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의 마산 창동은 차가운 겨울날씨도 녹여낼듯 MB악법을 규탄하는 촛불로 일렁거렸다. 이명박이 광우병 쇠고기에 이어 이번엔 언론악법으로 시민들의 촛불에 분노의 불길을 밝히게 한 것이다. 참, 재주도 ‘가지가지’ 한다.
12월 29일 오후 6시 30분부터 벌어진 ‘언론노조파업을 지키기 위한 촛불집회’에는 마산MBC를 비롯한 언론노조와 진보신당, 민노당 등 정당, 민생민주경남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아고라 등 누리꾼들(경남도민일보 보도, 약 150여 명)이 대거 참여해 창동거리를 가득 메웠다.
스튜디오 밖으로 나온 아나운서
‘사랑해요 MBC♬ 만나면 좋은 친구~ MBC 문화방송~♩♬’ 노래로 시작된 집회에서 송순호 마산시의원(민노당)과 강창덕 민주언론시민연대 대표 등의 연대사에 이어 MBC 오정남 노조지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MBC노조 마산지부장 오정남 아나운서. 사진=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그는 촛불을 든 시민들의 연대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한편 “MB악법은 국가재난사태에 다름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실에 화장지는 팔만대장경”이라는 ‘농담 같은 진담’을 소개해 촛불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옆에 앉아있던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 전대동 씨(진보신당 경남도당 부위원장)가 “역시 아나운서네. 말하는 동안 발음이 하나도 안 틀리는구먼.” 하고 말해 나는 한 번 더 웃었다.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MBC 오정남 지부장은 이어 “박정희가 있지도 않은 지역감정으로 국민을 둘로 나누더니, 박정희를 닮겠다는 이명박은 가진 자와 가난한 자,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분열시키고 있다”면서 방송장악 음모는 영구집권을 위한 시나리오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끔찍한 일이다. 9시만 되면 제일 먼저 가장 보기 싫은 얼굴부터 봐야한다는 건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다. 불과 오래지 않은 옛날,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9시만 되면 “전두환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하는 대통령 동정부터 보아야했다.
물론 이전에는 그보다 더 심했다. 극장에 가서 영화를 한편 보아도 먼저 20분간 진행되는 ‘대한뉴스’를 통해 ‘민족의 영도자’이신 대통령 각하의 동정을 살펴야했다. 그리고 기립해서 애국가를 부른 다음 영화를 감상했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이지만, 그때 우리는 매우 진지했던 것 같다.
국민을 다시 바보상자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MB
그래서 사람들은 TV를 ‘바보상자’라고 불렀다. 그런 TV를 국민은 그렇다면 바보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제 이명박이 시계를 거꾸로 돌려 다시 국민을 바보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재벌방송을 만들든 국영방송을 만들든 자기 입맛대로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방송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박정희 흉내를 내며 시커먼 선글라스를 뾰족한 얼굴에 멋대가리 없이 덮어쓰고 다녔지만, 두 사람 다 참 창의성 없는 대통령들이란 생각이 든다. 안구가 안 보이는 선글라스로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지휘봉을 든 모습은 영락없는 박정희의 창작품일 테지만, 그의 정치는 창조적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마산 창동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
박정희의 경제개발계획은 장면 민주당 정권의 작품을 훔친 것이며, 유신헌법과 새마을운동은 북한의 주체사상과 천리마운동을 베껴왔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로 회자되고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한국적 민주주의’란 것이 무엇이었던가. 이른바 ‘우리식대로 살자’는 북한의 주체이론이 연상되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이명박도 바야흐로 표절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배운 것이라곤 유신시절 워카 신고 삽질하는 것밖에 배운 것이 없으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그런 삽질밖에 모르는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도 참 어리석지만, 따지고 보면 오래도록 바보상자에 길들여진 참혹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왜 파업하냐구요?
며칠 전, 오정남 마산MBC 지부장과의 인터뷰에서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는 짓궂게 물었었다.
“아니 MBC 기자들이라고 하면, 말하자면 귀족들 아닙니까? 가만있어도 먹고사는 문제에 특별히 고민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영화 되면 SBS처럼 월급도 더 받을 수 있고,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전 조합원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파업에 참여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군요.”
사실은 나도 그 지점이 가장 궁금했었다. 왜 언론인들이 파업을 할까? 게다가 언론인 중에서도 귀족(?)으로 꼽히는 MBC 기자들이 왜 파업을 벌이게 되었을까? 물론 이명박 정권이 방송장악을 통해 영구집권을 기도한다는 건 어린애들도 다 안다. MB악법의 최대 피해자는 물론 국민이다.
그러나 이 국민이란 대단히 추상적인 말일 뿐이어서 실상은 그 누가 피해자인지 애매하게 만드는 말이다. 거꾸로 1%의 국민, 조중동과 대재벌을 위해 99%의 국민을 희생시키는 법이라고 해야 보다 분명하다. 그러나 내 단순한 생각은 방송사의 주인이 정권이 되건 대자본이 되건 MBC 조합원들의 입장에서야 별로 손해 볼 일도 없을 성 싶었다.
“이건 밥그릇 싸움이 아닙니다. 그렇게 몰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물론 조중동이죠. 그러나 이건 임금문제도 아니고…. 정권이 의도하는 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자본이 원하는 방송만 나가겠죠. 말하자면 삼성이 지배하는 방송을 만들어주자 이런 거 아닙니까?” 김주완 기자가 찍은 사진의 뒷모습이 안면이 참 많다.
이명박, 박정희를 닮고 싶다더니…
그들이 스튜디오를 버리고 길거리를 선택한 것은 최소한의 양심 때문이었다. 그들이 빼어든 것은 사명감이란 정의의 칼이었다. MBC 마산지부 조합원들은 오늘 아침 일찍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48시간 동안 연속으로 벌이는 ‘총파업 2차 총력대회’에 참가하기위해서다.
“CBS와 EBS를 비롯한 다른 방송사들도 전면파업에 들어가고 일부 신문사들도 지면파업을 통해 총파업에 동참할 계획”이라는(경남도민일보 기사 인용) 소식이다. 바야흐로 ‘국민 대 MB정권의 전선’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해 국민에게 먹이려고 할 때부터 MB는 대국민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전선은 MB가 집어던진 언론악법이라는 폭탄으로 다시금 소용돌이로 빠져들 조짐이다. 이미 MB정권의 선제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촛불들의 전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정남 MBC 노조지부장은 말했다.
“이번 싸움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죽든지 살든지 결판을 내야죠.”
독재자 박정희의 비참한 말로를 기억해야
하여튼 이명박, 정말 대단하다. 60년 헌정사에 국민을 이토록 분열시킨 정권은 없었다. 박정희나 이승만의 분열정책도 이명박 앞에선 ‘새발의 피’다. 국민을 이토록 무시한 정권도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박정희를 닮고 싶다더니, 아예 이참에 박정희를 넘어서고 싶어진 모양이다.
그러나 MB는 명심하기 바란다. 국민을 무시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정희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껴보란 말이다.
2008. 12. 30.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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