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감독의 <안개>를 보며 드는 생각. 왕자웨이 감독과 많은 면에서 닮았다.
특히 <아비정전>. 모든 주변의 것들을 생략시키고 오로지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만의 대사에 몰입하는 방식이라거나, 달리는 밤 열차 천장에서 피곤한 듯 희미하게 흔들리는 전등 불빛을 잠시 보여준다거나, 영화 속의 또 다른 관객인 듯 주인공을 훔쳐보는 뭇시선들을 잠시 비추어준다거나, 무엇보다 특기할 것은 정지된 사진, 하나의 사진틀 속에서 활달하게 움직이던 인물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정지된 동작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곧 이들 감독들이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가 바로 시간이라는 것. 모든 시간, 전체로서의 시간이 아니라 어느 특정한 정지된 공간에서의 한정된 시간 속에서 주인공들이 마주하게 되는 다소 일탈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준다는 것.
이런 기교는 최근 개봉한 <일대종사>에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극 전체를 주도하는 경향을 보여주는데, 김수용보다는 왕자웨이가 기교나 기술적인 면에서 조금 진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왕자웨이가 훨씬 후대의 사람이기 때문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아무튼 <안개>, <아비정전>, 모두 좋은 영화다. 다른 장르의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에게는 별로일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게는 몇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영화들이다.
ps; 일전에 이성철 교수의 책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한 적이 있는데, 이런 것이었다.
“왜 노동자들은 (대체로) 할리우드 액션이나 홍콩 무협영화를, 그것도 비디오를 통해서 보는 것을 좋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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