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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터미널에서 만난 비키니 아가씨들

 

낙동강 천삼백 리 길을 걷는다

1. 낙동강의 고향, 태백산으로

 터미널에서 만난 간판속 비키니 아가씨들
낙동강 천삼백 리 도보기행에 참여하기 위해 먼저 구미에 들렀다. 여기서 <우리땅걷기> 회원인 초석님을 만나 함께 차를 타고 태백으로 향할 것이다. 일찍 서둘러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구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새로 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렸다
. 성주IC를 빠져 나와 구미 방향으로 접어들자 오른편으로 드넓은 모래사장을 적시며 흐르는 강줄기가 보인다. 바로 낙동강이다. 감동이 밀려온다. , 언제쯤이면 우리는 이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구미종합터미널에 도착하니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다
. 먼저 육개장으로 허기진 창자부터 달랬다. 그러고도 한 시간 반이 남았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지? 생각하다 터미널 주변을 걸어서 구경하기로 했다.

 

터미널 바로 앞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러자 끝도 보이지 않는 기다란 골목이 나타났다. 아마도 상업지역인 듯싶다. 그 골목길을 터덜거리며 걸었다. ? 그런데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큰 상권에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를 않다니 .

 

그런데 어느 순간 불현듯 좌우를 둘러본 나는 깜짝 놀랐다. 온통 벌거벗은 아가씨들이 건물 벽에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아니 그냥 웃는 것이 아니라 유혹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곳은 유흥가였다.

골목길은 재어보지는 않았지만 수백 미터는 족히 넘을 성싶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골목길이 아래위로 서너 개가 더 있었고 바둑판처럼 이어져 있었다. 내가 너무 좁은 세상에서만 살다 온 것일까? 왜 나는 그 동안 이렇게 차려진 골목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물론 마산이나 창원에도 유흥가는 존재한다. 인구 백만에 달하는 도시가 아무래도 구미에 비해 유흥산업이 뒤떨어질 리도 없을 것이다창원은 밤이면 불야성이 따로 없다. 서울사람들도 강남에 비해 쳐지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이니….

 

그런데도 나는 이런 곳은 처음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환락의 거리 양 옆 대형간판에 비키니를 입고 뭇 사내들을 유혹하는 이렇듯 자극적인 거리는 실로 처음이다. 곧 땅거미가 지면 반짝이는 불빛과 더불어 사람의 숲으로 흥청거리게 될 터이다. 괜스레 이 길을 걷는 내가 민망스럽다.

 

문득 카메라 생각이 났다. 낙동강 기행을 위해 장만한지 오래지 않은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 캐논450을 꺼내 들었다. 아직 조작이 서툴러 그냥 자동모드만 사용한다. 여기저기 셔터를 눌렀다. 저쪽 골목 각지에 위치한 24 슈퍼에서 아저씨가 나를 보며 빙긋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할까? 혹시 감찰 나온 공무원? 그러나 등에 배낭을 매고있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생각할리는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터미널 앞으로 돌아왔다. 터미널 입구에서는 한 명의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그는 말이 자유롭지 않은 지체장애자인 듯싶었다. 그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 부는 터미널 입구에서 손을 벌리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말투로 간절하게 흐느끼듯 말했다.

 

배거~ 언 만 배거~ ~ 언 만…”

 

그러나 백 원만을 간절하게 속삭이는 그의 부르튼 손에 쥐어지는 백 원짜리는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너무 바빴다. 분주한 행인들에게 부정확한 발음에다 흐느끼듯 속삭이는 힘없는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예로부터 선산은 선비의 고장이다. 중환이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갈파한 바로 그곳이다. 선산군 구미면이었던 이곳은 국가산업단지로 개발되면서 구미시가 되고 선산은 이제 구미시의 일개 읍으로 전락했다.  

 

택리지가 극찬한 영남일선(嶺南一善) 선산은 이렇게 사라져 가는 것인가. 이리하여 멀리서 찾아온 객을 맞는 것은 선비들의 옹골찬 숨결 대신 얼굴에 한없이 미소를 머금은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이다.  

 

그러나 수백 리를 흘러온 낙동강은 여전히 선산을 휘감아 돌아가며 그 유장함을 뽐내고 있다. 자본주의의 밤 물결이 제 아무리 휘황한들 억만년을 지칠 줄 모르고 흘러온 낙동강에 견줄까. 낙동강은 이렇게 말하리라.

 

너희들의 노래도 단지 한때일 뿐이다. 너희들이 제아무리 교만을 떨어도 곧 세월에 정복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모두 나에게로 올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갖고 오는 온갖 더러운 것도 다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니 일찌감치 얄팍한 생각일랑 버리고 빨리 와서 나와 같이 생명의 찬가를 부르자.”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