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이야기

대통령은 잘하는데 밑에것들이 문젠기라요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한낮의 도심을 흔들었다. 기다랗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은 한참이 지나도록 그 여운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도시를 바쁘게 오가던 사람들과 차량들은 모두 한쪽 옆으로 비켜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폰카메라라 사진이 희미하다.

그렇구나. 오늘이 민방공훈련을 하는 날이로구나. 내 평생 길 가다 민방공훈련에 걸려보기는 또 처음이네. 민방공훈련? 그런 걸 아직도 하고 있었던가?’

 

어린 시절, 민방공훈련 하던 생각이 났다. 정말 죽도록 했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서는 훈련 시작하기 전에 미리 운동장에 집합해서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약 10여분 정도를 걸어서 학교 뒷산 후미진 곳으로 가 은폐를 하고 기다린다. 


은폐라고 해야 별 거 없다
. 그저 반별로 모여 앉아 숨을 죽이고 가만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다 사이렌이 울린다. 그러면 아이들은 오늘처럼 길게 여운을 멈추지 않는 사이렌 소리가 지나가는 푸른 하늘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숨긴다.

 

경계경보와 공습경보, 화생방경보의 사이렌은 각각 다르다. 끊어 울리는 횟수, 울리는 시간의 길이 등으로 구별을 하는데 평소에 배웠던 것을 운동장에서 다시 한번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모두들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납작하게 엎드린다.

길 양쪽 옆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면 마침내 화생방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아이들은 배운 대로 엄지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나머지 손으로는 두 눈을 가린 다음 입을 반쯤 벌린다. 입을 벌리지 않으면 엄청난 폭발음과 폭풍에 의해 내장이 손상될 수 있다.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해제경보 사이렌이 울리면 그제서야 아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과 귀를 가렸던 손을 풀고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는다. 어린 마음에도 전쟁은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던가!

 

가만, 오늘이 3 16일 현재시간이 오후 2. , 그러고 보니 민방공훈련 요원들이 도로 곳곳에 2명씩 조를 짜서 서있네. 이걸 어쩐다지?’ 이미 모든 차량들과 사람들은 4~50m 간격으로 도로 양쪽에 포진한 노란 모자를 쓴 요원들에게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나만 몰랐던 것일까? 아득한 옛날,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에나 했던 소꿉장난 같았던 민방공놀이를 아직도 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어시장 옆 대우백화점 정문 앞 벤치에서는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 걷기를 즐겨 하는 데다 곧 낙동강 도보탐사에 나설 계획이 있었던 나는 훈련 삼아 걸어서 어시장까지 가는 중이었다. 마침 날씨도 매우 화창했다. 걷는 이마에 땀이 살짝 맺힐 정도로 기분 좋은 날씨였다.

에라 모르겠다. 약속시간도 다 돼가는데 어서 가자.’

해제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얼마를 가는데 민방위 모자를 쓴 공무원인 듯한 아저씨가 호각을 크게 불며 이쪽으로 비켜서 제자리에 서세요. 가시면 안 됩니다. 가만히 서 계세요하면서 길을 막았다. 노란 모자에 호각을 불며 길을 제지하는 걸 보자 순간 나도 모르게 열이 확 뻗쳤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도 힘든 판에 길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다니여기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 말이야.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이 따위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나는 바빠서 가야겠어요.” 

 

그러나 노란 모자의 공무원은 계속해서 길을 막으며 왜 협조를 안 하느냐고 훈계를 하듯 다그쳤다한번 감정이 격앙되자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다. 아니 협조를 할 것이 따로 있지. 민방공이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설마 내 먹고 사는 일 보다야 급할까. 어렵게 시간 내준 친구 다시 만나기 쉽지 않다.

모두들 바삐 움직인다.

아저씨. 이렇게 사람 길 막고 이 땡볕에 세워 놓으려면 의자라도 갖다 놓으시던지, 아니면 어디 식당이나 다방에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돈이라도 주시던지, 뭔 조치를 해주셔야 될 거 아닙니까? 돈 줄래요? … 이명박이 이거 말이야. 나라 경제 다 망쳐놓고 이제 사람 길까지 막네….”

 

참나, 나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한 건지 모르겠다. 어디 이명박이가 민방공훈련을 만들었던가. 그러나 한번 미운 털이 박힌 놈은 무슨 짓을 해도 밉다. 결국 실랑이를 벌이다 노란 모자의 제지를 뿌리치고 내 갈 길로 나섰다. 그러나 이내 그 노란 모자의 공무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무 말을 심하게 했지. 공무원이 무슨 죄가 있나.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일 뿐인데. 자기도 맡은 바 임무를 책임지지 못하면 문책을 당할 수도 있을 테니더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로는 공무원을 마치 직장부하 다루듯 한다니 말이야.’

 

뒤를 돌아보니 도로변에는 차량들이 한쪽 옆에 길게 늘어서 있고 사람들은 건물 옆으로 붙어 모여 있었다. 아예 길바닥에 주저앉아있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도 있었다. 나만 빼고 모두들 통제에 익숙하게 잘 따르고 있는 듯이 보였다. ‘허허나만 바보 됐군. 미친놈처럼 소리나 지르고….

 

마침 앞에 마산시청 건물이 보였다. 시청 민원실로 들어가 컴퓨터나 좀 만지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허탕이었다. 이미 민원실은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도 만원인데다 컴퓨터도 자리가 없었다. 이래저래 짜증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제경보 사이렌이 길게 울려 퍼졌다. 20분이 이렇게 지루하다니…. 부랴부랴 시청을 빠져 나와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시청 뒤 철길을 넘었다. 이 철길은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폐선으로 방치돼있다. 여기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어시장이다.

 

그런데 가만 아,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이번엔 철길 옆에서 노점상 아주머니와 단속 나온 시청공무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철거반원들이다.


아니 이 양반들은 하필 민방공훈련 시간에 노점상 단속 나온 거지? 길 가던 시민들에겐 길도 막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면서 자기들은 그 귀한 민방공훈련시간에 노점상 단속을 하고 있었단 말이지. 시내버스든 화물트럭이든 승용차든 모두 운행정지 시켜놓고 자기들은 노점상하고 전쟁 벌이고 있었단 말이지. 노점상 단속반은 총알도 비켜가나?’


노점상 아주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 자기보다 덩치가 두 배는 돼 보이는 두 명의 단속반원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3일 후면 저기 만들어놓은 저리(컨테이너를 개조한 판매장이 바로 옆에 있었다)로 옮긴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왜 뜯어가는 기고. XX들아. 그거 그냥 거기 안 나둘끼가. 어이~”

 

한참을 드잡이를 하던 시청 단속공무원들은 결국 파라솔 몇 개만 달랑 트럭에 싣고 떠났다. ‘아니 이 양반들이 하려면 확실히 하던지 기껏 파라솔 두 개 뜯어가려고 여기 왔나? 장사 하는 아지매 속 다 긁어놓고 고작 파라솔 두 개 뜯어 싣고 간단 말이야? 혹시 민방공훈련 피할까 하고 들어왔다가 시비 한 번 붙고 가는 거 아냐? 참 웃기는 인간들이군.’

노점상 아주머니는 단속반들이 가고 나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땅바닥에 주저앉아 경상도 말로 욕을 ‘개 끌듯이’ 퍼붓고 있었다. “아니 조노므 시끼들이 저기 인간들이가. 대통령은 우야든지 서민들 먹고 살게 해 주끼라꼬 고상하는데, 조노므 문디 자슥들은 저그가 머라꼬. 아이고 나쁜노무 시끼들…”

그러다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던 나를 보고 대뜸 외쳤다. “아이, 그란데 댁은 뭡미꺼. 뭔데 아까부터 옆에서 사진을 찍고 그람미꺼? 댁도 저놈들하고 한팬교?”

단속반이 갔는데도 계속 자리에 주저앉아 욕만 해댄다.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아지매 편이라요. 이거 사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쟈들 욕 좀 해줄라고 안 그럽니까? 하하저는 마 확실히 아지매 편 맞습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금새 표정이 바뀌며 마침 잘 됐다는 듯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얼마전에 있다 아임미꺼. ,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노점상들 먹고 살게 해 줄끼라꼬 다 풀어준다 안 했습니꺼. 그기 곧 내리 온다 카데예. 여 시장도 올매나 우리 같은 사람 걱정해 줌미꺼. 그란데 그 밑에 있는 노므 인간들이 그런 것도 모르고우에가 아무리 잘하면 뭐함미꺼. 조노므 자슥들이 죽일 놈들인 기라요. 조놈들이….”


아니 이건 또 무슨 엿 바꿔 드시는 말씀이란 말인가?
 아무리 바빠도 이런 소리 듣고 그냥 지나칠 내가 아니다.

 

아줌마. 거 있다 아임미까. 저 공무원들이야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기고요. 진짜 나쁜 놈들은 웃대가리들입니다. 이명박이 그 인간이 제일 나쁜 인간이지요. 아줌마, 청계천 들어보셨지요? 이명박이가 얼마나 자랑 합디꺼. 그 꼴난 청계천 만들라고 노점상들 다 쫓아냈지요. 쫓아내다가 안 되니까 우쨌슴미꺼? HID, 북파공작원이라고 들어보셨지예? 그 사람들 불러다 다 쪼가 냈단 소리 못들었심꺼? 진짜 나쁜놈이 누군지 아직도 모르시겠심미꺼? 마산시장요? 고마 말로 마입시더.”

아마 노점을 이리로 옮길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기 편이라고 하던 사람이 영 엉뚱한 소리를 하니 김이 좀 샜나 보다. 그러나 그래도 자기 편이라는데 달리 뭐라고 할 수야 없는 노릇일 테고. 입맛만 쩍쩍 다시면서 그건 아일 긴데예. 설마 그럴라고예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곧 다시 정신을 차린 듯 일장연설이 시작되려고 한다
. 노점상 아주머니는 오랜만에 동지를 만난 듯 그 동안 못다한 한을 다 풀어낼 태세다. 아이고, 이러다간 약속시간 늦겠다. 나는 얼른 아주머니에게 아지매, 그럼 많이 파이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노점상 아주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등뒤로 달려든다. 아주머니 목소리가 참말로 우렁차다.

 

아이씨요. 우옛든가 마이 좀 도와 주이소예~”               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