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창녕 낙동강 변은 온통 샛노란 물결로 넘실대고 있습니다. 창녕군 남지읍은 2006년부터 낙동강 변의 드넓은 둔치에다 유채꽃밭을 조성했습니다. 원래 이곳은 민가들이 부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상습적인 침수로 피해가 극심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창녕군에서는 남지에 새로운 이주단지를 만들어 둔치의 주민들을 옮겨가게 하고 이곳에다 체육공원과 광활한 유채단지를 조성한 것입니다. 남지 낙동강 둔치의 노란 유채꽃 물결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습니다. 매년 여름 장마에 시달리던 상습침수지역이 놀라운 변신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해마다 이곳에서 유채꽃 축제가 열리는 것입니다.
창녕군은 특별한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낙동강유채축제를 열지 않음을 공지하면서 내년에는 꼭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화왕산 참사로 어수선한 군청의 사정을 그저 축제위원회의 사정이란 간단한 말로 대신한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참담하고 고통스런 그 심정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채꽃은 예년과 다름없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출렁이는 노란 물결이 신비롭기 그지없습니다. 유채꽃 물결이 출렁이는 옆으로는 태백산에서부터 천리를 달려온 낙동강이 굽이쳐 흐릅니다. 그 위로 동족상잔의 포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남지철교가 낙동강과 유채꽃밭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유채꽃 사이를 누비는 벌과 나비의 모습이 너무도 평화로운 봄날의 따사로운 햇볕,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강변은 그러나 적막하기만 합니다. 화왕산 화마의 여파가 이곳 낙동강에도 불어 닥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유채꽃밭을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도 왠지 힘이 없어 보입니다. 오직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만이 피 같은 물을 출렁여 힘내라고 박수를 보내는 듯합니다.
일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잘해보려다 도리어 화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창녕군은 큰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비록 그 교훈의 대가로 지불한 쓰라린 고통이 참을 수 없을지라도 이제 그만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황량하도록 쓸쓸한 낙동강유채축제장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년 오늘 이 드넓은 노란 유채꽃 물결 속에 넘실대는 사람들의 물결을 함께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꽃이 제아무리 아름다워도 벌과 나비가 칭송해주지 않으면 존재이유가 없듯이 유채꽃밭이 제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을 즐겨주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불의의 사고에 희생된 분들의 억울한 넋을 생각하면 쉽사리 다시 축제를 열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무원들의 분위기도 어수선할 것입니다. 의기소침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자숙하는 시간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 내일을 향한 발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낙동강.강변에 유채꽃 단지가 보이고 그 뒤로 남지철교가 보인다. 지앙담. 제왕담의 남지식 발음이라 한다. 1933년 완공된 남지철교. 이편 남지쪽에는 웃개나루가 있었다 한다. 그럼 저쪽 함안에는 아랫개나루? 단일지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유채단지. 전체면적이 12만평이라고 한다. 유채꽃에 붙은 벌이 바쁘게 작업 중이다. 유채꽃밭 사이로 난 오솔길. 오히려 한적한 이때가 연인들에겐 그럴듯한 데이트 장소다.
내년 오늘 남지의 낙동강가에선 다시금 희망이 노란 꽃물결에 넘실대는 유채축제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걸린 달빛에 빛나는 유채꽃의 향기에 취해 터져나오는 노래소리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먹거리 장터에서 새어나오는 고기굽는 냄새와 파전에 동동주 마시는 소리도 그립습니다. 그러자면 하루 빨리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도 필요하겠지요.
오늘도 세상 모든 영욕, 인간들의 교만과 근심과 걱정을 다 안고서도 지칠 줄 모르는 낙동강은 변함없이 침착하고도 굳센 물결을 출렁이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실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저 낙동강의 도도하고 줄기찬 바다를 향한 집념입니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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