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사람 별난인생>에서 제일 내 눈길을 끈 사람은 방배추였다. 이름도 별났지만 그의 이력은 실로 별난 것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건달이었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듣기로 여느 깡패처럼 패를 지어 몰려다는 그런 건달이 아니라 시라소니처럼 홀로 움직이는 싸움꾼이었다.
하지만 ‘전설의 주먹’이라든가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라든가 ‘조선 3대구라’ 따위의 다소 선정적인 닉네임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내 관심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그는 한때 백만 평이 넘는 부지에 <노느메기밭>이라는 농장을 짓고 함께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 공동체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공동생산 공동분배. 노느메기밭에서는 아무리 일을 잘하는 사람도, 아무리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남보다 더 많이 가져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일을 못하는 사람도, 몸이 아파 일을 하지 못한 사람도 남보다 더 적게 가져가지 않았다. 누구든 공평하게 똑같이 분배받았다는 것이다.
오호라, 1970년대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그는 어떤 사람일까? 박정희 정권은 두말할 필요 없이 “네놈이 빨갱이 아니면 이럴 수 없다”면서 그를 잡아다 고문하고 6개월간 징역을 살렸다. 그때의 고문 후유증으로 그는 40대부터 지금까지 이가 하나도 없이 모두 의치에 의존해 살고 있다.
그는 진짜 빨갱이였을까?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결코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는 <자본론>을 읽어봤다고 했지만 마르크스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그는 마르크스가 “스스로 먹고살기 위해 노동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천재였지만 커다란 약점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는 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메시지가 없는 사람이다. 사실 내 삶 자체가 그러하기도 하고 거창한 철학 따위를 앞세우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 하지만 숱한 고비와 기회가 다가올 때마다 맨몸 하나를 내던져 새로운 세상을 뜨겁게 만났고 부딪혔다는 점 하나만큼은 자부한다. 나를 건달, 주먹, 깡패, 협객 뭐라고 해도 상관없지만 그냥 ‘뜨거운 내 인생’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던 사람으로만 받아줬으면 좋겠다.”
방배추 선생(본명 방동규)
방배추라는 사람이 사회주의자여도 상관없고 아나키스트여도 상관없다. 물론 그의 말처럼 아무 철학도 없고 메시지도 없는 그저 깡패거나 협객이어도 상관없다. 다만 그가 1970년대에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공동체를 건설하고 운영할 생각을 했으며 실제로 실행했다는 사실이 내게는 중요하다.
그는 선각자였던 것이다. “최근 정부의 이른바 성과급 중심 임금제 개편이나 저성과자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 등 정책 어떻게 보느냐?”는 저자(김주완 기자, 경남도민일보 이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만 보아도 80을 훌쩍 넘은 나이의 그가 얼마나 선진적인 사상을 몸과 마음에 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일을 많이 하고 잘난 사람은 돈 많이 주고, 못하는 사람은 적게 주고, 아주 못하는 사람은 퇴출시킨다? 이건 노예의 노동력을 착취할 때 사용했던 방법이에요. 노예끼리 서로 잡아먹고 자기가 살기 위해 상대를 죽이고…, 그건 백 년 전에, 2차대전 전에 했던 경제이론이야.”
아무리 평등사상을 신조로 삼는 진보인사라도 이런 주장을 이토록 손쉽게 할 수 있을까? 일을 잘 못하는 사람도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과 똑같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당하게 “그렇소!” 하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방배추는 정말 별난 사람이다.
<별난사람 별난인생>에는 방배추 외에도 6명의 별난 사람 이야기가 더 실려 있다. 채현국 선생은 너무도 유명한 별난 인생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다. 장향숙 할머니는 참 아름다운 분이었다. 양윤모, 김장하 같은 분은 별난 인생이라기보다는 의인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삶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나는 이분에 대해서만큼은 ‘별난 인생’이라 부르는 것은 실례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그의 인생은 뜨겁고 진지하며 정의로운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산업화시대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미래가 그를 통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별난 공무원 임종만과 별난 농부 김순재는 특별히 내가 아는 분들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만큼 이분들에 대해서도 따로 할 이야기가 많다. 아마도 임종만은 자신의 임명권자인 시장이 근무하는 시청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하는 인물이니 별종이라고 해도 별로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김순재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후에는 농촌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살다가 농협조합장까지 오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의 인생도 들여다보면 만만찮다. 그의 행보뿐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도 알고 보면 아주 별나다.
하지만 누구보다 별난 사람은 이 책을 쓴 김주완 기자가 아닌가 한다. 그의 기자 이력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별난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다른 기자들이 안 하는 일을 주로 한다. 그러다 가끔 욕 아닌 욕을 듣기도 하지만 그의 개척정신, 실험정신은 실로 대단하다.
김주완 기자는 나쁜 사람, 남들이 다루길 꺼리는 비극적 사건을 주로 쫓아다녔는데, 이승만 정권 하의 민간인학살이 대표적이다. 그는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일등공신이다. 그의 휘하에(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하지만 이 표현이 좀 멋진 거 같아서, 임기자님 죄송^^) 임종금이란 기자는 그의 영향을 받아서 아예 <악인열전>이라는 별난 제목의 책을 불과 얼마 전 출간했다.
별난 기자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이사
아무튼 <별난사람 별난인생> 재미있게 읽었다. 감동도 받았다. 이런 별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 빛나고 아름답게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별난 책을 꼭두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쉬지 않고 재미있다고 읽은 나도 참 별난 사람이다.
그러나 진짜 별난 것은 이 세상이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는 이 차별의 세상이야말로 가장 별난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별난 제위들에게 권한다. <별난사람 별난인생>을 읽고 별나지 않은 미래에 동참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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