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초고왕 썸네일형 리스트형 근초고왕과 진홍란이 쇠꼬비를 양자로 삼은 이유 그러지 말았으면 하고 바랐는데, 결국 근초고왕의 뒤를 잇는 근구수왕은 여화의 아들 쇠꼬비가 되는 것인가요? 늘 그렇습니다만, 왕이 될 자들은 마치 커다란 고난을 겪어야만 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부여구도 비류왕으로부터 버림받고 요서에서 소금장수로 젊은 나날을 보냈습니다. 비류왕으로부터 왕재를 인정받고 후사를 이어받을 참이었던 여구는 비류왕을 암살하고 왕이 된 계왕으로부터 핍박당해 다시 요서로 쫓겨 갔으나 갖은 고난 끝에 다시 돌아와 근초고왕이 됐습니다. 여구에겐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진홍란으로부터 얻은 태자 부여근이요, 다른 하나는 여화가 낳은 아들 쇠꼬빕니다. 아시겠지만, 여화가 낳은 아들은 여구가 요서에서 전연과 전쟁을 하는 중에 일으킨 위례궁의 반란 때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줄 알았던.. 더보기 근초고왕, 이혼녀의 재혼금지 필요한 이유? 오랜만에 드라마 근초고왕 이야기를 해볼까한다. 사실 근초고왕이 백제 역사상 가장 강성한 군주였다는 것은 알겠지만 요서지방까지 경략했다는데 대해서는 아직 미심쩍은 감이 없지 않다. 당시의 백제는 아직 한강 일원만을 차지한 자그마한 나라에 불과했다. 여전히 경기남부, 충청 이남은 마한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민족적 자긍심을 세우는 데는 이만한 드라마도 없는 것 같다. 요동은 고구려가, 요서는 백제가 차지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가설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역시 나도 알량한 민족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빨간 티를 입고 월드컵 경기장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때가 사실 엊그제다. 그런데 이런 근초고왕을 민족적 자긍심까지 더하여 재미있게 보다가도 어쩌면 꼭 이렇게 이야기를 꼬.. 더보기 이전 1 다음