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 집에 초대받아갔다. 경기도 별로고 그냥 집에서 먹자는 것이었다. 한창 술자리가 이어지다 중간에 안주가 모자라 친구가 육포를 사러 가게에 가는데 내가 부탁했다. “제일 비싸고 제일 좋은 걸로. 징키스칸이 먹던 걸로 사 오너라.” “흐흐흐, 그래 알았다." 친구는 맥주 몇 병과 함께 가게에서 제일 비싼 걸로 샀다며 육포를 들고 왔다. 그러나 우리는 몇 조각 떼먹어보고는 모두들 “이거 진짜 육포 맞아? 맛이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좀 맛이 없기는 없네요.” “좀 심하게 맛이 없네.” 나도 평소에 육포를 어지간히 좋아하던 터라 “육포란 본시 이렇게 생긴 걸 골라야 하느니라” 하면서 친구에게 훈계질을 하는데, 우리 중에 호기심이 제일 센 기석이 형님이 포장지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에이, 이거 돼지고기로 만든 육포네” 한다. 일순 모두들 어이없다는 표정. “소가 아니라 돼지로 만든 거였어?”
자, 그런데 이쯤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흔히들 육포하면 쇠고기로 만든 걸로 알고 있다. 육개장도 쇠고기로 만든다. 육(肉)자가 들어가면 쇠고기를 가공하여 만든 식품을 일컫는 것이다. 닭을 고아 끓이면 닭개장이다. 참고로 국어사전을 찾아보기로 하자. 다음 국어사전이다.
육포[肉包] ① 쇠고기를 얇게 저미어 양념하여 말린 포 ② 얇게 저민 쇠고기와 넓게 썬 처녑에 갖은 양념을 쳐서 쌈을 싸 먹는 음식
육개장[+肉+개+醬] 쇠고기를 삶아서 알맞게 뜯어 넣고, 얼큰하게 갖은 양념을 하여 끓인 국.
(개장 또는 개장국이라고 하면 개고기를 고아 끓인 국을 말한다. 여기에다 소고기를 뜻하는 '육(肉)'을 덧붙여 소고기를 마치 개장국처럼 끓였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흔히 가운데 '개'를 '닭 계(鷄)'로 잘못 이해하고 육계장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표기에 주의해야 할 낱말이다.)
우리는 모두 “이거 사기 아냐?” 하고 흥분했지만 포장지 뒷면에 깨알 같은 글자들의 숲속 깊숙한 곳에 <돈정육(국내산) 90.6%>이라고 적혀 있으니 법리적으로 따지면 사기죄로 몰긴 어려울 거 같기도 하다만, 그러나 법적으로 사기죄가 맞나 안 맞나 여부는 둘째 치고 당장 이렇게 사람을 기망하는 것은 분명코 감정으로 치자면 사기가 맞다 사료된다. 그렇다고 이것들을 잡아다 포를 뜰 수도 없고……. 어떻게들 생각하시는지. 당분간 속세를 떠나 있고자 했지만 세상이 참 속세이탈을 도와주지 않는다. 무협지에 나오는 소림방장처럼 폐관수련할 수도 없고. ㅠㅠ
ps; 참고로 돈육포는 기석이 형님네 개 먹이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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