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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야기 /이런저런이야기

진해 난리 벚꽃장에는 꽃보다 사람

‘난리 벚꽃장’이란 말이 있습니다. 떠들썩하고 시끄러운 상태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본래는 야단법석(野檀法席)이란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 있고 이를 난리법석이라고도 하는데, 아마 이에 빗대어 나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난리 벚꽃장’이라 함은 지나치게 어수선하고 떠들썩한 게 질서가 없이 혼란한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제가 어제 그 난리 벚꽃장에 다녀왔습니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진해가 출생지이고 주민등록표 상에도 원적지가 창원군 웅천면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조상 대대로 이곳이 고향(전통적 의미에서의 고향은 조상들의 뼈가 묻힌 곳이라 함)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진해의 지리는 커녕 '동' 이름도 잘 모릅니다. 진해를 가려면 터널을 통과해야 된다는 지리적 단절감 때문인지 마산창원 지역에 터를 잡고 산지도 어언 27년이나 지났건만 아직 진해 벚꽃장에 한 번도 가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정말 마음을 야무지게 먹고 진해 벚꽃장에 다녀왔습니다. ‘야무지게’ 마음을 먹은 이유는? 그야 물론 진해 벚꽃장이 다름 아닌 ‘난리 벚꽃장’이라는 걸 귀가 따갑도록 들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고 오는 데 쏟아부어야 할 노력이라든지, 벚꽃장을 구경하며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또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써야 할 신경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우리 딸입니다. 팔불출이래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어제는 오늘 안 가면 더 이상 기회가 없겠다는 절박감(큰 애가 이미 국민학교 6학년이거든요)으로 큰 맘 먹고 그 난리법석이 났을 진해로 건너 간 것입니다. 봉암다리를 건서 창원 땅에 들어서니 벌써 화사한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마진터널의 어둠을 뚫고 빛의 세계로 빠져나온 순간, 사방이 온통 연분홍으로 뒤덮여 마치 그림 속에 빠져든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꽃안개로 뒤덮인 도시는 가히 환상적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 갑자기 막막해졌습니다. 식구들 네 명 중에 진해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시 ‘사전조사’의 필요성을 절감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짐짓 태연한 척 마누라에게 물었습니다.

“가만, 벚꽃장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진해역 앞으로 가보자. 거기 가면 장터 같은 게 많이 열려 있을 끼다. 거기가 벚꽃장 아이겠나.”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벚꽃나무 아래 장터를 열어놓은 게 벚꽃장이라니?

“아이, 무식아. 벚꽃나무 아래 장터 열어놓은 걸 벚꽃장이라고 하는 기 아이다. 그 장 하고 그 장이 어찌 같단 말이고.”
“에이, 바보야. 벚꽃 마이 핐을 때 장터 만들어 놓고 사람 마이 모인 그기 벚꽃장이지. 그것도 모르나.”
“……”

꽃마차도 등장했네요.


그러나 저는 결국 예의 집요함과 대를 이어온 고집으로 “벚꽃장은 벚꽃아래 펼쳐진 장터가 아니다!” 라는 점에 동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물론 그 동의는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잠정적 양보 조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소풍장소에서 이런 사소한 의견차이가 분쟁으로 비화되는 사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의 결말은 늘 승자나 패자에게 예외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이동하는 쪽으로 줄을 서서 따라가다 해군사관학교로 들어갔습니다. 군함도 구경하고 바닷가에서 돗자리 깔고 밥도 먹었습니다. 당연히 막걸리도 한 병 비웠습니다, 저 혼자서. 금강산도 식후경. 이제부터 꽃구경을 할 차례입니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물결치는 사람들 뿐. 터널을 지나 진해로 들어오며 보았던 꽃안개는 사라지고 넘쳐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아! 이런 걸 두고 ‘난리 벚꽃장’이라고 하는 것이로구나. 정말 난리 벚꽃장이었습니다. ‘물 반, 고기 반’이란 말도 있지만, 여기는 ‘꽃 반, 사람 반’이었습니다. 중원로타리로 나오니 천막으로 빙 둘러친 군항제 행사장이 있었습니다. 행사장에 들어가기 위해 4열종대로 기다랗게 줄을 만든 사람들과 지나다니는 사람들,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우리 마누라가 말한 벚꽃장이 진짜 벚꽃장이 맞는가 봅니다. 벚꽃장에 사람이 없으면 벚꽃장이 아니리라는 깨달음은 현장을 체험하고 나서야 얻은 소중한 진리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물결처럼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꽃처럼. 안치환이 노래했던가요?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고. 

아직 도(道)와 통하지 못한 저로서는 사람보다 꽃이 아름답습니다만, 꽃안개 속을 물결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가 그리 싫진 않습니다. 정말 ‘꽃 반, 사람 반’입니다…. 휘영청 은하수에 보름달을 매달고 벚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술잔에 받아 마시는 운치는 이태백이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낭만일 겝니다. 이번주 금요일이 보름이네요. 

그때까지 꽃잎들이 견뎌줄라나 모르겠군요.       파비

벚꽃 사이에 핀 동백꽃이 일품. 붉은 동백꽃 뒤로 화사한 벚꽃 실루엣이 너므 흐린 건 제 사진 실력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