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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대형마트 할인상품, 어떻게 사기치나

어제 MBC-TV『불만제로』를 보다가 10년 동안 먹었던 곱창이 다 올라오는 줄 알았다. 세상에… 곱창을 합성세제로 빨아서 구워먹었다니, 아무리 62개 식당 중에 열아홉 곳만 세제가 검출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 그런데 다음뷰에서 <송원섭의 스핑크스> 「세제로 씻은 곱창, 얼마나 먹었나」를 읽다가 이번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곱창을 하이타이로 빨다가 들킨 식당 주인이 단골학생에게 변명하는 장면이었다. “학생, 미안해. 나도 반성 많이 했어. 그래서 하이타이로 빨지 않고 이제는 퐁퐁으로 빨아. 그러니 괜찮아. 이제 먹어도 돼.” 그러나 『불만제로』팀에 의하면 빨래용 세재 대신 주방용 세제로 바꿔도 안전한 건 절대 아니라고 한다.


사실 나는『불만제로』란 프로가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7시에서 8시 사이에 텔레비전을 볼 일이 별로 없었지만 어제는 월드컵 예선전을 응원하기 위해 일찌감치 텔레비전 앞에 앉았고 이 프로를 보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축구경기를 관람하기 전 매스게임을 보는 기분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게 가관도 아니다. 세제로 빨래한 곱창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대형할인마트들의 사기극이 나온다. 롯데마트니, 홈플러스니, 이마트니 하는 대형할인마트들에서 파는 할인품목들이 사실은 거의 대부분이 일반 슈퍼에서 파는 것보다 더 비싸다는 것이었다. 그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용량을 속이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일부러 자동차 기름 때 가면서 대형마트 간 보람이 뭘까?

우리가 보통 슈퍼마켓에서 설탕 3kg들이를 산다고 치자. 그러면 대형마트에서 할인해서 파는 설탕도 3kg일 것으로 믿고 싸다고 기뻐하며 사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설탕의 용량은 아주 작은 글씨로 2.722kg이라고 구석진 자리에 적혀있는 것이다. 식용유의 경우도 마찬가지. 보통 1.8리터인줄 알고 사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1.7리터다.


이걸 단위당 가격으로 환산해보면 대형마트에서 할인해서 산 것이 더 비싸다는 결론이 나온다. 설탕이나 식용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치약, 세제, 심지어 묶음 상품으로 나오는 과자까지도 용량을 속이고 있었다. 나도 가끔 대형마트에 가면 세 개에 천 원씩―또는 이천 원― 묶음으로 할인하는 과자를 아이들에게 사주었었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었다.


“아빠, 그런데 이 과자에는 공기만 잔뜩 들어있는 거 같아.” 그런데 『불만제로』피디가 이런 문제에 대해 대형마트 관계자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고 이유를 묻자 대답이 실로 걸작이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기 위해서란다. 소비자의 고충을 헤아리는 대형마트의 정성이 참으로 눈물겹다.


그러고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으니 7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부산진해신항만에 세워지는 신도시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친구를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대형할인마트를 개업할 장소를 의뢰하기 위해 찾아온 한 유통업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이게 마트 장사란 게 말이죠. 타이밍 잘 잡아갖고 아줌마들 후리기를 잘해야 되는 기라. 아줌마들은 무조건 싸다카모 사죽을 못 쓰거든. 적당한 시간 잡아서 마이크 들고 골라잡아라, 대박세일이다 카모 마 줄이 바로 뱀처럼 만들어지는 기라. 그런데 내 그런 아줌마들 보모느 속으로는 기가 찬기제.”


“내 예를 하나 들어 주까요? 화장지가 있어. 큰 박스도 있고, 좀 작은 놈도 있는데, 이걸 특별세일을 하는 기라. 한 시간만 하모 완전 창고 정리하는 기지. 그런데 이걸 집에 가져가서 다 풀어 갖고 길이 재보는 사람 있나? 없잖아. 그라니까 장사가 되는 기라. 사실은 할인하는 놈하고 정품하고 길이가 다르거든… 흐흐흐!”


“그라모 그거 불법 아입니꺼?”


“불법은 무신… 다 미리 공장하고 짜고 하는 기제. 공장에서 생산할 때 아예 제품형식을 다르게 승인 받아서 만드는 기라. 말하자면, 50m짜리, 45m짜리 이렇게 두 개 라인의 형식승인을 받는 거지. 그러니까 법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예요. 사람들이 길이 재보는 것도 아니고. 50m짜리는  얼마고, 45m짜리는 얼마다 하면서 파는 것도 아니고.” 

애들 먹는 과자까지 속여서 얼마나 벌겠다고... 대형마트들, 너무 쫀쫀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식탁에 마주 앉은 아내를 향해 일장교육을 했다. 아내도 “우째 이런 일이!”를 연발하면서 분개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는 절대 대형마트에 가서 싸다고 함부로 물건을 사서는 안 된다고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우리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 한국인의 주특기가 무엇이던가. 잘 까먹는 것 아니던가. 


우리 집 욕실 장에는 거의 1년 치에 해당하는 치약과 칫솔이 잘 정돈되어 있으며, 주방에는 커다란 주방용 세제와 식용유 등이 몇 개씩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라면을 살 때도 꼭 5개 묶음에 보너스가 하나 추가된 제품을 산다. 여전히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올 때는 출구에 놓여진 3개씩 묶여진 과자봉지를 습관적으로 집어 든다.

7년 전에 만났던 그 유통업자는 장사수완이 좋았던지 거제, 진해신항만, 부산 등지에 대여섯 개의 대형할인점을 운영했는데, 지금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아마 다시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래요. 아저씨 같은 분들 땜에 그래도 대형마트들이 다 먹고 사는 기라!”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