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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이야기

MBC파업, “구속도 각오, 이기기 위한 싸움의 시작”

언론노조 문화방송 마산지부 오정남 지부장을 만났다.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부장의 인터뷰자리에 배석하는 형식이었다. 인터뷰는 마산MBC 6층 노조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오 지부장을 만나기 위해 11시를 넘긴 어두운 MBC 사옥 앞에서 기다렸다.    

오 지부장을 비롯한 MBC 조합원들은 관광버스 2대에 나눠 타고 서울 농성투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렸지만, 찍지는 못했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차가 이미 도착해버렸던 것이다. 밤 11시 40분이 지나고 있었다.

푸근한 인상의 마산MBC 노조지부장

인터뷰는 주로 김주완 부장이 질문하고 오정남 지부장이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노트북을 켜놓고 질문하는 김주완 부장이 마치 취조하는 형사처럼 보였다. 오 지부장은 친절하게 답변했고 목소리도 매우 좋았다.

오정남 지부장은 목소리뿐 아니라 인상도 그만이었다. 나와는 비슷한(내가 기껏 몇 살 더 많겠지만) 연배임에도 역시 아나운서 출신답게 매우 젊어보였다. 피부도 매우 좋았다. TV에서 볼 때보다 더 깔끔한 인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이렇게 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실제로 귀족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파업을 결행하게 되었을까 내심 매우 궁금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 부장의 질문이 어느 순간 이 지점에 집중되고 있었다.

오정남 위원장 /오마이뉴스

“아니 MBC 기자들이라고 하면, 말하자면 귀족들 아닙니까? 가만있어도 먹고사는 문제에 특별히 고민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민영화 되면 SBS처럼 월급도 더 받을 수 있고,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런데 어떻게 전 조합원이 이렇게 열성적으로 파업에 참여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군요.”

MBC 노조원들이 파업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김 기자가 좀 짓궂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은 내가 가장 궁금한 지점이기도 했다. 이명박 정권이 방송장악을 통해 집권을 연장시키려 한다는 점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이다. 정권의 방송장악을 통해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그러나 이 국민이란 대단히 추상적인 말일 뿐이어서 실상은 그 누가 피해자인지 애매하게 만드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방송사의 주인이 정권이 되건 대자본이 되건 MBC 조합원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을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건 밥그릇 싸움이 아닙니다. 그렇게 몰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물론 조중동이죠. 그러나 이건 임금문제도 아니고… 민생법안이죠. 정권이 의도하는 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자본이 원하는 방송만 나가겠죠. 말하자면 삼성이 지배하는 방송을 만들어주자 이런 거 아닙니까?”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 삼성과 같은 대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송으로 전락하고 난 뒤의 방송이 1%의 국민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면, 방송법 개악의 최대 피해자는 99% 국민이란 결론이 나온다.

재벌이 지배하는 방송? 절대 안 된다

“지금 이명박 정권은 논쟁의 영역이라든지 절차적 민주주의 같은 데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대화가 필요 없다는 식이죠. 무조건 법제화로 때리겠다는 겁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느슨하게 대응한 우리의 책임이 크다고 통감하고 있습니다.”

‘느슨하게 대응한 결과적 책임에 대한 통감’을 나는 앞으로 뉴스데스크 등 발언의 기회가 있는 곳에서 가능한 자기주장을 보다 확실하게 하겠다는 MBC의 의지로 해석했다. 오 위원장의 표현대로라면 “이 정권이 논리로 안 되고 물리력으로 상대해야 하는 정권”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어제 한나라당사 앞에는 물대포까지 동원한 경찰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 쪽에서 먼저 “물대포를 쏘아 강제로 해산시키겠습니다. 어서 해산하시오.” 하며 선무방송을 시작하자 MBC 조합원들이 경찰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

그러자 경찰 대장이 나와서 “한번 던져보세요. 우리는 찍고 있겠습니다. 사진 잘 찍는 사람 있어요.” 하며 비아냥거렸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무섭다기보다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정권과 공권력이 갈 데까지 갔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김 기자가 이어서 물었다.

이기기 위한 싸움의 시작

“촛불 100만명이 모여도 끄떡 않는 mb정권에 덤벼드는 MBC가 무모하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 지부장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 싸움은 이기려고 하는 싸움의 시작입니다.”

이번 정치파업이 노조 입장에선 불법파업을 감수하고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도부 검거에도 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미 이에 대비한 1선, 2선의 지도부가 준비되어있다는 말로 비장한 투쟁의지를 대신했다.

마산MBC 시사포커스를 진행하고 있는 오정남 아나운서. 현재 MBC 노동조합 마산지부 위원장.

나는 인터뷰하는 동안 처음에 가졌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시원함을 느꼈다. 오 지부장은 이명박 정권이 ‘대운하’를 잠시 접어둔 이유를 우선순위에 대한 조정이란 말로 설명했다. 이 정권은 먼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최우선과제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방송장악 문제가 풀리고 나면 그 다음은 대운하를 다시 꺼내들 것이고, 그리고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의료, 교육 등 모든 분야로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고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권은 철학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에 부합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물불 안 가리고 할 거란 말이죠.”

MBC 파업투쟁, ‘밥그릇’ 보다 더 중요한 ‘양심’ ‘사명감’의 싸움

나는 아직도 MBC 조합원들이 이명박 정권에 대항하여 결사항전(!)의 전의를 불태우는 이 ‘초유의 사태’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사실 나에게 아직 그들은 귀족노동자다. 노동자란 호칭도 그들이 언론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에 붙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오 지부장의 인터뷰를 옆에서 경청하면서 그들에게 밥그릇보다 더 중요한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문시장은 이미 ‘조중동’이 장악하고 있다. 이제 방송마저 장악한다면 이명박 정권에겐 거칠 것이 없다. 인터넷이 있다지만 곧 무차별적인 미군의 폭격에 노출된 이라크처럼 고립무원이 될 것이다.

나는 KBS가 이미 mb의 방송특보가 사장으로 앉으면서 꽤 변질되지 않았나 걱정하고 있다. SBS는 어차피 민영방송이다. SBS가 아직 민영으로서 제 갈 길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것은 KBS와 MBC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MBC만이 고독한 전장에 서있다.

“대체로 5공이 만든 부자연스러운 체제에 살다보니 몸과 마음이 보수적이어서 이런 상황이 어색한 구성원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인식으로만 공유했던 것들이 몸까지도 공유하게 되면, 내부 성원들이 많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가족들까지도 함께 하게 될 겁니다.”

이명박 정권이 만든 전사들

마산MBC 지부장은 조용하지만 의지가 결연했다. 그들은 전사가 되어있었다. 나 같은 사람에겐 아직도 그들은 가까우면서도 먼 귀족(?) 노동자들이지만, 그들은 이미 진심으로 우리 곁에 한걸음 성큼 다가서 있었다. 그들은 따뜻하고 익숙한 스튜디오의 안락함도 버리고 이 추운 한겨울 거리에 나앉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 위원장이 인터뷰 초두에 (내가 자세히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민생법안이죠.” 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방송이 무너지는 것은 그 다음 민생이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랬다. 그것은 민생이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였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돌아오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무서운 놈들이다.” 그러나, 나는 곧 오 위원장의 말을 상기했다. “이 싸움은 이기려고 하는 싸움의 시작입니다.” 그렇군. 아무런 철학도 개념도 없는 mb정권보다 양심과 사명감으로 무장한 MBC 노조원들이 더 무서운 존재들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mb가 만들어낸 전사들이었던 것이다.                                         


2008. 12. 27일 토요일 아침에,  파비                         
                                                                     
※ 이 포스팅은 경남도민일보 취재기사 발간에 맞추어 발행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