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분노였다. 분노하지 않는 자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진실을 가르쳐준 것은 미실이다. 지난주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실이 덕만에게 말했다. “무서우냐? 두려움을 이겨내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라… 분노하거라…” 그렇다. 도망칠 수 없다면,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분노하는 것 그것이 답이다. 그러나 덕만과 천명은 너무나 두렵다. 분노하는 것조차 무서울 만큼 두렵다.
두려움을 떨쳐낼 가장 강한 무기, 분노
이때 이들에게 그 두려움을 깨고 일어서도록 힘을 준 것은 유신이었다. 그러나 역시 유신에게 분노를 일깨워준 것은 미실이다. 미실은 하늘의 계시를 구실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것은 미실의 계략이었다. 일단 사지로 몰아넣은 다음 손을 내밀어 복종하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다. 이런 방법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권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과거 군대에서 고참병들이 졸병들을 제압할 목적으로 ‘줄빠따’를 친 다음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달래는 것과 같다.
미실이 유신의 집을 찾아와 서현공과 만명부인에게 혼사를 맺어 사돈이 되자고 제안한다. 미실은 서현에게 상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그 상생은 항복과 복종의 맹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서현은 당장 답을 하지 않는다. 이에 유신은 격분하여 그런 부모에게 항의한다. “왜 미실에게 안 된다, 나가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서현은 유신을 타이른다. “분노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느냐?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안 된다, 나가라 답하면 미실은 제2, 제3의 사다함의 매화를 풀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가문은, 너는 어찌 되겠느냐? 미실의 다음 수가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 어찌 무턱대고 분노부터 하는 것이냐?” 그러나 유신은 서현에게 결연한 얼굴로 말한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렇지 않기에 우린 미실에게 놀아난 것입니다. 미실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하여 우린 분노도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면, 허면 너는 떨치고 일어나 죽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예,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미실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울 수만 있다면요. 백성들에게 미실이 천신 황녀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몇 천 백성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란 걸 알릴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공포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고, 불의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얻는 첫걸음이다
물론 서현은 유신의 뜻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가야의 마지막 임금이며 서현의 조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이래 오늘날의 기득권을 이루기 위해 유신의 조상들은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어렵게 이룬 터전을 분노 때문에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적 이익보다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김유신 장군이 여기서 꺾일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는 선덕여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고 김춘추를 왕위에 올린 인물이다.
그는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도대체 어느 누가 신하의 신분으로 대왕의 칭호를 얻었던가. 유신은 천명공주를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있던 덕만과 천명에게 분노할 것을 종용한다. 만약 두려움에 빠져 분노하길 포기한다면 이제 그만 공주도 덕만도 버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결의에 찬 김유신에게 감복한 덕만과 천명은 마침내 미실이 보낸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느낀다. 덕만과 미실은 쌍성의 개양성이었지만, 계시를 이루기 위해선 유신이 필요했다.
그렇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가 무엇이었던가? 사람이었다.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흥왕이 미실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으며,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실이 자신을 대적할 덕만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사람은 유신이었으며 유신은 거꾸로 덕만과 천명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분노를 심어주었다. 오늘 드라마의 압권은 그렇게 분노에 불타는 세 사람의 도원결의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형제를 맺을 땐 비록 세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 세 사람으로부터 천하삼분의 계책이 나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천하에 웅비하는 복룡의 지략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만약, 덕만과 천명이 분노하지 못하고 계속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미실에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분노를 배운 세 사람이 결의하여 당을 만들었으므로 미실과 싸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유신의 분노는 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외침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전율했다. 유신이 결연한 어조로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전율했다. 유신이 외치는 함성은 비단 덕만과 천명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외치는 분노의 목소리였다. “분노하라, 분노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사소한 개인의 이해를 따지기 전에, 정치를 따지기 전에, 수 천 수 만 백성들의 피눈물에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내일부터 언론총파업이 다시 벌어진다고 한다. 용산참사에 이어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부인이 죽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을 맞았다. 실로 이 정권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 흘리고 고통의 눈물을 쏟고 있다. 어린 유신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대사에 감동했던 나는 오늘 또다시 유신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이(利)를 따지기 전에 진심으로 분노하면, 그러면 반드시 세상이 변할 것이다.” 목검을 들고 수천 번을 헤아리며 내리치다 목검이 부러지자 다시 새 칼을 들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는 우직하다 못해 무지하게까지 보이는 유신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 유신랑이 그럴 땐 웃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웃을 수가 없었다. 제작진의 메시지를 얼마쯤은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유신의 그런 모습에서 나는 분노의 바탕에 깔린 진심을 보았다.
사람들이 진심을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성실한 모습이다. 우직함과 성실함으로부터 표출되는 분노야말로 세상을 흔들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미실의 계략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가야유민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은 오늘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유신의 시대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의 분노는, 우리의 진심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파비
두려움을 떨쳐낼 가장 강한 무기, 분노
이때 이들에게 그 두려움을 깨고 일어서도록 힘을 준 것은 유신이었다. 그러나 역시 유신에게 분노를 일깨워준 것은 미실이다. 미실은 하늘의 계시를 구실로 가야세력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것은 미실의 계략이었다. 일단 사지로 몰아넣은 다음 손을 내밀어 복종하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다. 이런 방법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권력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과거 군대에서 고참병들이 졸병들을 제압할 목적으로 ‘줄빠따’를 친 다음 안티푸라민을 발라주며 달래는 것과 같다.
미실이 유신의 집을 찾아와 서현공과 만명부인에게 혼사를 맺어 사돈이 되자고 제안한다. 미실은 서현에게 상생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그 상생은 항복과 복종의 맹세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서현은 당장 답을 하지 않는다. 이에 유신은 격분하여 그런 부모에게 항의한다. “왜 미실에게 안 된다, 나가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나 서현은 유신을 타이른다. “분노로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느냐?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안 된다, 나가라 답하면 미실은 제2, 제3의 사다함의 매화를 풀 것이다. 그리 되면 우리 가문은, 너는 어찌 되겠느냐? 미실의 다음 수가 무언지도 알지 못한 채 어찌 무턱대고 분노부터 하는 것이냐?” 그러나 유신은 서현에게 결연한 얼굴로 말한다. “아닙니다. 분노가 먼저이옵니다. 우리 집안의 이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분노가 먼접니다. 미실의 수를 생각하기 전에 분노가 먼접니다.”
“그렇지 않기에 우린 미실에게 놀아난 것입니다. 미실은 우리의 두려움을 이용하고, 하여 우린 분노도 생각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허면, 허면 너는 떨치고 일어나 죽기라도 하겠단 말이냐?" “예, 그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미실에게 정치적 부담을 지울 수만 있다면요. 백성들에게 미실이 천신 황녀가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몇 천 백성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자란 걸 알릴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공포는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고, 불의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얻는 첫걸음이다
물론 서현은 유신의 뜻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가야의 마지막 임금이며 서현의 조부인 구형왕이 신라에 항복한 이래 오늘날의 기득권을 이루기 위해 유신의 조상들은 피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어렵게 이룬 터전을 분노 때문에 날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정의롭고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사적 이익보다 앞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김유신 장군이 여기서 꺾일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는 선덕여왕을 도와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고 김춘추를 왕위에 올린 인물이다.
그는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도대체 어느 누가 신하의 신분으로 대왕의 칭호를 얻었던가. 유신은 천명공주를 찾아간다. 그리고 함께 있던 덕만과 천명에게 분노할 것을 종용한다. 만약 두려움에 빠져 분노하길 포기한다면 이제 그만 공주도 덕만도 버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결의에 찬 김유신에게 감복한 덕만과 천명은 마침내 미실이 보낸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느낀다. 덕만과 미실은 쌍성의 개양성이었지만, 계시를 이루기 위해선 유신이 필요했다.
김유신릉.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그의 묘는 묘가 아닌 왕릉이 맞겠다. 그는 살아서도 대각간에 '태'자를 얹어 태대각간이었다.
그렇다. 이 드라마의 키워드가 무엇이었던가? 사람이었다.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부터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진흥왕이 미실에게 가르쳐 준 것이었으며,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그 미실이 자신을 대적할 덕만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사람은 유신이었으며 유신은 거꾸로 덕만과 천명을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 분노를 심어주었다. 오늘 드라마의 압권은 그렇게 분노에 불타는 세 사람의 도원결의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결의형제를 맺을 땐 비록 세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 세 사람으로부터 천하삼분의 계책이 나왔다. 이들이 없었다면 천하에 웅비하는 복룡의 지략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만약, 덕만과 천명이 분노하지 못하고 계속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미실에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분노를 배운 세 사람이 결의하여 당을 만들었으므로 미실과 싸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유신의 분노는 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외침
나는 오늘 드라마를 보면서 전율했다. 유신이 결연한 어조로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전율했다. 유신이 외치는 함성은 비단 덕만과 천명을 향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외치는 분노의 목소리였다. “분노하라, 분노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사소한 개인의 이해를 따지기 전에, 정치를 따지기 전에, 수 천 수 만 백성들의 피눈물에 분노하는 것이 먼저다.”
내일부터 언론총파업이 다시 벌어진다고 한다. 용산참사에 이어 쌍용자동차 노조원의 부인이 죽었다. 심지어 전직 대통령까지 죽음을 맞았다. 실로 이 정권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 흘리고 고통의 눈물을 쏟고 있다. 어린 유신이 천명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진심을 다하면 내가 변하고, 내가 변하면 사람들이 변하고,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 대사에 감동했던 나는 오늘 또다시 유신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이(利)를 따지기 전에 진심으로 분노하면, 그러면 반드시 세상이 변할 것이다.” 목검을 들고 수천 번을 헤아리며 내리치다 목검이 부러지자 다시 새 칼을 들고 하나부터 다시 시작하는 우직하다 못해 무지하게까지 보이는 유신을 보며 많은 시청자들이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 유신랑이 그럴 땐 웃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웃을 수가 없었다. 제작진의 메시지를 얼마쯤은 읽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유신의 그런 모습에서 나는 분노의 바탕에 깔린 진심을 보았다.
사람들이 진심을 이해하게 하는 방법은 성실한 모습이다. 우직함과 성실함으로부터 표출되는 분노야말로 세상을 흔들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미실의 계략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가야유민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빛은 오늘날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는, 유신의 시대가 아니라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의 분노는, 우리의 진심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파비
ps; 흥무왕릉 사진을 따로 구할 수 없어 부득이 김해 김씨 가락종친회 까페에서 인용했습니다. 크게 누가 될 일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상단 이미지의 출처는 MBC입니다. 모두 본문의 이해를 돕는 목적으로만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이미지의 모든 권리도 또한 두 단체에 있음을 아울러 밝힙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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