것이다. 또는 부성의 귀환이 문명의 발생을 촉진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부성이 어떻게 어떤 경로를 통해 발명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고단한 작업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오늘날 인류에게 부성은 모성과 더불어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 루이지 조야 지음, 이은정 옮김/르네상스 |
자식을 앞에 두고도 자식이라 부르지 못하는 진평왕은 한심한 것일까, 이기적인 것일까?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진평왕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확하게는 자기 부인을 지키기 위해 딸을 버린 것이다. 혹독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섹스 파트너를 지키기 위해 딸을 죽이려고 했다는 가정도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진평왕은 딸을 지키려는 것도 마야부인을 지키려는 것도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안위와 황제의 지위가 불안했을 뿐이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부성을 발휘해 가족을 지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래서 가족 중 하나를 희생시키는 결단을 했던 것이라면 덕만의 말처럼 20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모순이다. 그에겐 문명적 부성보다 생존 본능이 앞섰던 것은 아닐까?
덕만이 일식을 이용해 본래의 신분을 되찾고자 몸부림치는 중에도 진평왕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이때 과감히 몸을 던져 나선 것은 마야부인이다. 그녀는 어머니였다. 그녀의 모성은 자식을 보호하려는 뜨거운 피로 용솟음친다. 그러나 이런 모성 앞에서도 부성은 머뭇거리기만 한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왕이기 때문에?
물론 모성의 강력한 이끌림에 진평왕도 마침내 부성을 발휘해 덕만을 공주로 선포하는 조처를 취하긴 하지만, 그 한심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역시 여성들의 역할이다. 그 중심에 덕만과 미실이 있다. 물론 모성이 생략된(또는 생략한) 특수한 여성들이긴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강하다.
반면에 남성들은 한없이 약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이다. 『선덕여왕』에서 진평왕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무능하고 이기적이며 연약한 남성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그에 반해 마야부인의 모성은 원시적 본능에 투철하다. 역시 문명의 힘보다는 자연의 힘이 위대한 것인가. 아직 부성은 태초에 부여받은 원초적 본능을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인가.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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